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광명] 수확이 끝나면 꿈이 연주된다

노래하는 농부 김백근

김지혜

2018-10-26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드럼과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 앰프까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기타를 멘 백발의 사내가 마이크 앞에 선다. 부드러운 미소가 꼭 가을빛을 닮았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꿈을 연마한 지 삼십 년. 농부 가수 김백근 씨는 어엿한 싱어송라이터로 자신만의 논두렁 음악회를 열고 있다.


노래하는 농부 김백근



하늘과 땅을 향해 전하는 진심


햅쌀만 귀할까, 꿈을 잃지 않은 자의 목소리도 그에 못지않다. 광명에서 1만 5000평 대지에 농사를 짓고 있는 김백근 씨의 이야기다. 2009년 1집을 낸 그는 처음엔 공연장을 빌려 개인 콘서트를 열었지만 2012년부터는 집 앞 논두렁에서 음악회를 열고 있다.


“땅의 소중함을 전하는 노래를 만들다 보니 음악회도 논에서 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공연장에서 하면 이점도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논에서 음악회를 해봤는데 생각보다 반응도 좋고 의미도 있었죠. 논두렁 음악회가 주는 특별함도 컸고요.”


음악회는 매해 이름이 바뀐다. 그 안에 담긴 주제는 한결같은데 하늘과 땅에 대한 고마움이다. 농사도 인생도 인간의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의 깨우침이 담겨 있다. 진정성에 감명한 이들이 많아 함께 공연하는 사람도 관객도 갈수록 늘고 있다. 올해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씨를 비롯해 국립국악원 김미나 명창, 트로트 가수 박창금, 오즈밴드까지 다양한 곡이 연주된다. 거기에 직접 준비한 떡과 음식, 막걸리를 나눠 마시니 잔치가 따로 없다. 개인 음악회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광명의 축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좌) 노래하는 김백근씨, 우) 논두렁 음악회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우려가 컸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관람객이 늘었고 2015년에는 빗속을 뚫고 비닐하우스로 달려와 준 사람도 많았다.


“그 당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공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음악과 빗소리가 만나니까 또 다른 음이 생기더라고요.

다들 좋아했어요.”


포기하지 않는 것, 김백근 씨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30년 전 밴드가 해체되고 농부가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이방인에서 농부가 되기까지


그의 방에는 오래된 레코드판이 많다. 소년 시절부터 한 장 한 장, 모은 것이다. 카세트로 들었던 첫 팝송에 대한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소년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고등학교 때, 오디오 진공관 앰프를 얻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하드락도 듣고 펑크락도 들었지요.

핑크플로이드를 가장 좋아했는데 여전히 좋은 밴드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기타를 배우게 됐고 이십 대에는 이방인이라는 밴드 활동도 했어요. 사는 게 이방인 같았으니까요.”


좌) 김백근씨 기사로 만든 액자와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우)오래된 레코드판 들


기타도 작곡도 독학으로 깨우쳤다. 음악과 가까워질수록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며 품삯을 받아 기타를 샀다. 손등이 터지도록 일하고 돈을 모아 또 기타를 샀다. 가진 건 기타와 꿈밖에 없던 사내를 받아준 건 땅이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며 낮에는 농부로 살았고 밤이 되면 노래를 했다.


“농사가 주는 경이로움이 있어요. 내가 한 만큼 얻을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죠. 욕심을 버리게 돼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죠.

음악도 마찬가지였어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하니까 다른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흙을 만지면서 손이 거칠어졌다. 그 손으로 기타를 잡으면 힘이 더 들어갔다. 노동과 꿈 사이에서 한숨도 고민도 많았다. 그럴 땐 노래를 만들고 툭 털었다. 모든 것이 살아가는 이유였고 힘이라고 믿었으니까. 김백근 씨는 그 마음으로 논에 선다. 넉넉한 들판에 안겨 노래한다.  


  • 광명
  • 농부가수
  • 김백근
  • 논두렁음악회
  • 농사
  • 기부
  • 노래
필자 김지혜
김지혜

사람이라는 텍스트를 좋아하는 인터뷰어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광명] 수확이 끝나면 꿈이 연주된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