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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떠나는 당일치기 시간여행

답십리 고미술상가

인문쟁이 김세희

2018-12-11

헌책방에서 추억을 집어 들 때의 마음 그대로, 할머니 앞에서 어리광부리던 때의 마음 그대로, 답십리역 1,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그곳엔 넓고 따뜻한 품으로 우리에게 세월과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답십리 고미술상가가 기다리고 있다. 



고미술상가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2,3동(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99) ⓒ 김세희

▲ 답십리 고미술상가 2,3동(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99) ⓒ 김세희


'상가'라는 이름 때문에 아담하리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꺾으면 양옆으로 5동과 6동이 자리 잡고 있고, 5동 쪽으로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2동과 3동이 길게 펼쳐져 있다. 고미술상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하기에 하루는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과거로 떠나는 시간 산책을 가볍게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눈길을 끄는 고미술품과 인사를 나눈다. 천천히 바라보다 정이 들어버리면, 집으로 가져와 인연을 맺으면 된다. 느리게 흘러가는 답십리 고미술상가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래가 오간다. 



고미술상가 사람들을 만나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6동 ⓒ 김세희

▲ 답십리 고미술상가 6동 ⓒ 김세희

 

상가를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인상 좋은 어르신이 맞은편 상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상점주인 내외가 나와 안부를 물었다. 추운 날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오셨다는 말이 첫인사다. 알고 보니 인상 좋은 어르신은 옆 상점 주인이다. 별다른 말없이도 눈빛만으로 소통하는 사이, 고미술상가 사람들을 만났다. 



1. 만복당


 '만복당(2동 153호)'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 고미술품들 ⓒ 김세희

▲ '만복당(2동 153호)'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 고미술품들 ⓒ 김세희

 

만복당은 목기를 다루는 기술자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따로 창고까지 가진 만복당에는 참기름을 짜면 받곤 했던 그물 가방, 물동이를 이고 다닐 때 머리에 썼던 고정틀 등 지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소개됐던 이곳은 방문할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있는 놀이터다. 무심코 버리게 되는 물건들도 세심한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주인 어르신은 마치 자식 바라보듯 고미술품을 아낀다. 


“예쁜지 몰랐던 게 어느 날 갑자기 반짝이는 때가 있어. 그럼 주인을 만나 시집을 가더라고.”


자식 같던 고미술품이 제짝을 만나 떠나갈 때의 마음이 담긴 주인 어르신의 한마디는 가슴에 박혔다. 



2. 예든

 

밝은 분위기가 배어 있는 고미술품점 '예든'

▲ 밝은 분위기가 배어 있는 고미술품점 '예든' ⓒ 김세희


예든은 ‘옛것이 가득 든’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그 이름이 예뻐서 두드린 문 너머에는 밝고 젊은 주인이 있었다. 그녀는 ‘반닫이’를 소재로 석사 논문을 썼을 정도로 대단한 고미술 애호가였다. 예든과의 인연은 한참 전으로 올라가는데, 원래 그녀는 주인이 아닌 직원이었다. 그녀에겐 다른 매장에서 고미술상가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사부가 있다. ‘고미술품은 가격이 높은 것부터 배우게 되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까닭이다. 가르침에 따라 작은 소품에서부터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간 그녀는 직원에서 주인이 되었다. 고미술품에 대한 그녀의 끈기 있는 열정은 고미술상가의 빛이었다. 일본어로 관광객과 직접 소통하며 고미술상가를 알리려 노력 중인 그녀의 애정은 현재진행형이다. 



3. 고예촌


고예촌(古藝村 : 2동 157호) 김명순 대표 ⓒ 김세희

▲ 고예촌(古藝村 : 2동 157호) 김명순 대표 ⓒ 김세희


고예촌의 김명순 대표는 고미술상가의 번영회장이다. 무용을 전공했다는 그녀가 어떻게 20년째 고미술과 함께하게 된 것일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어느 날 발견한 코발트빛의 도자기 무늬였다. 하지만 동적인 예술에 익숙했던 그녀가 정적인 고미술과 마음을 나누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직접 자수를 놓은 목침을 만들기도 하면서 고미술과의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남다른 취향을 지닌 '고예촌'의 분위기 ⓒ 김세희

▲ 남다른 취향을 지닌 '고예촌'의 분위기 ⓒ 김세희


고미술과 함께해온 역사를 돌아보며 그녀는 고미술의 내일을 이야기했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와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 그러나 50년 이상이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고미술품의 국외 반출을 규제하는 법안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모든 고미술품의 유통을 막는 대신, 등급을 나누는 등 융통성을 발휘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는 곧 청계천을 주변으로 1980년대부터 삼삼오오 모여 이뤄낸 고미술상가의 미래를 위한 간절한 목소리였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내일을 위해서 


고미술상가 5동 복도 ⓒ 김세희

▲ 고미술상가 5동 복도 ⓒ 김세희


고미술상가는 답십리에 있는 2, 3, 5, 6동이 전부가 아니다. 네 동의 상가는 고미술상가의 서부에 해당하고, 동부는 장한평의 우성상가와 송화빌딩에 자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미술품들이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게 의미가 깊고 가치 있는 곳은 문화 콘텐츠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고미술품과 평생을 살아온 이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상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날이었다.


 

 

 

* 한국 고미술 협회 *

http://www.hkom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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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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