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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사이’를 이어가려는 의지, 이혁상 감독

디아스포라 영화제 이혁상 프로그래머 인터뷰

민소연

2019-06-12


인천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언제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년)를 떠올리게 한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선 소녀들의 흔들리는 일상, 성장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야기의 바탕에는 인천이 가진 주변부적인 특성이 중요한 풍경이 되어 녹아 든다. 문득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정체성을 강요당하는 소녀들의 당혹감. 그것은 매끈한 현대화의 물결을 마주한, 여전히 근대 이전의 모습을 품고 있는 인천 골목의 투박한 민낯과 닮았다. 어딘가로 떠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래서 어딘가 붕 뜬 존재들을 위한 도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중 한 장면. 주인공이 인천의 철로 위를 걷고 있다.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kmdb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인천에서 열린다는 것은 앞서 말한 인천의 인상, 얼굴, 정체성이 긴밀하게 연결되며 필연으로 만든다. 한국 최초로 이민이 시작된 도시이자 끊임없이 도착과 떠남이 반복되는 디아스포라들의 도시. 이곳에서 디아스포라를 위한 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일곱 번째 열렸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지난 6년간 인천의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를 테마로 문화다양성의 가능성을 실험해오며 내실을 다져왔다. 특히 상영프로그램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연계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교육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았다. 올해 역시 ‘사이를 잇는’이란 슬로건 아래 화합과 관용을 일깨우는 다양한 영화적 체험이 마련되었다. 5월 24일 영화제 개막식 당일, 이혁상 프로그래머를 만나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중인 디아스포라 영화제 이혁상 프로그래머

▲ 이혁상 디아스포라 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중일 

 

 

Q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올해로 7회를 맞이했습니다. 비교적 긴 시간 이어온 행사이지만,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요.

A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아주 작은 영화제로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으로 처음에는 영화제라기보다는 상영회에 가까웠죠. 5회째부터 본격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생겨났습니다. 저 역시 5회부터 투입되어 3년째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대중과 접점을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Q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제 이름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어떤 영화제인가요?

A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많은 분에게 낯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서 늘 접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하는, 익숙한 현상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래한 단어지만 이제는 난민이나 경제적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이민 노동자 등 다양한 층위의 디아스포라가 존재합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그런 디아스포라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겪는 여러 어려움을 견디고 해결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공동체적인 연대를 모색하고자 하는 영화제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식 당일, 영화제 포스터 앞에서 웃고 있는 이혁상 프로그래머

▲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식 당일, 영화제 포스터 앞에서. ⓒ이중일 

 

 

Q 최근 들어 디아스포라의 범주가 더욱 폭넓게 해석,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프로그램 선정 기준 등 영화제가 가진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A 디아스포라는 일종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개념입니다.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또는 소외되어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무한히 확장 가능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화제는 디아스포라의 원래 뜻, 그러니까 이동과 관련된 테마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거기에 중심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허용하지요. 하나의 큰 흐름을 잡고 거기에서 뻗어나가는 다채로운 이야기까지 다루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현상의 맥락과 그 확장성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Q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슬로건은 ‘사이를 잇는’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A 그동안 디아스포라에 관한 세계 영화의 흐름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디아스포라를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라 할 수 있는데요. 

 

예전에는 난민 등 이주로 인한 디아스포라 생성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디아스포라가 생기는 이유, 원인에 집중했던 것이죠. 그런데 올해 영화들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새로운 공동체와 갖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보였습니다. 즉 너와 나, 타자와 공동체의 벌어진 사이를 어떻게 잇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디아스포라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언제까지나 그 원인에만 천착하기엔 이미 피부에 닿는 현실이 되었죠. 몇 년 전 우리 영화제의 슬로건은 ‘사이를 걷다’였습니다. 이제는 사이를 걷는 것 뿐 아니라, 사이를 잇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의 슬로건입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작 <은서> 상영 풍경  DIAFF DAIASPORA FILM FESTIVAL

▲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작 <은서> 상영 풍경 ⓒ이중일 

 

 

Q 올해 영화제에서 특별히 추천할, 또는 프로그래머로서 특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개막작인 <은서>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남한에 온지 20년이 된 주인공이 여전히 타자로서 변하지 않는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충돌과 갈등이 계속되는데, 관객들이 이주민과의 삶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지 느끼게 합니다. 

한편 <이지를 위하여>는 기본적으로 미국 내 홍콩 이민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 마약과 동성애, 장애, 나이듦 등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이슈들이 조화를 이룹니다. 어떻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이해와 화해의 드라마로 흥미롭게 풀어갑니다. 

<덴마크의 자식들> 역시 놓치면 아까운 작품입니다. 북유럽 내 팽배한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스릴러와 느와르 장르로 녹여냈는데요. 감독 스스로가 이란 출신의 디아스포라이기도 합니다.


 

Q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현재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의 하나로 진행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영화제 기간 문화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먼저 서경식 선생님의 강의를 들 수 있겠네요. 재일조선인 2세로서 오랜 기간 디아스포라 연구를 해온 서경식 선생님은 우리 영화제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영화제 초창기부터 매년 오셔서 강의를 진행해주시는데, 올해에는 ‘오무라’라는 일본 내 입국자 수용소를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풀어내고, 다큐멘터리 <분쟁의 땅에서 목소리를 전하며>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또한 청소년 대상 문화 다양성 특강도 준비했습니다. 올해에는 이란인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국민 청원을 한 아주중학교 학생들을 초대해 특별한 시간을 가집니다. 청소년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새로운 세대입니다. 디아스포라 역시 다르게 받아들이죠. 우정으로 세상이 구획한 선을 넘어 소중한 추억을 이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 깃발 너머로 보이는 차이나타운의 중국식 건물.

▲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디아스포라 영화제. 차이나타운이 지척이다. ⓒ이중일 

 

 

Q 타 영화제에 비교해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표방하는 가치와 색깔이 무척 뚜렷합니다. 앞으로 영화제를 찾을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싶은가요?

A 우리 영화제 중앙 광장의 이름이 ‘환대의 광장’입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 역시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고정관념과 차별의 마음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이주민이자 난민이니까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반을 상해 임시정부에 둔다면, 한국의 역사는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사실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지금의 디아스포라 현상을 바라본다면, 좀 더 다른 시각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거기에 우리 디아스포라 영화제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이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매년 5월 21일(세계문화다양성의 날)을 시작으로 일주일을 문화다양성주간으로 정하여, 문화다양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제고와 이해증진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무지개다리 사업'도 그 중 하나로 지역 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다문화와 소수문화, 세대문화, 하위문화, 지역문화 등 다양한 문화 및 문화주체들 간 교류와 네트워크의 장을 제공하여 문화다양성을 확산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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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소연
민소연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들에 깃든 이야기를 보고 들어 글을 쓴다. 언젠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이미지_ⓒ오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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