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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조장은

갈등의 연속, 일상은 드라마다

최민영

2018-06-27


누군가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누군가는 사물에서 자극을 받는다. 젊은 아티스트 조장은이 영감을 발굴하는 곳은 ‘사람’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족이나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는 드라마가 살아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갈등들은 고스란히 그의 캔버스로 옮겨진다. <골 때리는 스물 다섯>, <엄마라서예쁘지> 등의 그림책과 <즐거운 나의 집>, <여자 서른> 등의 전시는 마치 그의 그림일기를 몰래 들춰보는 기분도 든다. 아름답지 만도, 유쾌하지 만도 않지만 우리의 고민과 갈등이 고스란히 들어찬 오늘을 그리는 사람, 조장은을 만났다.


“제 그림에는 제 자신뿐만 아니라 제 또래 여자들이 현재를 살며 갖는 고민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래서 많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요.”


미대를 졸업하고,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내가 과연 재능이 있긴 할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정말 많은 고민에 휩싸였던 시기가 있어요. 하지만 그림 말고는 좋아하는 것 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림을 택했죠. 그때부터는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번 달 물감을 사야 되는데 아르바이트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해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해볼까. 그게 저의 20대였어요. 상황은 달라도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20대가 그렇게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나를 위해 고민했다면, 지금은 또 달라요. 저는 결혼을 했고, 이제는 내가 아닌 가족을 생각해야 하고, 아기를 낳아야 하고, 그럼 내 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 소소하고 작은 갈등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어요. 이것도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실 거예요.


“제 또래 여성들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역할이 있잖아요. 그 역할이 주는 갈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1. 조장은,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날, 96.5x130cm, 장지에 채색, 2007

2. 조장은, 부케는 됐거든, 65x53cm, 장지에 채색, 2012

3. 조장은, 쥐뿔도 없어서, 60.5x60.5cm , 장지에 채색 2008

 

제 또래 여성들에게는 누구나 정해진 역할이 있잖아요. 직업인으로서의 나,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사회에서 주어지는 그 많은 역할들을 혼자서 감당해내는 과정에서 분명 충돌도 생기고, 고민도 생기죠. 행해야 하는 역할이 많고, 또 그걸 잘 수행해내려는 노력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이를 현명하게 대처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현명하다는 기준도 무척 주관적이니까요. 당장 눈 앞에 갈등이 펼쳐지면 그땐 정말 죽을 것처럼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기도 하잖아요. 제 경우엔 주변에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의 감을 더 믿는 편입니다. 지금 마음이 가는 대로, 지금 느낌대로. 

 

“그림에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쨍’하고 가 닿는 힘이 있잖아요. ‘이거 내 얘기다’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고민과 일상을 그림으로 나누고 싶어요.”

 

4. 조장은,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아, 97x130cm , 장지에 채색, 2008 

5. 조장은, 새 구두는 아프지만 간지가 난다, 53 X 45.5cm 장지에 채색 2007


그림이란 문자가 있기 전부터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하기 위한 가장 본능적인 수단이었어요. 저 역시 나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림을 택했지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쨍’하고 가 닿는 힘을 갖고 있어요.


12년 전 제 첫 개인전은 갤러리 카페였어요. 사람들이 들러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 제 그림이 걸려있었죠. 하루는 어떤 커플이 와서 옥신각신 하다가 그 곁에 걸려있던 제 그림을 보고는 웃으면서 화해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거 우리 얘기다’하면서요. 그때 소통과 공감의 기쁨을 느꼈어요. 그림의 힘을 얻었다고 할까요? 그때도 지금도 ‘내 표정 같아, 내 이야기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말만큼 행복한 피드백도 없어요.


화가 조장은

 

 제가 꿈꾸는 미래는 갑자기 멋있는 그림을 그린다거나 대단한 서사를 다루게 되는,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제 나이에 맞는 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머니의 소소한 고민과 일상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어요. 제 그림과 함께, 제 그림을 보아주는 분들과 함께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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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민영
최민영

듣는 내내 배우고 쓰는 내내 고민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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