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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됨이란 무엇인가? 역사평론가·고전연구가 한정주

“인간됨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이근미

2018-10-31


놀라운 뉴스가 넘쳐난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탄식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많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 늘자 기본을 지키면 손해라는 생각도 팽배해지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됨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이다. 『인간도리, 인간됨을 묻다』를 쓴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대표 한정주 선생을 만났다.


역사평론가·고전연구가 한정주


Q. 고전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고전 공부의 매력은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A. 고전을 공부하면 시대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생겨요.


대학 때 사학을 전공했어요. 1980년대는 대개 서양사와 사회과학에 관심을 가졌죠. 졸업 후 노동운동을 했는데 그때 한자를 배우고 고전 공부를 하면서 생계 삼아 편집과 교정 일을 했어요. 1990년부터 논어 맹자 한비자 노자 장자 같은 제자백가와 『사기』 『자치통감』 같은 역사서 100여 종을 공부했어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보면 우리 시대의 인간과 권력을 해석하는 통찰력이 생겨요. 특히 사기(史記) 강의를 150회 정도 하면서 고전을 읽으면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이 보인다는 걸 깨달았어요.



Q. 저서 『인간도리, 인간됨을 묻다』에서 독특하게도 한자를 통해 인간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A. 고전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자를 통해 세상사와 인간사를 생각하는 습성이 생겼어요.


한자나 한문은 고전으로 들어가는 길잡이입니다. 고전을 공부할 때 한자를 익혀 직접 원전을 읽으면 문맥의 행간과 맥락의 의미를 알 수 있어요. 원작자의 생각이나 사고를 해석하면 자신만의 사상이나 철학을 만드는 데 도움이 돼요.


또 한자는 인간의 형상과 본성을 본떠 만든 글자에요. 인간을 닮아 있어요. 책에 담을 글자를 고를 때 마음 심(心)이 들어간 한자가 많았어요. 인간의 본성, 성격, 습관, 기질을 글자로 형상화한 한자들이죠. 그 구성원리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도리, 인간됨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Q.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인간 도리, 인감됨은 무엇인가요?

A. 인간됨을 정의하는 건 쉽지 않아요. 어떤 개인이 선하냐, 악하냐, 분명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에게는 선한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악한 행동이 되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누군가의 인간됨을 이야기할 때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상대적이에요. 결국 인간됨이란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개념 같아요.


그래서 인간됨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단어가 ‘관용’과 ‘용서’라고 생각해요. 관용은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을 말해요. 용서의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마음이 같다,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게 한다’는 뜻이죠. 용서를 ‘봐준다’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상대방을 헤아려 완전히 이해하는 게 용서예요. 관용과 용서는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이해하여 받아들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더불어 살 수 있어요.


역사평론가·고전연구가 한정주


Q. 관용과 용서, 요즘처럼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 같습니다.

A. 결국 혐오도 관용과 용서로 풀어야 합니다.


여성 혐오가 문제이듯 남성 혐오도 문제입니다. 없는 사람에 대한 혐오도, 있는 사람에 대한 혐오도 문제예요.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해치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관계를 망가뜨리는 방식은 독선이고 아집이며 또 다른 혐오에요. 관용과 용서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두 가지를 등치로 보면 안 돼요. 가진 사람에 대한 혐오는 비판에 가깝고 부자들은 자기를 변호할 수단과 권력이 있어 큰 손해를 입지 않아요. 약자에 대한 혐오가 모멸과 멸시라면 부자에 대한 혐오에는 질투와 시기, 동경과 선망이 담겨 있어요.



Q. 바람직한 관계에 필요한 또 다른 덕목이 있다면요?

A.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모르는 걸 배우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모자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인간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알겠어요. 모르는 걸 배우려는 게 겸손입니다. 내가 많은 걸 가졌고 똑똑하고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겠죠. 그러면 자기가 뭘 잘못했고 어떤 게 문제인지 알 수 없게 돼요. 가장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듯 보이고, 가장 똑똑한 사람은 멍청한 듯 행동하고,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요.


가령 좋은 덕목을 가졌던 분들이 성공한 뒤 교만과 오만에 빠져 그걸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남들에게 내 말만 들으라고 하면 추락하고 맙니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자기보다 모자란 인재를 기용하겠죠. 모자란 사람이라 생각하면 능력 발휘를 돕기보다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유방이 왜 항우를 이겼을까요. 유방은 소하, 장량, 한신보다 재주가 못하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부리는 재주가 있었어요. 유방이 소하나 장량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했으면 그들이 내놓은 계책을 받아들였을까요? 자신이 한신보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100만 군대를 지휘하게 했을까요? 겸손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리더가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겨요. 리더는 인재를 알아보고 그들이 적재적소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해요.



Q.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게 좋을까요?

A.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사람을 곁에 두세요.


진나라 목공이라는 제후는 숱한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면서 큰 성공과 실패를 겪었어요. ‘재주가 좀 모자라고 능력이 좀 없어도 재주 많고 능력 많은 친구를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 나라에 보탬 된다’는 그의 말이 서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포숙은 자기보다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관중을 추천해서 출세하게 만들었어요.


손빈의 친구 방연은 달랐죠. 귀곡자 아래서 함께 공부할 때 방연은 손빈이 너무 뛰어나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출세를 한 방연은 손빈이 세상에 드러나면 자신의 명성이 사라질 거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혔고 결국 손빈을 유인해 다리를 잘라버립니다. 순자 문하에서 공부한 이사도 자기가 한비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시황이 한비자를 발탁하면 자기 자리가 없어질까 봐 한비자를 모함해서 죽게 만들었어요. 재주가 좀 없고 능력이 좀 모자라도 시기 질투를 하지 않는 사람을 곁에 두면 좋겠죠.


역사평론가·고전연구가 한정주


Q. 소위 스펙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기본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 어떻게 하면 즐겁고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A.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기답게 사는 겁니다.


나보다 더 가진 남과 비교하면 아무리 채워도 모자라고 아무리 많은 걸 가져도 부족함을 느끼죠.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우면 편안해질 수 없어요. 즐거움과 편안함은 스스로 편안하고 스스로 즐거워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즐거워도 내가 즐겁지 않으면 즐거운 게 아니잖아요. 비교하지 않는 게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루쉰의 말이 있어요. ‘희망도 절망도 실체가 없다. 희망은 실체가 없으니 괜한 뜬구름 잡지 말고 장밋빛 꿈을 꾸지 마라. 절망도 실체가 없으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희망에 기대를 걸지 말고, 절망하여 좌절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루쉰의 문학을 대표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암흑과 절망입니다. 루쉰만큼 자기 자신과 중국 사회를 절망적으로 본 사람은 없어요. 그럼에도 그는 절망과 희망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공감 가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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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근미
이근미

경험을 나누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 인터뷰어. 인터뷰 경험을 바탕으로 『+1%로 승부하라』 『프리랜서처럼 일하라』 『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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