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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와 ‘보물산’이 있는 동네, ‘돌다리 골’을 아시나요?

대전 중구 석교동

인문쟁이 노예찬

2019-11-19

석교동을 거닐다 / 표지판 문구 : 돌다리로

▲석교동을 거닐다. ⓒ노예찬



석교동 이야기



대전역에서 급행 2번 버스를 탔다. 대전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이 버스의 노선은 신탄진에서 식장산까지 이어진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과거 ‘돌다리 골’이라고 불렸던 석교동이라는 마을이다. 석교동은 대전 중구에 속하지만, 대전의 중심은 아니다. 만약 대전에 남구가 있었다면 그곳에 속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남쪽에 위치해 있다. 버스는 대전역에서 대전천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문화의 거리가 있는 대흥동과 한밭야구장이 있는 문창동을 지난다. 부사동이 있는 큰 사거리를 지나면 비로소 석교동에 닿는다. 버스는 여기가 석교동인지 혹시 모를까 친절하게도 석교동 행정복지센터 바로 건너편에 정차했다. 


석교동에 있는 오래된 방앗간 / 문구 : 쌀, 떡, 풍년방앗간, 252-4332

▲석교동의 오래된 방앗간 ⓒ노예찬


지도상으로 봤을 때 석교동은 폭이 좁게 뻗은 길쭉한 동네였다. 북쪽으로는 하소동에서 시작되는 대전천이 흐르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우람한 산세를 자랑하는 보문산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과 가까워서인지 여유가 느껴지는 동네였다. 적어도 동네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과거의 석교동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보문산 쪽으로 향하는 마을에 대전 최고(最古)의 아파트가 있다. 무려 1971년 만들어진 제일아파트와 남양아파트가 그것이다. 


남양아파트 정문 / 간판 문구 : 남양아파트 68

▲남양아파트 정문 ⓒ노예찬


이 두 아파트는 과거 대전의 중심지였던 중구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70년대 초 문창동의 문창시장은 크게 번창했다. 당연히 유동인구가 많았고, 거주하는 인구도 많았다. 대전시는 당시 문창시장의 이용률을 확대하기 위해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한다. 철거하면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일아파트와 남양아파트다. 이제는 그 많던 사람들도 모두 신도심으로 떠난 모양이다. 마을에는 활기보다는 정적이 가득했다.


석교동 풍경 / 건물 간판 문구: 대복빌리지

▲석교동의 흔한 풍경 ⓒ노예찬


봉소루와 느티나무

▲봉소루와 느티나무 ⓒ노예찬



‘석교동’이라는 이름의 유래



마을을 둘러보면 유독 눈에 띄는 장소가 있다. 고풍스러운 기와집 한 채가 그것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건물이라 한눈에도 이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와집은 ‘봉소루(鳳巢樓)’라고 불린다. 이 건물을 건축한 사람은 조선시대 학자였던 남분붕(南奮鵬,1607∼1674)이라는 사람이다. 왜 갑자기 옛날 건물과 사람 이름을 꺼내는지 궁금할 것이다. 간단하다. 남분붕 선생은 석교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석교동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광해군 때 판결사에 올랐던 남분붕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봉소루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틈틈이 낚시를 즐겼는데, 고기를 잡으면 먹지 않고 다시 물속에 놓아주었습니다.

하루는 색깔이 유난히 고운 큰 잉어를 낚았는데, 그 잉어를 물에 놓아주자 잉어는 주위를 맴돌다가 물속으로 곧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남분붕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낮에 잡았다가 놓아준 잉어가 나타났습니다. 잉어가 하는 말이, '이 냇물엔 변변한 다리가 없어서 여러 사람이 통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내려가면 큰 바위가 있으니 그 바위로 다리를 놓으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튿날 남분붕이 잉어가 말한 곳에 가보니, 정말 그곳에 길이 15자, 폭이 4자나 되는 꼭 다리의 형태를 지닌 큰 돌이 있었습니다. 그 돌로 내에 다리를 놓으니 보기가 좋고,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데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후로 그 다리를 ‘돌다리’라 불렀습니다.

이 돌다리를 한자로 표기하여 석교(石橋)라 하였는데, 근처 마을의 이름 또한 이것에 연유하여 석교리(石橋里)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대전군에 편입하여 석교정(石橋町)이라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봉소루 근처에 대전천이 흘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당시 이 돌다리는 꽤 많은 사람이 이용한 모양이다. 충청남도나 전라도, 경상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이 석교동에 있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사람이 보문산을 넘어 처음 만나게 되는 마을이 바로 석교동이었다. 석교동의 돌다리를 건너 조선시대 대전의 중심인 회덕현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의 이름에서도 자연스레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봉소루를 지키는 하마석

▲외롭게 봉소루를 지키는 하마석 ⓒ노예찬



보문산성과 보문산



나는 과거시험을 보러 향하는 사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 보았다. 봉소루와 과거 돌다리가 있었다는 도로를 지나 보문산으로 향한 것. 보문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보문산으로 향하는 잘 알려진 길은 동물원이 있는 ‘오월드 길’이다. 석교동에서 이어지는 길은 그 반대편으로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의 장점은 사람이 없어서 조용하다는 점이지만 반대로 길이 제대로 닦이지 않아서 험하다는 단점도 있다. 마침 내가 선택한 등산로는 오랫동안 사람이 지나지 않았는지 풀이 우거져 있었다. 


보석천 약수터

▲보석천 약수터의 물 ⓒ노예찬


하지만 석교동에서 보문산을 오르면 신기한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과거 선덕여왕이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보석천 약수터와 고려 후기에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마애석불좌상이 그것이다. 가파르고 험한 길을 좀 더 오르면 백제시대 축조된 보문산성까지 구경할 수 있다. 


고려 후기 마애석불좌상

▲고려후기 마애석불좌상 ⓒ노예찬


이렇게 보물들이 가득한 보문산의 이름도 보물이라는 단어와 비슷하지 않는가? 문화유적이 많고 역사가 깊다 보니 보문산에도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온다. 이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보문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고, 원래 ‘보물산이 보문산이 되었다’라는 이야기다. 그중 한 가지 전설을 들어보자.


"옛날 지금의 보문산 기슭에 아들 오형제를 둔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이 각각 제 뜻대로 직업을 달리하여 분가를 하게 되자, 농부는 늙어 노인이 되도록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몹시 가뭄이 들어 연못에 한 방울의 물도 없이 바짝 마르자, 그곳에서 나온 두꺼비 한 마리가 농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농부가 두꺼비에게 물을 떠다 주었더니 두꺼비는 물을 마신 뒤에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해도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연못에 나가보니 작년의 그 두꺼비가 접시 하나를 가지고 와서 농부 앞에 놓고 사라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 접시에 담뱃재를 떨었는데 다음에 보니 접시에 재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상한 조화라고 생각한 농부는 동전을 놓아 보았습니다. 

이튿날 보니 접시에 동전이 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아들들이 접시에 탐을 내어 서로 다투었습니다. 아들들의 욕심과 시기를 염려한 농부는 그 접시를 몰래 뒷산에다 묻고 돌아오다가 숨이 차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이 그 접시를 찾았으나 영영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일대는 보물이 묻혔다하여 보물산, 다시 변하여 보문산이라 하였습니다."


보문산성 전경

▲보문산성 ⓒ노예찬


석교동의 경계를 따라 보문산을 걸었다. 마을은 생각보다는 작아서 한 바퀴를 도는데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을의 북쪽으로 향했다. 대전천이 흐르는 곳에 지금은 어떤 돌다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 향했다. 석교동의 대전천은 말끔하게 정비되어서 인근 주민들이 휴식처로 삼기에 딱 좋아 보였다. 산에서 갓 흘러나온 물은 상당히 맑았다. 아쉽게도 지금의 대전천에는 돌다리가 없다. 대신 자동차가 오갈 수 있는 석교가 이를 대신하고 있고, 그 밑에는 징검다리 하나가 그곳에 과거 돌다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놓여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물이 흐르는 것을 구경하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앞에 놓인 징검다리를 이용해 석교동을 벗어났다. 


돌다리 대신 놓여 있는 징검다리

▲돌다리 대신 놓인 징검다리 ⓒ노예찬




○ 사진 촬영_노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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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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