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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어묵 장수의 특별한 취미

시 낭송가 정인성 씨

심춘자

2018-12-28


몸과 마음이 아픈 그때, 시 낭송을 만났다


정인성 씨에게 시 낭송은 우연히 찾아왔지만, 어쩌면 그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정 씨는 젊어서부터 개인사업을 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개인사업은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성공 가도는 사회 시스템이 바뀌면서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어려워졌다.

주머니가 얇아지고 몸과 마음이 고단하던 때에 시 낭송과 만나게 되었다. 7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 낭송 동호회의 활동을 보았고, 시 한 편 한 편을 알게 되면서 차츰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는 술과 담배로 현실을 잊으려 해왔는데, 시 낭송하는 사람들은 술 없이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후 그는 수원에서 시와 낭송에 관련된 모임이나 동호회를 여러 달 찾아다녔다.


정인성씨


“돌이켜보면 ‘시상’이나 ‘시인과 농부’ 등 카페에서 시인들이 모여 낭독회를 열고 있었죠. 기관에서 시 낭송을 가르치는 곳이 있었지만 정보가 부족한 저로서는 알지 못했어요. 시를 혼자만 좋아하다가 서울 문학의집을 알게 되어 교육과정을 마쳤고 시 낭송이 있는 곳이라면 수도 없이 찾아다니면서 배웠어요.”


처음 시 낭송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는 시 낭송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낭송문화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빵과 밥이 따르지 않은 일을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금방 포기할 것으로 여겼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그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뭔가를 시작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갖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과 시간에서 짬을 내 시 낭송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특히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아내가 있어 더 적극적으로 시 낭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아내가 가장 고맙다.


“시 낭송을 3년쯤 했을 때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어요. 소감발표를 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수고했어’라는 짧은 답이 왔어요. 그때가 가장 기뻤죠. 아내의 인정이 저에겐 가장 큰 상이었거든요.”


20년 동안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작년 봄, 여기산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으로 이사 왔다. 어묵도매와 얼음 배달이 그의 본업이지만 요즘은 종종 문화행사에서 초청 시 낭송 의뢰도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응한다고.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時


정인성 씨는 새벽부터 아침까지는 어묵 판매를 하고, 그 이후에 거래처에 얼음을 배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점심은 밖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어느 날 배달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는데, 휴식 시간이라 직원들은 잠을 자거나 자유롭게 쉬고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그는 미안한 마음을 시 낭송으로 표현했다. 시 낭송이라고 말했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송을 시작하자 직원들은 편안한 자세에서 감았던 눈을 반쯤 뜨고 실눈으로 쳐다보더니 두 번째 연을 시작할 때쯤에는 일어나 앉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낭송이 끝나자 직원들은 일제히 손뼉을 쳤다.


또 언젠가 점심을 먹기 위해 늦은 시간 국숫집을 간 적이 있는데 기다리는 동안 이상국 시인의 ‘국수를 먹고 싶다’를 낭송한 적이 있었다. 다음날 그 식당에 가니 주인이 기다렸다며 반색을 하더란다. “시 낭송이라는 걸 했다는데 직원들이 어제부터 계속 당신 시 낭송 얘기를 하는데 궁금해서 기다렸다. 나도 듣고 싶다” 하여 다시 낭송을 들려주었다. 얼마 지나 다시 들른 식당에는 시 ‘국수가 먹고 싶다’를 액자에 넣어 식당 양쪽에 걸어두었다고 했다.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환자들이 뜸한 시간을 이용하여 직원들을 모아 놓고 시 낭송을 하기도 하고, 유치원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맞는 시를 들려주기도 했다.


“시 낭송을 많이 해드렸어요. 고마울 때도 시를 인용하여 낭송을 했고 미안할 때도 낭송을 했어요. 그리고 저의 낭송을 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 낭송을 했어요. 상황과 연령에 맞춰서 시를 낭송해 드렸지요. 가리지 않고 낭송을 했던 것이 돌이켜보면 트레이닝을 하고 담력을 쌓는 과정이었어요.”


시 낭송하는 정인성씨


지난여름에는 얼음을 배달하는 시 낭송가로 유명해졌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모두 고생했을 때, 수원시에서는 버스정류장마다 얼음을 비치하여 조금이라도 시민들이 더위를 잊을 수 있게 했다.


“(수원시청) 대중교통과에서 얼음을 배달해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첫날은 얼음만 배달했는데 미끄러지더라고요. 그래서 (얼음을) 박스에 넣고 감성적인 메시지가 있는 시구를 넣으면 더 좋겠다 싶었죠. 김춘수 시인의 ‘꽃’이나 나태주 시인의 ‘풀꽃’ 등 시어를 넣기도 하고 약간은 패러디해서 시원한 느낌이 들게 했어요.”


그 이후 얼음은 감성적인 시문과 함께 수원시 전역 버스정류장 18곳에 열흘간 배달되었다. 


수원시버스정류장

▲ 수원시 버스정류장에 시문과 함께 배달된 얼음


“얼음만 있는 것보다는 감성적인 문구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뿐인데 시민들은 좋았나 봐요. 시민들이 SNS에도 올리고 시청 영상팀에서 취재도 나오고 끝나고 대중교통과 담당자를 만났는데 손을 꼭 잡고 무척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관리자들한테 많은 칭찬을 받았다면서. 아름다운 시문을 찾고 문구를 적어 넣으면서 재미있게 일했는데 제가 감사했죠. 행복했고요.”



시 낭송 카페 ‘소담소담’


이런 정인성 씨의 시 사랑은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정인성 씨의 딸 유진 씨는 얼마 전에 카페 ‘소담소담’을 개업했다. 시 낭송을 위한 카페이다. 낭송 연습을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카페 공간을 개방하고 음향기기까지 완비했다. 가족들이 운영하는 찻집의 분위기는 그래서 그런지 따뜻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올해 7월 카페를 개업한 이래 정인성 씨와 유진 씨는 크고 작은 문학 행사를 열었다.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실전 무대 수업을 하기도 하였고,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10월에는 이근배 시인을 모시고 수원 시낭송가협회 회원들과 한자리에 모여 시가연을 열었다. 귀뚜라미 우는 밤에 ‘수원화성 아! 달 있는 밤’을 타이틀로 전문 시 낭송가들의 낭송과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카페 소담소담에서 열린 시가연

▲ 카페 ‘소담소담’에서 열린 시가연


정 씨의 하루는 온통 시 낭송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정치는 희망적이어야 하고 경제는 도전적이어야 합니다. 사회는 행복해야 하고 문화는 기쁨을 줘야 해요. 저는 행복하고 기쁜 사회로 갈 수 있는 환경을 시 낭송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가 시 낭송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시 낭송은 우선 멋있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정인성 씨의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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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심춘자
심춘자

수원시 발행 e수원뉴스 시민기자.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공감지수가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요즘은 시 낭송을 가르치면서 시와 낭송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고단한 일상을 시를 통해서 휴식을 얻기를 바라면서요. 틈틈이 시도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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