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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른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

“무엇이든 좋으니, 틀려도 좋으니, 네 멋대로 하세요.”

황효진

2018-11-28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를 앞뒤 꽉 막히고 훈계하기 좋아한다는 뜻에서 속칭 ‘꼰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몇 해 전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공공연하게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노인이라고 절대 봐주지 마라”는 거침없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된 이가 있다. 정작 자신도 여든 넘은 백발의 노인이다. 이 ‘별난 어른’은 경남 양산 효암학원의 채현국 이사장이다. 그에게는 ‘풍운아’, ‘거리의 철학자’ 등 별명이 많다. 한때 사업가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그의 소유로 된 재산은 하나도 없다.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줬기 때문이다. 학교 이사장이지만 학생들에게 ‘할배’라 부르라 하고 지식과 교육을 경계하라 가르친다. 세대 갈등이 깊어가는 요즘, 세간의 편견을 깨며 젊은 세대에서도 ‘우리 시대의 진짜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는 그를 직접 만났다.


채현국 이사장


Q. ‘훈화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어른’으로 유명하십니다.

A. 내가 교훈적이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말은 못 하니까요.


인터뷰를 여기저기서 하다 보니 종종 강연에 와서 말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요. 그런데 나는 유치원을 포함해서 교육기관이나 노동조합 같은 데서 요청하는 게 아니면 거의 하지 않아요. 강연에 가도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니다. 나는 여기 온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온 거다’라고 해요. 말은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만 해야지. 말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줄이려고 노력해요. 늘 행동이 우선이고, 말은 덜어야지요.



Q. 교육자시면서 오히려 지식과 교육을 경계하라고 자주 말씀하세요.

A. 기존 교육은 지식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요.


지식을 안다는 건 앎에 길들은 거지 자기 생각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지식을 자기 생각이라 착각해요. 길든 것에 반응하는 것을 자꾸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니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거나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이 약해지는 거예요. 생각은 의심과 거부, 저항, 이런 것에서 나오는 건데 인간은 비판보다는 먼저 적응을 하기 마련이거든.


‘이거 이러다 기존 생각에 길드는 거 아냐?’ 라는 생각부터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기존 교육에서 자유로워져야 해요. 사실은 정답이 없고 무수한 해답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교육인데 우리 교육은 이거다 아니다도 위험한 판에,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으로 가르고 냅다 결정하고 판단하면서 살게 훈련시켜 왔어요. 일단 내가 기존 교육에 길들어 있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길들인 대로 반응하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남의 말을 따라가지 말고.



Q. 사람들이 사회나 교육에 길들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A. 지금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사람이 드물어요. 배운 사람일수록 허무하죠.


사람들이 왜 다들 이렇게 불행할까. 강제로 이룬 풍요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삼십 즈음만 해도 부자라는 게 자랑거리는 아니었어요. 조금 움츠러들어야 하고 숨겨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부자라는 걸 자랑하는 사회로 바뀌었어요. ‘이거 봐라,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네?’ 싶었죠. 자본주의 사회 경쟁에 속아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부자를 자랑으로 알도록 길들여졌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죠. 성공하려면, 실패하지 않으려면 계획을 세우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이런 소리에 속아서 지금 세상이 이렇게 된 거 아녜요. 모여서 함께 살기 이상을 가르치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사회 지배 시스템에 길들이고 훈련시키는 것에 불과해요. 성공한 삶, 실패한 삶, 옳은 삶, 그른 삶이 따로 없는데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니까 어른이 돼서도 그런 생각만 작동하는 겁니다. 이름을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그런 데 삶의 목적을 두지 않고 순하고 착하게 지낼 생각만 하면 굳이 남을 이길 이유가 없지. 그거야말로 자기가 간악해지는지도 모르고 간악해지는 거예요. 지금의 내가 무언가에 길들은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이게 내가 길든 대로 가고 있는지, 내 길대로 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채현국 이사장


Q.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A. 나는 정말 신납니다.


뉴스 같은 걸 보고 들으면 이 사회에 희망이 없는 것 같지. 그럴 때는 ‘젊은 애들 하는 행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구나’ 하다가도 또 나이를 더 먹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애들이 이기적이다, 말을 안 듣는다, 얌체다 하는데 다르게 말하면 제멋대로 한다는 얘기잖아요.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신납니다. 사회가 아무리 길들여도 그 속에서 결국은 멋대로인 이들, 길들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거잖아요. 미래를 기대해볼 만한 창의적인 성향 같은 것들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도 있다고 봐요.



Q. 선생님도 젊은 세대와 차이나 갈등을 느끼기도 하시나요?

A. 당연하잖아요. 사람은 각자 다르니까요. 세대 차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차이지요.


젊은 세대가 가진 프레임과 내가 가진 프레임이 다르겠지요. 아마 각자 가지고 있는 편견도 다를 거고요. 세대 차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차이지요. 같은 세대 간에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은 모두 각자 달라요. 동시대를 살지만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고 아는 것은 내 확신에서 그쳐야지 오래 살았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위나 신념으로 강요하면 안 돼요. 나이가 들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오히려 어떻게 하면 권위 없이 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 신념 없이 행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지요. 모두가 다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뭔가가 진리라고 믿을 근거도 없어요. 다르지만 함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진리라고 했던 것들이 허상으로 드러나면, 또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모두 다 똑같으면 큰일 나지. 뭐든지 부족해서 난리가 날 거 아니에요.


채현국 이사장


Q. 젊은이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사회에 길들지 말고 계속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우리네 희망은 젊은 사람들에게 달려있어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미래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듣지 말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세상이 훨씬 빨리 변해요. 이 변화 많은 시대에 뭔가가 옳은지 그른지, 정말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남이 말하는 대로, 사회에 길든 대로 살지 말고 어떻게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으로 살아보자는 거예요. 하다 보면 또 틀리고 또 틀리고 계속 틀려요. 나는 팔십이 넘은 지금도 계속 틀리고 있어. 제 말도 기억하지 말고 듣고 버리세요. 모두 스스로들 생각하세요.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틀린 생각이라도 좋으니까 끊임없이 본인만의 해답을 추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끝까지 놓지 않을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남한테 힘은 못 돼도 해코지는 하지 말자. 이게 나한테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가치예요.


살면서 ‘이것만은’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가 늘 바뀌어 왔어요. 그때그때 달랐지. 그런데 이거 하나는 변함 없어요. 그리고 이 정도 살아보니까 정말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세상을 산 게 아닌데도 정말 살만하다는 느낌이야. 사실 나는 다른 이들이랑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이 못 돼요. 늘 충돌이야. 그런데도 이 세상에 나와 같은 가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고. 그게 정말 신비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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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효진
황효진

웹매거진 <ize>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획하고 쓰거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긴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과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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