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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 되살아나는 350년의 기억

대구 약령시

인문쟁이 김주영

2018-02-21

 

지난 1월에 개봉한 디즈니와 픽사의 역작 <코코>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억’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잊히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완전히 잊힌 존재는 영원히 소멸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서로의 존재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고, 기억을 전승하는 것은 삶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코코>에서는 기억에서 잊힌 존재가 실제로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영화 밖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던 김춘수 시인의 싯구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한 생명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삶이란 끊임없는 기억의 생성과 소멸로 이루어진 한편의 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영화 <코코> 포스터 / 우)김춘수 시인의 꽃

 ▲ 영화 <코코>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김춘수 시인의 꽃 Ⓒ 네이버 카페 동아펜펜


한약 향기 가득한 350년, 대구약령시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약령시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자그마치 350년 동안 만들어지고 또 잊혔다. 기억들이 이리저리 모였다가 흩어지고, 뭉쳤다가 퍼지는 연쇄작용은 오늘도 여전히 반복된다. 이는 대구 약령시가 오늘까지 살아있는 하나의 시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다. 

 

대구 약령시 입구대구 약령시 약전골목 풍경

 ▲ 대구 약령시 입구 / 대구 약령시 약전골목 풍경


약령시에 대한 첫 기억은 약 350여 년 전 조선 효종 시대에 처음 시작되었다.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대구 경상감영 옆에 위치한 객사에서 한약재와 약초를 거래하는 시장이 열린 것이 바로 대구약령시이다.

조선후기 상공업의 발달에 힘입어 약령시 또한 경상북도와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만주, 일본에서도 많은 상인들이 약령시를 찾을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약령시가 열릴 때면 한약방의 직원들은 밥 한 술 뜰 시간도 없이 새벽까지 약을 달이고 약첩을 싸곤 했다는 이야기가 오랜 시간 대구약령시를 지켜온 한약업사들의 기억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1930년대 대구약령시 풍경대구 약령시 벽화

 ▲ 1930년대 대구약령시 풍경 Ⓒ 약령시보존위원회 / 대구 약령시 벽화


낙엽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 따뜻한 할머니의 품이 떠오르는 것처럼 머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껴지는 기억도 있는 법이다. 대구약령시가 열릴 때 즈음이면 약령시가 열리는 공간전체가 한약 향기로 물씬 물들었다. 달력을 보기도 전에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기로 약령시가 열릴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약령시는 한약 향기처럼 점점 퍼져나가 1907년 지금의 남성로 부근의 위치로 옮겨졌다.


1977년 제1회 약령시 축제2015년 약령시한방문화축제

 ▲ 1977년 제1회 약령시 축제 / 2015년 약령시한방문화축제 Ⓒ 아시아투데이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1년에 두 번 열리던 약령시가 한번으로 줄고 여러 규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당시 사람이 많이 오고가던 약령시는 독립운동가들의 자본이 오고가는 연락망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1941년에는 민족자본을 무너뜨리려는 일제에 의해 대구약령시가 폐지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 약령시가 다시 열리긴 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그 맥이 끊어졌다. 하지만 기억이란, 강제로 끊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법이다. 1970년대 대구약령시 상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7년 제1회 대구약령시축제를 시작으로 약령시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정기시장이 아니라 약전골목이라는 상설시장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떠올랐다.


왼쪽부터 대구약령시 약전골목에 늘어선 한약방들 / 한약방 안에 전시된 다양한 약재들 / 한약방 안에 전시된 커다란 녹용

 ▲대구약령시 약전골목에 늘어선 한약방들 / 한약방 안에 전시된 다양한 약재들 / 한약방 안에 전시된 커다란 녹용


약전골목은 오늘날에도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다. 대구의 중심지 반월당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대구약령시 약전골목을 보면 예전의 약령시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골목 어귀부터 끝까지 늘어선 한약방과 한의원에는 인삼, 홍삼과 같은 비교적 친근한 약재들에서부터 이름 모를 약재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한약방에서는 솥뚜껑만한 거북이나 커다란 벌집,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녹용을 박제해서 한약방 안에 전시해두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약전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알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한약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오늘날까지도 오감을 자극하는 대구약령시의 향기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옅어지는 한약 향기, 잊혀지는 한약과 젠트리피케이션

 

하지만 약전골목에 진하게 배어있던 한약 향기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양약이 발달하면서 한약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그들의 얼굴엔 약령시와 함께한 세월만큼의 주름살이 잡혔다.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약령시와 밤잠을 줄여가며 주문을 처리하던 한약방은 점점 한산해지고, 조용해졌다. 어쩌면 이들은 번성하던 약령시와 한약의 모습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른다.

 

약전골목 인근에 들어선 대형 백화점한약방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음식점들

 ▲ 약전골목 인근에 들어선 대형 백화점 / 한약방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음식점들


이에 더해 약전골목 인근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오르는 탓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약방의 영세상인들이 하나둘씩 약전골목을 떠나고 있다. 도시 환경이 변해 중·상류층이 구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주거비용이 상승하여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현상, 즉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렇게 떠난 한약방의 자리에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들어선다. 한약 향기가 가득했던 약전골목 거리는 점차 음식 냄새, 커피 향기로 채워지고 있다. 약령시와 약전골목이 잊히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보관소,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잊힌다는 건, 기억의 전승과정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약령시에 대한 기억은 한약방 주인에서 사환에게로, 선배 한약사에서 후배 한약사로 전승되어 왔다. 안타깝지만 이제 이러한 연결고리는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그렇기에 약령시에서는 전승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이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든지 이 공간에 오면 약령시에 대한 기억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공간이 바로 약전골목 중간부에 위치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다.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전경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모형

박물관 3층 한방역사관박물관 내 한의학 관련 교육자료

 ▲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전경 /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모형 Ⓒ 한국관광공사 / 박물관 3층 한방역사관 / 박물관 내 한의학 관련 교육자료 Ⓒ 한국관광공사


총 3층으로 구성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서는 한방 족욕 체험, 한약재 비누 만들기 등과 같은 한방체험을 제공하고 다양한 약재와 인체의 혈, 체질 등의 한의학 지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35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약령시와 약전골목의 유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잊히는 약령시의 기억을 보관해두는 일종의 보관소인 셈이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을 듯 그렇게

 

영화 <코코>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음악이다. 코코의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머릿속의 기억은 음악이라는 감성, 청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다시 깨어난다. 훗날 약령시를 잊어버린 누군가도 이곳의 한약 향기를 맡으면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옅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약 향기는 알싸하면서도 달짝지근하다. 우리의 기억 또한 희미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을 듯 그렇게.




사진= 김주영, 약령시보존위원회,  한국관광공사, 아시아투데이, 네이버 영화, 네이버 카페 동아펜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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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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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인문쟁이 김주영

[인문쟁이 3기]


김주영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토박이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스트릿댄서이기에, 스스로를 ‘춤추는 문학인’으로 정의한다. ‘BMW’(Bus, Metro, Walking)를 애용하는 뚜벅이 대구시민이다. 책과 신문, 언어와 문자, 이성과 감성, 인문학과 춤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인생의 목표를 취업에서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로서의 나와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전해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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