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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의 DNA를 찾아서

서울 종로구 황학정, 국궁전시관

인문쟁이 이재형

2020-01-09


황학정 전경

▲ 서울 종로구 황학정 ⓒ이재형


양궁(洋弓, archery)은 올림픽 때마다 마음 졸이며 보는 경기다. 활과 화살을 이용해 일정한 거리에 있는 과녁을 쏘아 득점을 겨루는 종목이다. 선수들은 한 발 한 발 정신을 집중해 활시위를 당긴다. 양궁은 바람은 물론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경기다. 선수들은 한 발만 잘못 쏴도 경기를 그르친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보다 보는 사람이 더 떨린다.


우리나라는 양궁 강국이다. 올림픽에서 양궁 경기가 신설된 후 잇달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우리나라 선수를 신궁(神弓)이라 부를 정도다. 화살을 10점 골드 과녁을 맞히면 짜릿하다. 귀신이 쏘는 화살처럼 어찌 이리 잘 쏠까? 신궁의 DNA라도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수렵화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화와 기마무사의 사냥



고구려 고분 무용총 수렵화

▲ 고구려 고분 무용총 수렵화 (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무용총 수렵화는 고구려 고분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벽화다. 이 그림은 이름 그대로 고구려인들이 수렵활동에 나서 사냥하는 장면을 그렸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사냥하는 고구려인의 기상이 사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자세히 보면 기마무사(騎馬武士)가 말을 탄 채 화살을 쏜다. 그리고 그 옆에 호랑이, 사슴 등 동물이 나온다. 놀라운 것은 앞에 있는 목표물뿐만 아니라 말을 탄 채 뒤쪽의 동물을 조준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 위에서 몸을 돌려 화살을 쏘는 방식을 ‘파르티안 궁법’이라고 한다. 기마민족들이 애용한 사냥법이다. 말 위에서 중심을 잡고 몸을 반대로 돌려 대상을 조준해 활을 쏘는 고난도 기술이다. 전투 때도 뒤쫓아 오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 자세가 필요하다. 무용총 벽화를 보면 고구려인들이 활쏘기와 승마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활쏘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냥이나 전쟁의 도구로 활용돼 왔다. 양궁(洋弓)이란 말에서 ‘洋’이란 한자는 서양을 의미한다. 양궁은 지중해형에서 유래, 발전됐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유의 활쏘기는 국궁(國弓)이다. 국궁은 몽골형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 후기 풍속도에 나오는 활쏘기 풍속



김홍도의 풍속도 화첩 중 활쏘기(복제본), 국궁전시관

▲ 김홍도의 풍속도 화첩 중 활쏘기(복제본), 국궁전시관 ⓒ이재형


한반도 활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국의 기록에서 ‘맥궁(貊弓)’(만주에서 한반도로 내려온 맥국이 만든 활)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창, 일본이 칼이라면 활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기였던 셈이다. 국궁의 역사가 곧 한민족의 역사다. TV 사극에 많이 등장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활을 들고 전장을 누볐다.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화첩에도 활쏘기가 나온다. 활쏘기 훈련을 하는 풍경이다. 군관의 지도를 받으며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옆에는 활과 화살을 손질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조선시대는 임금부터 아래 평민까지 활쏘기를 즐겼다. 이 풍속도 진본은 보물 제527호로 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 ‘역린’ 포스터 / 문구: 1636병자호란 위대한 신궁의 전설이 깨어난다 최종병기 활, 역사 속에 감춰졌던 숨막히는 24시간 역린

▲ 영화 <최종병기 활>, <역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나 TV드라마에서도 활이 자주 등장했다. 2011년에 영화 <최종병기 활>이 개봉했다. 당시 민초들의 고난을 묘사한, 병자호란이 배경인 영화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주된 무기는 활이다. 치열했던 전쟁의 한복판에 역사가 기록하지 못했던 위대한 신궁이 있었다. 역적의 자손이자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 역)다. 귀신같은 활솜씨로 청나라 정예부대를 하나둘씩 처치할 때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남이는 신묘한 활솜씨를 보여준다. 날아오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곡사(曲射)다. 비거리가 멀수록 활의 각도를 높인다. 지금 쏘는 국궁도 활의 각도를 높여 쏘는 곡사다.



영화와 역사 유적지에 등장하는 활의 유산



영화 ‘신기전’에 등장했던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 남한산성행궁

▲ 영화 <신기전>에 등장했던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 남한산성행궁 ⓒ이재형


2014년 개봉한 영화 <역린>에서도 활을 볼 수 있다. <역린>은 정유역변(1777년 정유년에 일어난 반역사건으로 정조 시해 미수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을 다룬 영화다. 영화에서 정조가 사용한 무기는 활이었다. 영화에서 활쏘기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활이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 무기(혹은 무예)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한산성행궁에도 활의 역사가 있다. 행궁 안에 있는 이위정(以威亭)이다. 순조 17년(1817)에 광주부 유수(留守, 고려·조선시대 수도 이외의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곳 및 군사적인 요지에 두었던 유수부의 관직)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이위정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위’(以威)란 활로써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仁義)와 충용(忠勇)으로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남한산성행궁 후원에 있는 이위정(以威亭)

▲ 남한산성행궁 후원에 있는 이위정(以威亭) ⓒ이재형


정자라 함은 보통 휴식을 위해 짓는다. 그런데 왜 활을 쏘는 이위정을 만들었을까? 그건 병자호란의 슬픈 역사 때문이 아닐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버티다 1637년 1월30일 청나라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서울 송파 삼전나루(지금의 석촌호수 부근)에 가서 항복을 했다. 그리고 청나라 숭덕제에게 삼배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했다. 한 번 절 할 때마다 세 번씩 이마를 머리에 땅에 대는 항복의 예다. 이런 치욕의 역사를 알고 있었던 당시 광주부 유수가 활을 쏘기 위해 이위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고종 황제가 사용한 ‘호미명 각궁’, 국궁전시관 복제품

▲ 고종 황제가 사용한 ‘호미명 각궁’, 국궁전시관 복제품 ⓒ이재형



고유의 국궁 전통을 유지하는 황학정



지금도 우리 고유의 국궁 전통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황학정(黃鶴亭)이다. 1899년 6월 독일에서 하인리히 친왕(親王, 황제의 아들이나 형제)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고종은 명궁수 여섯 명을 불러 덕수궁 후원에서 활쏘기 시범을 보였다. 그 후 고종은 경희궁 북쪽에 활터를 짓고 황학정이라 이름 붙였다. 황학정이란 이름은 고종이 황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마치 학과 같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학정 현판

▲ 황학정 현판 ⓒ이재형


황학정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조선시대 전국의 활터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갑오개혁(고종 31, 1894)으로 과거제는 폐지됐다. 실의에 빠진 선비들은 활터를 떠났다. 주인을 잃은 활터에는 부러진 활만이 남았다. 고종황제는 활쏘기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조선의 대표 무기인 활을 더 이상 쏠 수 없자, 이후 심신단련 수단으로 궁술을 장려한 것이다. 이런 고종의 뜻이 황학정에서 1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황학정은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2011년부터 매년 활쏘기 대회를 열고 있다. 국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매일 활쏘기를 한다. 건강한 육체와 어진 마음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연습 때는 편한 복장으로 활을 쏘지만 국궁의 기본 복장은 흰옷이다. 


황학정에서 국궁 동호인들이 활쏘기를 하고 있다.

▲ 황학정에서 국궁 동호인들이 활쏘기를 하고 있다. ⓒ이재형


활은 한 번에 5개씩 준비한다. 여러 명이 쏠 때는 한 발씩 번갈아가며 쏜다. 활을 쏘는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나 된다. 국궁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시위를 당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처음 쏠 때는 활이 과녁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활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국궁전시관



황학정 옆에 국궁전시관이 있다. 2014년 9월 정식 개관했다. 1922년 일제 강점기에 옛 등과정(登科亭) 터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황학정은 국내 유일의 활터 문화재로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다. 국궁전시관은 1순에 5발을 상징하는 5개의 전시관과 기증 유물을 전시하는 기획 상설 전시 공간, 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5개의 전시관에서 우리 민족의 궁술 역사와 그 문화부터 우리 활의 우수성과 특수성까지 다채롭게 관람할 수 있다.


국궁전시관에 전시 중인 신기전

▲ 국궁전시관에 전시 중인 신기전 ⓒ이재형


다섯 개의 전시관을 차례로 둘러보면 우리 국궁의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다. 제1관 주제는 황학정의 설립이다. 황학정 설립 취지와 역사, 고종의 활 등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제2관은 우리 민족의 활을 다룬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활쏘기 문화와 역사에 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제3관은 그림 속 활쏘기를 보여준다. 신분과 지역 구분 없이 활쏘기 문화를 즐겼음을 알 수 있는 옛날 그림과 자료를 전시 중이다. 제4관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활과 화살 제작 과정을 표현한 밀랍인형과 제작에 필요한 재료 및 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제5관은 우리 활의 우수성을 알린다. 수준 높은 기술로 제작된 우리 활의 우수성과 독창적인 우리나라 활쏘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신동술 국궁전시관 관장이 화살 굽기를 시연하고 있다.

▲ 신동술 국궁전시관 관장이 화살 굽기를 시연하고 있다. ⓒ국궁전시관


체험관에서는 전통 활 만들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직접 가공하고 손질한 대나무 활과 화살 재료로 전통 활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활 만들기 체험은 매주 화~일요일 만 7세 이상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하다(수강료 일반 25000원). 활 만들기 프로그램은 행정안전부에서 인증하는 '대한민국 향토 명품 25선'에 선정되었다.


국궁전시관에서 전통 활을 만드는 신동술 관장을 만났다. 신 관장과 차 한 잔을 나누며 국궁 전통과 현대적 의미 등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우선 궁시장이 궁금했다. 신 관장은 “궁시장(弓矢匠)은 활과 활촉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저는 궁시장에게 활 만드는 기술을 전수 받았는데요, 체험교육 때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치고 있습니다. 활 만드는 일은 간단한 줄 알지만 그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지난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체험 때는 간단하게 만들도록 재료를 준비해서 우리 국궁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죠.” 



입신양명의 첫 단추는 활쏘기 능력이다



국궁전시관 신동술 관장

▲ 국궁전시관 신동술 관장 ⓒ이재형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올림픽 등 국제 양궁대회에서 한국이 왜 신궁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활을 잘 쏘는가였다.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신 관장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죠. 당시 활은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활을 쏘는 능력은 필수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황학정 자리는 등과정이 있던 자리였죠. ‘등과(登科)’란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르는 길입니다. 선비들에게는 입신양명의 첫 단추죠. 전국의 활터에는 무과시험 준비하는 선비들이 가득했습니다. 문과, 무과 모두 활쏘기는 기본과목이었기 때문입니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한 나라의 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습니다.”


홍건족과 왜구의 침입에 시달리던 고려 말, 함경도 변방의 무관 출신이었던 이성계는 뛰어난 활쏘기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결국 새나라 조선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과거제가 시행되었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무과시험을 통해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선비들은 육예(六藝)의 하나인 활쏘기를 필수 교양으로 삼았다.


북새선은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북새선은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국궁전시관 복제품 ⓒ이재형



<북새선은도>에 등장하는 파르티안 궁법



신 관장 얘기를 듣고 국궁전시관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조선시대의 화원이었던 한시각(韓時覺 : 1621~?)이 그린 <북새선은도>다. 이 그림은 1664년(현종 5년) 함경도 길주에서 실시한 문무과 시험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당시 함경도 길주는 한반도에서 가장 척박한 땅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말을 타고 활쏘기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처럼 말에 올라타 뒤로 활을 쏘는 것이다. 무과시험에서 ‘파르티안 궁법’을 사용하다니 놀랍다.


황학정 뒤편에 남아있는 등과정 암각

▲ 황학정 뒤편에 남아있는 등과정 암각 ⓒ이재형


본래 기마민족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마민족이 아니다. 한곳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활을 잘 쏠까? 황학정과 국궁전시관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딱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외침의 역사다.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우리는 생존수단으로, 아니 방어수단으로 활을 만들어 사용했다. 


활은 곧 우리의 자위 수단이었다. 외침은 끊이지 않았기에 활은 생활의 일부였다. 무용총 벽화에서 뒤로 활을 쏘던 고구려인,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과거시험을 보던 수많은 선비들의 활쏘기,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왔던 남이의 신궁 DNA가 우리 양궁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을까? 그 답을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 공간 정보 (국궁전시관)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9길 15-32(사직동 산1-1)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사직공원 쪽으로 도보 7분

개관 시간: 화~일요일 10:00~17:00(월요일은 휴관)

관람료: 성인 2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 군경은 1000원

홈페이지: http://www.hwanghakjeong.org

전화번호: 02)722-1600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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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이재형
인문쟁이 이재형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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