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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전국 팔도 시민 기자단이 보고 들은 인문 현장

한국 기부문화 일번지를 찾아서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018.12.18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의 외관

▲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의 외관


연말을 알리는 구세군 종소리가 들려온다. 각자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요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기부는 사회를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이 기부문화의 시초는 어디였을까. 바로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한 번은 들어봤을 ‘국채보상운동’이다. 한국 최초의 기부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대구에 자리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찾았다. 



국채보상운동, 그 첫 시작


국채보상운동은 일제로부터 도입한 차관을 갚아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고자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기부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 최초의 기부운동뿐 아니라, 최초의 시민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심지어는 금연운동이기까지 하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에 반발하여 전 국민이 처음으로 하나 되어 뜻을 모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 또한 매우 크다. 최근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0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경제주권수호운동의 문을 열다

▲ 경제주권수호운동의 문을 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김광제와 서상돈이 발표한 국채 1300만 원 보상 취지 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2천만 명이 3개월 동안 금연하여 각자 매달 20전을 모으면 강토를 지킬 수 있다고 외치며, 범국민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국채보상운동의 첫 불씨를 지핀 한 자 한 자에는 대한의 경제 주권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국채보상회 사통 취지서

▲ 국채보상회 사통 취지서

 

1907년 2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김광제, 박해령 등 16명은 국채보상회를 발기하고 본격적인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회장을 맡은 심호택은 주민들에게 취지서를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며 운동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전시관에서는 이 사통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알 수 있다. 



지역과 신분을 초월하다


(좌)국채보상영수증 / (우)국채보상성책

▲ (좌) 국채보상영수증 (우) 국채보상성책


인터넷, 전화가 없던 100년 전임에도 선조들은 붓에 먹물을 묻혀 정성스레 사통과 취지서를 써 보냈다. 대구에서 경상도로, 경상도에서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함경도까지 퍼지며 전국이 들썩였다. 운동의 열기는 한반도에서 그치지 않고 재외 동포들에게도 퍼졌고, 그들은 각 지역에 국채보상단체를 세워 힘을 보탰다. 기부한 금액과 기부자가 기록된 국채보상영수증과 국채보상성책에서는 운동의 파급력과 전개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엄격했던 신분의 경계조차도 국채보상운동의 열기를 막을 수 없었다. 시장 상인을 중심으로 한 민중세력에서 시작한 운동은 점차 양반세력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당시 가장 천대받던 기생, 노비, 지게꾼, 심지어는 걸인과 도적떼와 같은 최하층민까지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전시관에는 앉은뱅이 걸인 정만권의 모형이 전시되어있는데, 그는 구걸하여 모은 돈을 의연하기도 했다. 이렇듯 온 국민이 동참했던 운동의 소식은 황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광무황제는 민중처럼 담배를 끊고, 영친왕의 길례마저 미루며 마음을 더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운동에 참여하는 선조들의 열정적인 애국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실패, 그리고 또 다른 시작


국채보상운동을 알린 대한매일신보

▲ 국채보상운동을 알린 대한매일신보


일제가 국채보상운동을 가만히 내버려 둘리 없었다. 전국적으로 번져나가는 불길을 잡기 위해 보안법, 신문지법 등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이끌던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했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계속해서 운동의 소식을 전했다. 이에 일제는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었던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으로 모함하여, 국민 내부의 균열을 조장했다. 결국 운동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실패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하지만 국채보상운동의 결말을 비단 실패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국채보상운동 이후 다양한 단체들이 세워지며 항일운동을 이어나갔다. 국채보상운동이 꽃 피워낸 온 국민의 애국심은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국권 회복 운동을 있게 한 밑거름이었다. 



오늘을 있게 한 국채보상운동

 

한국기부문화일번지

▲ 한국기부문화일번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의 벽에는 ‘한국 기부문화 일번지’라 쓰인 액자가 걸려있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첫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웃음을 나누며 온기를 더하는 오늘날의 기부와는 달리, 애국심 하나로 일제의 풍파를 견뎌낸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마땅히 이 희생의 역사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보존해나가야 할 것이다. 


사진=김상협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주소 :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70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운영시간 

 3월-11월(하절기) 매일 09:00 - 18:00

 12월-2월(동절기) 매일 09:00 - 17:00

 월요일 휴무


홈페이지 : http://www.gukchae.com/

문의 : 053-745-6753

장소정보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국채보상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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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4기 김상협
인문쟁이 김상협
2018 [인문쟁이 4기]


어릴 때 다른 사람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행복한 사람이라며 자라왔다. 꿈이 곧 직업이다는 말을 싫어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했지만 레크레이션 강사, 태권도 사범 등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헌혈 100회, 봉사활동 1000시간을 하며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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