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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라디오 사랑방’입니다

성남시 신흥2동 마을 라디오 방송국

인문쟁이 이재형

2018-12-06

중학교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듣곤 했다. 조그만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주파수를 맞춰 들으며 공부를 하다가 부모님께 혼나는 날도 많았다. 그 시절, 라디오는 세상 밖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신흥2동의 마을 라디오 방송실. ©이재형

▲ 신흥2동의 마을 라디오 방송실. ©이재형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는 1957년에 생산된 삼양라디오다. 당시만 해도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아 라디오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듣곤 했는데, 어찌 보면 그것이 팟캐스트의 원조 격인 셈이다.  


TV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라디오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방송을 들을 수 있기는 하지만, 유튜브에 밀려 큰 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주민센터에 라디오 부스를 마련해 마을 방송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 성남시 신흥2동의 ‘라디오 사랑방’이다. 


정겨웠던 성남시 신흥2동의 달동네 풍경 ©이재형


정겨웠던 성남시 신흥2동의 달동네 풍경 ©이재형

▲ 정겨웠던 성남시 신흥2동의 달동네 풍경 ©이재형 


신흥2동은 성남시의 구시가지로, 아직 정겨운 달동네 풍경이 남아있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이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신흥2동 주민들은 하나둘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삿짐을 싣고 나가는 화물차량들이 늘어갈수록, 남은 주민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행정복지센터 ©이재형

 ▲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행정복지센터 ©이재형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주민들은 시골 마을에서 정겹게 들려오곤 하는 이장님의 방송을 떠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흥2동의 마을 방송은 비록 시골에서처럼 모든 집에 울려 퍼지지는 않지만, 남부럽지 않은 정겨움과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흥2동의 주민센터에 자리 잡은 라디오 사랑방 ©이재형

▲ 신흥2동의 주민센터에 자리 잡은 라디오 사랑방 ©이재형 


사실, 마을 방송은 동작구나 분당구 등 여러 곳에서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주민센터에서 방송을 하는 곳은 전국에서 신흥2동이 유일하다. 신흥2동 주민센터 2층에 자리 잡은 방송 스튜디오에서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또 송출된다.


지난해까지는 마을 방송 전용 스튜디오가 없었던 탓에 성남아트센터 소리스튜디오를 빌려 써야 했다. 그러던 지난 1월, 주민센터 한편에 방송실을 마련했고, 다가오는 2020년에는 새로 지어지는 신흥2동 청사에 마을 라디오 전용 방송국을 지을 예정이다.


신흥2동 마을 방송 팟캐스트 아롱이다롱이 ©이재형

▲ 신흥2동 마을 방송 팟캐스트 아롱이다롱이 ©이재형 


신흥2동 마을 라디오 팟캐스트의 이름은 ‘아롱이 다롱이’다. 현재 진행 중인 방송으로는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여왕들의 수다’와 마을에 담긴 옛 추억을 회상하는 ‘추억의 다락방’, 그리고 주민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들려주는 ‘음악이 흐르는 우리 마을’ 등이 있다. 


신흥2동 마을 라디오방송은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다. ©이재형

▲ 신흥2동 마을 라디오방송은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다. ©이재형


그렇다면 방송 제작과 진행은 누가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마을 방송은 이장의 전유물이지만, 신흥2동의 마을 방송은 지역주민의 아이디어와 목소리로 만들어진다. 주민 누구나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원한다면 PD나 DJ가 될 수도 있다. 마을 방송에 참여하고 싶다면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방송 제작 강좌를 수강하면 된다. DJ가 되기 위해서는 강좌를 수료한 후 테스트 방송을 거쳐 합격해야 한다. 


신흥2동 방송실에서는 누구나 DJ가 될 수 있다. ©이재형

▲ 신흥2동 방송실에서는 누구나 DJ가 될 수 있다. ©이재형


방송 제작 강좌가 열리는 방송실에 가보니,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 앞에 앉은 수강생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이 손에 쥔 방송 원고에는 수없이 고민하고, 고쳐 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손수 작성한 원고를 또박또박 낭독하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안녕하세요? 들을수록 행복해지는 방송, 서로의 추억을 나누는 방송, 신흥2동 라디오방송 아롱이 다롱이의 김성옥입니다. 울긋불긋한 단풍도 다 떨어지고 이제 곧 겨울이 오려나 봐요.”  


우연히 ‘아롱이 다롱이’의 게스트로 참여했다가 방송하는 재미에 푹 빠진 김성옥(56세) 씨는 소녀 시절 가졌던 라디오 DJ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강좌를 수강 중이다. 방송을 준비하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방송 연습 중인 김성옥 씨 ©이재형

▲ 방송 연습 중인 김성옥 씨 ©이재형 


Q : 마을 방송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나요?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땐, 사라져가는 신흥2동의 추억을 지키는 것이 목표였어요.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고, 명절이면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달동네의 추억들이요. 그런데 최근 새로 이사 오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주민들 간에 이질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Q : 방송을 시작한 이후 신흥2동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마을 라디오가 마을 주민들에게 커다란 자랑거리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처음엔 동아리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신흥2동을 대표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했죠. 라디오 사랑방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 앞으로 마을 방송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요?

주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송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예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예요.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마을 방송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언젠가는 우리 마을 방송이 신흥2동을 넘어서 성남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을 라디오방송은 빛바랜 추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재형

▲ 마을 라디오방송은 빛바랜 추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재형 


신흥2동의 마을 방송에는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굳은 의지와 애정이 눌러 담겨 있다. 오래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이들의 방송이 마을의 추억과 정겨움을 멀리멀리 실어나르기를 바라본다. 



사진=이재형


* 공간 소개 및 관련 링크


<신흥2동 마을라디오 방송국>

장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주민센터

문의 ☎ 031 729-5621

팟빵 신흥2동 마을라디오방송 아롱이 다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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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이재형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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