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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세월리 만능할배와 감성할매의 예술 놀이터

재활용 작가 이학규, 신정자 부부

김지혜

2019-01-04


세월리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예술가다. 생활 속 예술을 실천하며 전시회도 열고,  ‘세월마을학교 축제’나 ‘물꼬를 트다’ 등의 작은 축제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 바로 이학규, 신정자 부부의 것이다. 이들 부부는 밭과 집을 그야말로 예술로 꾸미고 산다. 재활용 작품으로 가득한 부부의 집은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이학규, 신정자 부부

 

 

귀한 것으로 만드는 솜씨


부부의 집 앞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문패와 대문은 물론이고 아예 작품이 따로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능작가’, ‘감성작가’라고 적힌 연필 조형물은 발길을 붙든다. 마당 곳곳은 더 재미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동물, 조약돌로 만든 발자국, 형형색색 칠해진 농기구까지. 눈길 닿는 곳마다 손길이 천지다.


작품 이미지

 

“돈 주고 산 재료는 하나도 없어요. 다 주운 거, 얻은 거로 만들었지요. 할머니가 여간 구두쇠가 아니에요.

나는 심심하니까 소일거리를 찾고 싶은데, 할머니가 돈을 꽁꽁 싸매고 있으니, 얻어서 만들 수밖에 없지요.”


며칠 전에 완성한 우편함도 근처 공사장에서 버린 목재로 만든 것이다. 아직 색을 못 칠했는데 둘째 딸이 좋아하는 하늘색으로 할까 싶다며 만능할배는 웃음 지었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감성할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해준 것도 없는데 저희끼리 잘 컸어요.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부모도 귀하게 여기고. 여기 이사 올 때 내가 도배를 안 했어요.

돈 아낀다고요. 그랬더니 둘째 딸이랑 손녀가 와서 벽지에 꽃도 그려주고 벽화도 그려주고 갔어요. 엄마 예쁜 거 보고 살라고요.”


부부가 농사짓는 밭에도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일러스트 작가인 손녀가 컨테이너에 천사 날개도 그리고 부부의 모습도 그려준 것이다. 그 옆으로 돌아서 만나는 벽은 또 다른 전시장이다. 알록달록 농기구는 바로 감성할매의 솜씨다.


“예쁘잖아요. 저렇게 색을 입히면 삽자루도 고와지고 밭도 예뻐져요. 그 속에서 자라는 농작물도 더 예뻐지지 않겠어요?”


신정자 할머니, 부부

 

부부가 실천하는 생활예술은 소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밭고랑의 간격도 농작물의 위치도 매우 일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다 전직 재단사 출신 만능할배 덕분이다.


“농사지을 때 줄자가 꼭 필요해요. 간격이 일정해야 더 잘 자라는 것 같아요. 내가 양복점에서 40년을 일했어요. 처음에는 맞춤양복을 하다가 나중에 기성복을 팔았는데 전국에서 제일 잘 팔았어요. 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재단부터 인테리어, 전기까지 어깨너머로 배웠지요.”


삽자루, 이학규 할아버지

 

만능할배는 그 시절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바깥 일하느라 집안은 돌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 쌓은 실력으로 농사도 잘 짓고 이것저것 잘 만든다. 세월은 가도 손재주는 남은 것이다.



꽃과 함께 순하고 살고자


부부가 처음부터 세월리에서 작품을 만들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스무 살에 중매로 할머니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국민학교 동창이더라고요. 인연이었던 가봐요. 60년을 부부의 연으로 살았지만 젊었을 때는 같이 보낸 시간이 적어요. 내가 군대도 갔다 오고 서울에서 일 하느냐 떨어져 살았지요. 집사람 혼자 충북 진천에서 삼 남매를 키웠지요.”


옛날이야기가 나오자 감성할매의 눈가가 젖는다. 홀로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모시고 자식을 키우던 그 시절은 여전히 아프다. 그래서일까? 가늠할 수 없는 인내와 세월의 더께가 감성할매의 주름에 녹아 있다.


“나는 잘 웃어요. 그래서 눈가에 주름도 많지요. 이렇게 안 웃었으면 벌써 속이 새카맣게 타버렸을지도 몰라요. 어릴 땐 다들 그렇고 사는 줄 알았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남편은 일 년에 두 번만 오고, 돈도 안 오고 자식들은 배를 곯았어요. 구호물자를 떼서 팔고 새우젓 장사도 하면서 먹고 살았지요.”


감성할매의 가난은 장마처럼 길었다. 악착같이 살다 보니 비가 멈추기는 했다. 이제 좀 편안하게 살겠다 싶을 때, 암이 찾아왔다.


“벌써 15년 전이네요. 암에 걸렸던 게. 아들이 묻더라고요. 엄마는 소원이 무엇이냐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연에서 꽃과 함께 살고 싶더라고요.”


남은 인생은 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감성할매를 세월리로 이끌었다. 만능할배와 손을 잡고 그렇게 자연으로 왔다. 스무 살이었던 청년과 열아홉이었던 소녀는 속절없이 여든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자연의 품에서 편안하게 쉬고 먹고 일하며 자신을 돌본다. 자식 대신 서로를 바라보고 가슴에 품었던 꿈을 풀며 산다.



보석을 발견하는 눈으로


“우리는 재활용 작가예요. 아무리 낡은 것도 보석처럼 만들 수 있어요.”


감성할매 말에 만능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곱고 아름다운 게 차고 넘치는 세상.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에 부부가 보여주는 예술은 잠시 눈을 비비게 한다. 큰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또 거창하지 않더라도 예술 작품은 누구나 언제나 만들 수 있다.


“못 배웠지만 예쁜 것은 알죠. 오래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있고, 버려진 물건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예술이 있답니다.”


작품 이미지

 

나갈 채비를 하는데 감성할매가 외투를 꺼내며 이게 몇 년 된 옷인 줄 아느냐고 묻는다. 오래되어야 한 십 년인가 싶었는데, 자그마치 오 십 년이나 입은 옷이라고 했다. 얼마나 보관을 잘했는지 외투가 동안이었다. 외투 한 벌과 같이 늙어 간 감성할매, 무엇이든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싶었다.


이학규, 신정자 부부


“고생만 한 할머니와 이제라도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비록 돈은 못 쓰게 하지만 이렇게 예쁜 것들로 채운 집과 들에서

오손도손 지내다가 갈 겁니다.”


만능할배는 감성할매에게 마음의 빚이 많다. 불어난 이자가 많지만 조금씩 갚아보려 한다. 나무도 깎고 그림도 그리면서, 오늘보다 내일을 가꿔줄 것이다. 여든이 넘어서야 마음대로 사는 부부, 만능할배와 감성할매의 꿈 색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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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능할배
필자 김지혜
김지혜

사람이라는 텍스트를 좋아하는 인터뷰어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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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 이미지

김**

2019-01-11

두분의 삶이 정겨워 마지막 말에 살짝 눈물이 맺히네요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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