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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공원

인문쟁이 양재여

2018-08-23

아스팔트는 복사열로 이글거리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 있는 8월이다. 이 달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다준 광복절이 있다. 특히 2018년은 정전 65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할 만한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공원을 찾아보았다.

 

대전 중구 중촌동 16-11에 있는 평화공원은 공원이기보다는 아파트 옆 공터에 가까운, 초라하고 쓸쓸한 곳이다. 필자가 방문한 때는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으로 기반 조성을 하고 있었다.

 

옛 대전 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 안내표지판

▲ 옛 대전 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 안내표지판


이곳에는 전쟁 희생자 추모탑이 높게 솟아 있다. 대전형무소 터가 기능을 잃은지 2년이 지난 후, 그 옆에 있던 KBS 방송국이 추모탑을 세웠다. 현재 대전형무소가 사라진 자리 대부분은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상가가 그 자리를 나눠 쓴다.


KBS 방송국이 세운 추모탑

▲ KBS 방송국이 세운 추모탑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공원의 참혹한 비극은 1919년에 일제가 이 자리에 ‘대전 감옥’을 세운 후부터다. 일제 식민지 때는 이곳에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됐으며, 한국전쟁 때는 수감된 좌익 인사들이 죄 없는 국민과 함께 이곳에서 무참히 학살됐다. 이념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였다.


대전교도소의 옛 모습

▲ 대전교도소의 옛 모습 ⓒ 대전시청


한국사의 아픔을 간직한 망루


일제는 3·1운동 이후 부족해진 수감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1919년 5월 1일 '대전감옥'을 세웠다.(보통 목동형무소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직 찾지 못했다.) 형무소는 1984년 3월 무렵까지 약 65년 간 이곳에서 운영되다가 괴정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준공 당시 동서남북 4곳에 설치됐던 망루는 형무소 이전 후 단 하나만 그 자리에 남아있다.


망루의 상층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파손된 창문

▲ 옛 대전형무소 자리에 남아 있는 망루


이 망루는 감옥, 형무소, 교도소 3단계에 걸쳐서 65년 동안 한 자리에 있었기에,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망루는 6·25 전쟁 당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민족 안에서 일어난 참혹한 상황도 모두 지켜봤다. 망루 앞에 한국자유총연맹 대전광역시지회가 세운 안내판이 보인다.


 망루 앞에 세워져 있는 망루 안내판

▲ 망루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한국전쟁의 산역사 대전형무소 우물터


당시 형무소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다. 현재 큰 우물 하나가 보존되어 있다. 옆에 작은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소는 흙으로 메워져 있다. 우물이었던 자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운데에 풀들이 자라나 있다.

 

 보존된 큰 우물과 뒤편에 보이는 작은 우물로 보이는 것은 안이 흙으로 메워져 있다

▲ 옛 대전형무소 자리에 남아 있는 우물들


현재 남아있는 우물은 취사장 부근의 우물로 추정된다.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이곳에서 양민 1,300명을 생수장시켰다. 우물 앞에 서 있는 안내판이 수많은 이의 참혹한 죽음을 간직하고 알리고 있다.  ‘이 우물은 1919년 5월 일제가 대전 감옥 개설 당시 재소자의 식수용으로 만든 것인데 6.·25 사변 시에는 북괴가 자유 대한의 애국지사 1,300여 명을 이러한 네 개의 우물에 생수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민족 수난의 산 증표로 이를 길이 보존코자 함’


평화의 나무 왕버들


평화의 나무 왕버들은 1984년 대전 교도소가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하면서 교도소 안 연못가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커다란 나무는 약 100세 수령으로 추정되는 왕 버드나무로, 9m 넘는 키에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가 뻗쳤는데 그 길이가 14m에 달한다.


 평화의 나무 왕버들은 9m 넘는 키에, 사방으로 고르게 14m까지 가지가 뻗쳤다

▲평화의 나무 왕버들


나무는 1950년 7월과 9월의 비극을 기억한다. 7월에는 대전형무소 수감자 2,000명 가량이 사상범(좌익인사)이란 이유로 학살되었고,  9월에는 인민군이 철수하면서 1,300여 명이 학살되었다. 대전 교도소 주변 학살을 고스란히 목격한 왕버들은 모두가 잊으려 하는 기억을 홀로 붙들어 안고 서 있다.


2010년 12월 25일,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단 중촌마을역사 탐험대 ‘그루터기’가 나무가 겪은 옛일을 기록한 안내판을 세웠다. ‘평화의 나무’는 중촌동 마을 사람들이 직접 붙여준 이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왕버들을 바라보며 평화가 지속되길 소망하고 있다.


2010년 12월 25일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단 중촌마을역사 탐험대 ‘그르터기’가 나무가 겪은 옛일을 기록한 안내판

▲ 왕버들 나무가 겪은 옛일을 기록한 안내판


'나는 기억하네

1950년 7월, 산내 골령골로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던 수많은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어

나는 기억하네

1950년 9월 수많은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모습

짐승처럼 학살된 사람들

재잘거리는 아이들

우렁우렁 유쾌한 청소년들

여유롭게 산책하는 노인들

나는 바라네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 '

 

 

스토리투어 ‘근대로의 여행’


스토리투어 ‘근대로의 여행’을 주관하고 있는 대전문화유산 행복한 울림 안여종 대표는 항상 망루를 기점으로 근현대사 투어를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왕버들의 존재도 가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민족의 참혹했던 역사를 보고 들은 살아있는 유일한 생물체가 바로 왕버들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투어 ‘근대로의 여행’을 주관하고 있는 대전문화유산 행복한 울림 안여종 대표가 대전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망루, 우물, 왕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스토리투어 ‘근대로의 여행’을 주관하고 있는 대전문화유산 행복한 울림 안여종 대표


“‘근대로의 여행’의 의미는, 시대의 사실을 알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을 던져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픈 기억으로, 누군가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기억으로, 다양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대전에 이런 아픈 상처가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네’, ‘이런 데도 있네’, ‘이렇게 아픈 상처가 있는 것을 왜 나는 지금 알았지?’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문제가 심하네’ 등등 국가의 아픈 기억을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 끝에 ‘지금이라도 알아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주변에 알려야 한다’,‘나무가 이야기하는 것을 공감한다’ 등의 감상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누군가 역사는 거울이 되고, 경계가 된다고 했다. 아프고 힘든 과거 또한 우리의 소중한 역사이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어느 누가 다시 전쟁이 일어나길 원하겠는가? 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공원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장소 정보

  • 대전형무소기념평화공원
  • 대전왕버들
  • 스토리투어
  • 근대로의여행
  • 대전감옥
  • 왕버들
  • 대전형무소
인문쟁이 양재여
인문쟁이 양재여

2019 [인문쟁이 4기, 5기]


대전의 골목 골목을 거닐고 대전의 잊혀져가는 곳을 기록하고 대전의 축억을 기록하는 대전을 사랑하는 아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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