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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50년 손으로 일군 바닷가 화원

공곶이 수목원 강명식, 지상악 부부

조경국

2018-11-23


“지금 오면 어쩌누. 공곶이 수목원엔 봄에 와야 해요. 2월 말쯤 오면 내려오는 길이 동백꽃 천지가 되니까. 그때 와야 좋은데.”


이르게 피었다 졌는지 공곶이 수목원으로 가는 200미터쯤 되는 동백꽃 터널에는 점점이 붉은 꽃이 박혀 있었다. 몇 송이 남지 않은 동백꽃의 향기가 이리도 진할 줄은 몰랐다. “향긋한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는 김유정의 <동백꽃> 한 구절이 내내 생각났다. 사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꽃이다. 강원도에선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 부르지만 아무렴 어쩌랴. 소설 중에 꽃 속에 파묻힌 심정을 묘사한 구절 중에 이보다 적절한 것이 어디 있겠나.


동백꽃


동백꽃 터널을 지나며 계속 심호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쌀쌀한 늦가을 바닷바람에 스민 동백꽃 향기는 청량하고 감미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향수를 가져와도 지금 이 향기만 못하리라. 50년 공곶이 수목원을 가꾼 강명식 선생님은 동백꽃이 활짝 피는 시절에 와야 제대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웃었다.


“1969년부터 이곳에 살았어요. 동백꽃 터널 333개 돌계단도 모두 손으로 일구어 쌓았죠. 처음에는 황무지라 길도 험했어요.”


좌) 동백꽃, 우)동백꽃 터널



200미터 동백꽃 터널에서 향기에 취하다


이곳을 찾기 위해 네비게이션에 공곶이 수목원을 입력하니 예구마을 포구까지만 길을 알려줬다. 지나는 마을 주민에게 수목원의 정확한 위치를 물었더니 포구 주차장에 차를 놓고 ‘공곶이’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일렀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서 한참이나 두리번거리고 해변까지 헤맸다.


강명식 선생님 댁을 찾는 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곳에 과연 집이 있을까 생각할 때쯤 어디선가 강아지 세 마리가 컹컹대며 나타나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공곶이 몽돌해변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커다란 후박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수선화 구근과 천리향 묘목을 파는 무인 판매대가 있었다. 수선화 뿌리 하나에 1천 원, 천리향 묘목은 한 그루에 3천 원이었다.


한참 무인 판매대가 있는 후박나무 그늘에 서 있었지만, 강명식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서성대다 밭 일을 나가시는 강명식 선생님의 부인 지상악 선생님과 마주쳤다. 지상악 선생님이 전화를 걸자 온실에서 천리향 묘목을 보살피고 있던 강명식 선생님이 나오셨다.


무인 판매대


강명식 선생님은 올해 여든일곱, 지상악 선생님은 여든셋. 두 분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강명식 선생님은 진주 문산이 고향이고, 지상악 선생님의 고향이 공곶이가 있는 거제다.


“여기 가까운 곳(지세포)에 윤요셉 성인 순교지가 있는데 외가 쪽으로 집안 분이에요.

내가 시집갈 때만 해도 같은 천주교 신앙인이어야 집안 허락을 받을 수가 있었죠.”


지상악 선생님이 강명식 선생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윤요셉 성인은 지난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거제로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다 체포되어 1888년 진주에서 순교했다. 강명식 선생님이 이곳을 찾았을 때 경관뿐만 아니라, 윤요셉 성인 성지가 가까운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초대받아 소박한 농부의 식탁에 앉아 두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엔 대구에 살다 1969년부터 이곳 거제에 정착하여 처음에는 귤 농사를 시작했다고. 그때도 공곶이에는 딱 한 가구가 살고 있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경작하던 조그만 밭뿐이었다. 수목원 땅을 일구는 세월 동안 그 땅을 모두 매입했다. 그러나 사유지에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귤나무 얼어 죽고 키우기 시작한 수선화와 동백나무


강명식 선생님은 날씨가 따뜻한 거제에서도 귤을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에는 가마니로 나무를 싸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등 몇 년 고생 끝에 겨우 수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1976년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다. 공곶이 앞바다가 두껍게 얼어붙을 정도의 강추위였다.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귤나무들은 속수무책으로 얼어 죽었다.


“그때만 해도 귤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귤이 귀했죠. 제주까지 가서 귤 재배법을 배우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줬으니까. 귤나무를 심으려고 4km나 고랑을 팠지. 가로세로 2m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2천 주정도 심었어요. 그런데 1976년에 큰 한파가 와서 나무가 다 얼어 죽었지. 정말 힘든 시절이었어요. 다른 건 기억이 가물거려도 한파가 왔던 그해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귤 농사에 실패한 이후엔 유자를 심으려 했지만, 유자는 귤보다 더 수확할 때까지 나무를 키우는 기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선택한 것이 현재 공곶이 수목원을 대표하는 동백과 수선화였다. 부산에 내려갔던 강명식 선생님이 그곳 묘목상에서 수선화 구근 몇 개를 사온 것이 시초였다.


“그때 주머니에 가진 돈이 별로 없었어요. 수선화 뿌리가 왜 하필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가진 돈을 털어 살 수 있는 게 몇 뿌리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걸로 시작했죠. 이렇게 수선화가 예쁘게 필 줄은 몰랐으니까.”


강명식, 지상옥 선생님 부부



“빨리빨리 키울 수 있는 건 없어요”


봄이 되면 공곶이 수목원은 노란 수선화와 붉은 동백꽃으로 가득한 천상의 화원이 된다. 3, 4월은 거제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만큼 찾는 사람도 많다. 이제는 공곶이 수목원뿐만 아니라 해변과 산길을 걷는 산책로도 입소문이 나 봄이 아니어도 수목원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수선화가 만개한 공곶이의 모습

▲ 수선화가 만개한 공곶이의 모습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밖에서 강명식 선생님을 찾았다. 학교 화단에서 수선화를 키우고 싶다는 어느 학교 교장 선생님 일행이 재배 방법을 묻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다시 선생님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씀하셨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농사는 인내해야 해요. 실패했다고 좌절하면 안 되지. 인내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지요. 빨리빨리 키울 수 있는 건 없어요. 50년 동안 땅을 일구며 얻은 깨달음은 그거 하나인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은 다들 급하게만 서두르려 하니까. 참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면 됩니다. 그럼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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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조경국
조경국

조그만 동네 헌책방 소소책방을 여섯 해째 꾸역꾸역 꾸리고 있는 책방지기다. 책 파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계속 의심하고 있다. 엉덩이가 가벼워 오토바이 타고 이곳저곳 쏘다니기를 좋아한다. <필사의 기초>,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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