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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사의 삶, 문학평론가 고영직

기존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 써보기

김연수

2018-11-16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 ‘소확행’, ’YOLO(You only live once)’ 등 일보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의 시대, 일 중독증에 걸려 있던 한국 사회를 반성하고 기존 세대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가려는 꿈틀거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기존의 삶의 틀에서 벗어나, 100년에 걸친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50플러스 캠퍼스’ 인생학교에서 활동했고,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추진단 단장이자 <노년 예술 수업>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의 저자인 문학평론가 고영직. 그에게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일과 삶의 자세에 대해 들어보았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Q. 일보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어떻게 보시나요?

A. 청년 세대들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궤도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5,60대를 이루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생존을 위해 직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일에 중독되는 경향을 보였죠. 특히 1997년 IMF 이후로 힘 있고 돈 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으로 견고하게 형성되었어요. 그런데 요즘 청년들의 일에 대한 태도나 인식은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해요. 저는 이들이 새로운 삶의 문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단어 ‘revolution’은 행성의 궤도를 뜻하는 ‘volution’에 ‘re’를 붙인 단어예요.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궤도를 돌고 있잖아요. 그 궤도를 다시 돌리는 게 ‘revolution’ 혁명의 원래 의미예요. 젊은 세대에서 기존의 익숙한 궤도를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이탈자들이 생기고 있어요. 저는 이들이 한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의 중력장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Q.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중력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요?

A.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금의 노동 문화와 구조가 있어요. 일과 삶,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인식부터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의 노동사회는 성과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번 아웃 시키면서까지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가의 목적조차 다음 날의 노동을 잘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노동이 아닌 즐거운 노동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죠. 노동의 목적을 생물학적인 생존이 아니라 품위 있는 생명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죠.

19세기에 폴 라파르크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우리는 모든 것을 일 중심으로 생각하고, 일을 해야만 존재 이유와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도 있어요. 여가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난 뒤에 남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삶에서 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일이든 여가든 자기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기존의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인식을 반성하고 무엇이 ‘좋은 삶’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Q. 마침 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생활문화 담론과 정책 제안도 활발합니다.

A. 눈에 띌 만한 워라밸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이 내 인생에서 소중한 길인지 인문적으로 큰 방향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세 가지 차원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양식은 식량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양식은 ‘양식 있는 사람’이라 할 때의 양식으로 인문학, 예술 등의 소양을 의미하고요. 마지막은 스타일로서의 양식입니다. 우선 기본 소득 보장과 같은 복지가 뒷받침되어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스타일을 고민하는 차원으로 넘어가는 거죠.

사실 문화정책에 있어서 추구하는 큰 방향 없이 생활문화 담론과 워라밸 정책을 눈에 보이게 추진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어떤 ‘인간’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상은 없고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면 안 되잖아요. 단순히 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생과 어학 학원에 등록하는 수강생들이 수적 증가를 했다고 국민들의 여가활동이 늘어났다고 볼 수 없어요. 자기 삶을 추구하는 바를 향해 가는 사람이 실상 많지 않다는 것이 유감스러워요.



Q. 100세 시대에 진입하면서 은퇴 이후 최소 30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청년 세대 못지않게 중년과 노년층도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A. 기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에 사회학자 김찬호, 여성학자 조주은 선생님과 베이비부머 세대를 심층 인터뷰해서 책을 냈는데, 책의 제목을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정했어요. 평균 수명이 60세일 때는 20대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삶의 서사가 있었는데, 100세에 들어서면서 이야기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새로운 삶의 서사가 필요한 것이지요.


특히 은퇴 이후에 일하지 않으니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고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시 50플러스 캠퍼스 같은 데서는 은퇴 이후에도 스스로의 열정과 능력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앙코르커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미국에도 은퇴한 노년 세대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앙코르닷오알지(Encore.org)’라는 단체가 있는데, 은퇴 이후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과거 같은 삶을 계속 유지하고 지탱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 다르게 살겠다고 작정하는 거죠. 이때 중요한 것은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교육받다’, ‘치료받다’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다’, ‘몸이 낫다’라고 전환하는 것이죠. 이런 자동사의 삶을 살아갈 때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는 말이 있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기쁘게 지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라는 뜻이에요.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온기를 함께 나누고 인기척을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50플러스 캠퍼스 인생학교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유명 강사의 강의보다 잘 몰랐던 동료들과 함께 커뮤니티 활동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함께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을 통해 기존의 궤도, ‘volution’에서 벗어나 보는 거죠.


문학평론가 고영직


Q.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될까요?

A. 예술교육이나 인문학은 삶의 궤도를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자극을 줍니다.


노년 세대에게는 기존에 살았던 삶의 관성이 아닌 다른 삶의 가능성들을 발견할 필요가 있어요. 단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어 보고, 낯선 것에 대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해보는 것이죠. 그러려면 한 줌의 용기 또한 필요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기도 해요. 언제 변하는지 살펴보니 어떤 것을 가르쳐서가 아니라 자극을 주고 거기에 반응할 때 그러한 힘이 나오더라고요. 예술교육이나 인문학이나 무언가 자극을 주고 건드려 줘요.


좋아하는 라다크 속담 중에 ‘호랑이의 줄무늬는 몸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몸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사람의 줄무늬는 다른 말로 하면 ‘인문’이에요. 여기서 ‘문’은 무늬 ‘문’자로, 사람의 무늬라는 뜻이죠. 그 사람에게 어떤 무늬가 나타날지는 자동사의 삶을 얼마나 복원시켜서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어요. 사람의 무늬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손을 잡을 때 한병철 철학자가 얘기한 ‘한가로움의 민주화’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제서야 비로소 대량 생산-대량 유통-대량 소비-대량 폐기 처분하는 자본주의적 삶이 아닌 다른 길들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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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연수
김연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잡지 편집자 및 연극 리뷰 및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매거진 K-arts’의 필진으로 활동했으며 ‘연극in’, ‘PIL-ZINE’ 등의 문화예술잡지에 글을 기고하였다.
ysinj1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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