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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그리고 기억하기

중동 작은 미술관

인문쟁이 안준형

2017-05-11

 


 

대전 중동에 새로운 미술관이 문을 연다고 한다. 중동이면 원 도심인 중앙동 안에서도 제법 후미진 편에 속하는 구역이다. 가깝게 대전역이 위치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발길이 그다지 닿지는 않던 곳이다. 그런데 그런 중동에 미술관이 들어선다니 이건 궁금한 일이다. 그 미술관의 이름은 ‘중동 작은 미술관’이라고 한다. 옛 중앙동 주민 센터를 리모델링하여 2월 2일부터 개관전시를 가졌다. 개관전의 제목은 <중동마을에는 사연도 많지>라고 한다.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중동일대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주요한 주제인 듯하다.


중동 작은 미술관

▲ 중동 작은 미술관. 옛 중앙동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하여 2월 2일 개관식을 가졌다.

 

사실 미술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문화이다. 특히나 오늘날의 미술관들이 가진 이미지는 대게 이런 것이다. 막연히 어떤 교양을 갖추고 들어가야 하는 곳. 몹시나 고요한 장소…. 또 미술품들은 난해하고 쉽게 감상하기 힘든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중동 작은 미술관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직접 우리들의 일상과 삶을 주제로 삼았고 먼저 관람객들, 그리고 주변의 주민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포스터와 1층 기록


1층 휴게실2층 기록3층 기록

▲ 포스터 / 1층 기록 / 1층 휴게실 / 2층 기록 / 3층 기록


<중동마을에는 사연도 많지> 기록, 그리고 기억하기

‘기억하기’와 ‘기록’은 이 전시를 메우고 있는 주요한 키워드들 중의 한 쌍이다. <중동마을에는 사연도 많지>라고 하는 전시제목을 시작으로 이곳의 작업들은 저마다 ‘기억’과 ‘기록’에 관한 주제들을 붙들고 있다.


먼저 1층 최주희 작가의 <중동풍경> 시리즈를 보자. 시리즈 안의 <중동미술관 나무>는 직접적으로 이 미술관 건물 앞에 있는 느티나무를 그려 기록한 그림이다. 같은 층 ‘이유 있는 공간’(팀)은 중동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미술을 통해 마을에 개입해보고 그 과정을 기록하였다. 김해민 작가의 <중동사념>은 중동의 옛 기억들에 관한 영상작업이다. 홍원석 작가의 <중동일기> 역시 주변 ‘소제동’에서의 개인사적 기억을 엮어 올라간 영상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외에도 각 작가들이 가진 ‘기억’과 ‘기록’에 대한 관점들은 그들 작업의 주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기억하기’와 ‘기록‘이란 말을 자꾸만 되뇌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왜 중요한 것일까.


그 한 쌍의 말들은 모두 과거에 관한 것이다. 먼저 기억이란 나 자신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일이다. 이유는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좋았거나 혹은 나빴던 일을 떠올리는 것. 그런데 ‘기억하기’의 마술은 떠올린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다. 기억은 과거에 겪었던 일을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로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기억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혹은 현재의 상태에 의해서 충분히 왜곡된다. 그래서 기억은 순수한 의미로 과거에 대한 일은 아니다.


기억하기 다음에 붙어오는 ‘기록’이란 또 무엇일까. 그것은 ‘기억하기’라는 일시적인 복기를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는 일이다. 기록은 기억에서 한 겹의 목적과 필요를 더한 것이다. 그러나 기억과 기록이 무한한 연속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을 지닌, 좋게 말하면 유연한 것이라면 기록은 특정한 필요를 위해서 고정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작은 미술관의 전시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 중동마을 이곳저곳을 기록했던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저 잊혀가는 것을 기록할 뿐이다’라고 퉁치고 넘어가버릴 수도 있다. 사실은 그게 바로 기억과 기록, 그리고 과거에 대한 오늘날의 냉소적인 태도를 곧이곧대로 일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굳이 전시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런 냉소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동의 작은 미술관이 어떤 이유에서 마을의 사연을 불러오는지 헤아려보는 일은 분명 쉽지는 않은 일일 테지만, 한번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횡단하는 일로 시작해보자.


김나현 작가는 ‘곳, 곳’이라는 작업에서 조금 색다른 방식의 기록하기를 시도했다. ‘회화’면서 ‘설치’이기도 한 ‘곳, 곳’은 작가가 직접 중동마을을 거닐면서 포착한 일상적 풍경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난 뒤, 그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거리들 속에 걸어 놓았던 현수막-설치작업이다. 전시장 안에서는 그림이 설치되어 있던 거리들을 기록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제목인 ‘곳, 곳’이 가리키는 ‘곳’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들 안에서도 쉬이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 이를테면 얼룩진 벽이나 아무렇게 방치된 화분들이 쑤셔 박혀있는 구석지고 소외된 장소들이다. 김나현 작가는 그런 소외된 것들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우리들의 내부에 있을 수 있음을 사려 깊이 더듬는다.


김나현 작가의 작품 1김나현 작가의 작품 2


김나현 작가의 작품 3김나현 작가의 작품 4

▲ 김나현 작가의 작업 ‘곳, 곳’


‘곳, 곳’은 사진기록물이다. 때문에 거리에 설치된 그림 자체보다는 그 그림이 걸려있는 거리를 기록한 것이 더 주요하다. ‘기억’이 충분히 왜곡될 수 있는 유연한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어쩌면 기억하는 행위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곳, 곳’은 그런 ‘그림그리기’의 표현과 굴절의 과정을 통해서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나름의 사소한 헌정의 제스처를 보인다.


중동사념과 중동일기중동일기

왼쪽, 김해민 작가의 <중동사념>, 오른쪽, 홍원석 작가의 <중동일기> / 중동일기


김나현 작가의 ‘곳, 곳’이 미술로서의 ‘기록’에 대한 얼개를 그려나갔다면, 홍원석 작가와 김해민 작가는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건드리고 있다. 홍원석 작가의 <중동일기>는 제목처럼 중동을 배경으로 서술되는 개인사적 페이크다큐이다. 3대에 걸친 택시 드라이버가정이라고 하는 그가 실제로 대전에 거주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상물은, 지역에 대한 기억을 개인적 기억으로 재구성한다. 반대로 김해민 작가는 지역에 얽힌 공동체적 기억들을 불러온다. 중동지역에 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버랩 시키는 형식의 <중동사념>은 홍원석 작가의 개인사적 서술과는 많이 상이한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지역에 대한 개인사적 기억, 그리고 공동체적 기억은 생각만큼 엇갈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동에 관한 기억은 개인사와 공동체적 기억을 모두 들어보았을 때 더욱 실체가 잡히는 듯 보인다.


이방인의 쉼터 1이방인의 쉼터 2

▲ 기경지작가의 <이방인의 쉼터>


‘기억하기’도 ‘기록’에 관한 주제도 가지지 않았지만, 이 전시에서 유독 중요한 메타포로 눈여겨봐야 할 작업은 바로 <이방인의 쉼터>이다. 구석진 부스 안에 편안해 보이는 흔들의자와 두 권의 동화책, 그리고 기경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로 이루어진 <이방인의 쉼터>는 다른 작업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중동마을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마을의 위상에 대해서 가늠해볼 수 있게끔 한다.


먼저 작가가 주목하는 것들을 읊어보면 ‘낯설음’과 ‘비가시성’이라고 한다. 이건 이 전시의 주제를 생각해보면 좀 어색한 일이다. 마을의 일상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일상이 낯설고 삶이 비가시적일 수 있을까.


<이방인의 쉼터>에 놓여있는 두 동화책 중 한권의 줄거리를 잠깐 이야기해보자.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여자는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 점을 그다지 어색하게 여기지 않고서 살았다. 그러나 문제는 바깥의 세상에 나가고 부터다. 여자의 얼굴에 나있는 점이 타인들과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점은 점점 그녀 자신을 낯설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분인데도 말이다. 어느 원도심의 한적한 마을은 어떠한가. 여느 오래된 골목길이나 후미진 마을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완전히 잊히거나 또는 재개발되어 지금 같은 모습을 감쪽같이 지울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한 세계에서, 혹은 변화될 세계에서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은 정말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삶이 비가시적이고 낯선 삶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장신작가 페인팅이오팀 드로잉


이오팀 페인팅중동풍경

▲ 장신 작가의 페인팅 / 이오팀의 드로잉 / 이오팀의 페인팅 / 최주희 작가의 <중동풍경>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기억하기’와 ‘기록‘은 왜 중요한 것일까. 이번 전시를 한번 되돌아보면 질문은 좀 더 구체적 이어질 것이다. 소외되고, 잊혀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 기경지 작가가 <이방인의 쉼터>에서 멋지게 암시했듯이 그건 소외시키고 잊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반발의 제스처일 것이다. 도통 끝을 알 수가 없는 오늘날의 개발과 진보에 대한 반동의 몸짓에 해당할 것이다. ‘기억하기’는 앞날의 시간만을 향하는 모종의 힘에 대해서 강한 저항의 중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그저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사소한 감상에 젖어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사진= 안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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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2기]


안준형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여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현재 거주 중에 있는 어린 미학도이다. 학교 재학동안에 들었던 비평수업의 영향인지 artwork보다도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느껴 혼자 간간이 글을 써왔었다. 인문쟁이 모집공고를 보게 되어, 문화 활동이나 전시 등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글을 쓸 수 있게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평소 만나보고 싶었던 역사적 인물로는 재야운동가이신 기세춘선생님이 있었는데 집이 가까워서 조만간 뵐 수 있을 것 같다. mgom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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