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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죽음)의 투구

보이지 않지만 늘 곁에 존재하는 것

인문쟁이 천한얼

2016-09-22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데스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다. 하데스는 형제인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함께 티탄신족을 물리치고 세상을 나눠 다스리기로 했다. 가장 공이 큰 제우스가 하늘을 다스리고, 그의 형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다스리기로 정한 것이다.

그 중 죽은 자들의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는 그리스인이 가장 두려워하고 입에 올리기 꺼리는 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그리스인은 하데스를 하데스라 부르지 않고 플루톤(Pluton-부유한 자)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하데스는 무서운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부르지 못하고, 대신 ‘부’라는 좋은 의미를 넣어 불러왔다고.


죽음의 신, 플루톤 석상

▲ 사슬에 묶인 케르베로스를 잡고 있는 죽음의 신, 플루톤


허나 실상 숨겨진 뜻은 다르다. 하데스는 죽은 모든 영혼들이 거쳐 가야만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하데스를 알게 되면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하데스를 플루톤(Pluton)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진정 삶을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자라면, 살아있을 때 하데스(죽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데스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제우스가 다스리는 대지를 의식의 세계라고 하면, 포세이돈의 바다는 무의식에 해당한다. 의식에서는 이성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신화 안에서 포세이돈이 감정적이고 심술적인 것은 이러한 무의식을 다스리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데스의 지하세계는 어디에 해당할까? 지하세계는 무의식의 ‘무의식’ 공간이다. 우리 안에 가장 깊은 곳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내 운명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내 안에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하데스를 만날 수 있다.


오딧세우스의 모함담을 담은 오딧세이

▲ 오딧세우스와 사이렌


오딧세우스의 모험담을 담은 『오딧세이』에서, 오딧세우스(분노하는 자)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마친 후,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10년 동안 온갖 시련을 겪는다. 오딧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미 죽은 테리시아스(최고의 예언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듣기위해 하데스에 가야 했다. 오딧세우스는 바다의 괴물 싸이렌이 죽음으로 유혹하는 소리를 견뎌냈고, 여러 괴물을 죽이고, 지독한 어려움을 견뎌내며 하데스에 당도한 후, 테리시아스에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듣게 된다. 오딧세우스는 돌아가서도 싸워야 하는, 불운과 험난함을 통해 배우고 강해지는 분노하는 자의 운명이었다.


그리스 인들은 ‘운명이란 자기 고통을 응시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자유를 얻어 운명과 자유가 함께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운명을 안다고 운명에 맡길 것이 아니라, 자기 운명과 곧 그것에 따른 고통을 아는 자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딧세우스는 하데스로 가는 과정에서 유혹을 견뎌내며 삶은 소유가 아닌 경험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하데스에 들어가 자신의 운명을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명을 응시한 오딧세우스는 앞으로의 길을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떠나게 된다.


세상은 결코 선을 지향하고 악을 지양한다고 정해진 곳이 아니다. 기준 모를 다양한 세상 속에서, 내가 만든 기준으로 가장 나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헤데스를 아는 자만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죽어봐야 안다”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말이 떠오른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죽으면 다 똑같다.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당신의 열정이 들어간 삶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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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천한얼

[인문쟁이 2기]


천한얼은 수원에서 자취한지 5년차 된 강원도의 딸이다. 보통 욕심이 없지만 웃기는 것에는 집착한다. 언제나 내 삶을 위한 행복과 즐거움을 쫓아 살다가 이제야 부모님의 힘 빠진 어깨가 눈에 들어와 금전적인 독립이 목표다. 잘 사는 법에는 답이 없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꾼 세상을 배우고 싶다. 즐거움엔 큰 웃음을, 즐겁지 못한 자에겐 위로를! chhu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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