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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시인 김경윤과 함께 걷는 우리 동네

우리 동네 토박이와 걷다ㅣ해남군 삼산면 이야기

최재희

2015-11-26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 일상의 남루 죄다 벗어버리고/ 빈 몸 빈 마음으로 오시게나/ 행여 시간에 쫒기더라도 지름길일랑 찾지 말고/ 그저 서해로 기우는 저문 해를 이정표 삼아/ 산다랑치 논에 소를 몰 듯 그렇게 고삐를 늦추고 오시게나” 김경윤, <그대 땅 끝에 오시려거든> 중에서



  • 고정희 생가 뒷편 숲길을 걷고 있는 두사람

    고정희 생가 뒷편 숲길

 

조선후기 해남은 일지암과 녹우당을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새로운 학문과 문화예술이 생성되는 공간이었다. 18세기 실학이 주도하던 시대에 선비화가였던 공재 윤두서는 집안의 실용적 학풍을 주도하며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외손 정약용에게 영향을 미쳐 그가 실학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녹우당과 일지암은 추사 김정희와 다성이라 일컫는 초의선사, 남종문인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등의 석학들이 학문과 예술적 공감대를 이루며 교유했던 곳으로, 후대에 끼친 문화적 영향력이 아주 컸다. 18세기 인문학의 수도는 한양이 아닌 바로 해남이었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 바로 ‘문학’이자 ‘시인의 정신’이고 ‘인문학’이라면, 해남이야말로 시인들의 고장이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한다. ‘김남주’와 ‘고정희’를 배출한 해남군 삼산면을 땅 끝 시인 김경윤과 함께 걸어본다.

  • 고정희 생가 뒷편 숲길에서 대화중인 두사람

    고정희 생가 뒷편 숲길

최재희 : 우리 고장 해남은 우리나라에서 시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곳 삼산면에 오면 국문학의 비조(鼻祖)라 불리 우는 고산(孤山) 윤선도 선생이 떠오르는데요, 고산 외에 유명한 시인묵객들이 많이 있었지요?

김경윤: 먼저, 해남 시문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표해록』의 저자 금남(錦南) 최부(崔溥)가 있지요. 그리고 최부 후학들인 호남 시학(詩學)의 스승 석천(石川) 임억령, 호남의 5현으로 불리는 미암(眉庵) 유희춘, 삼당(三唐)시인으로 불리고 조선의 유랑문학의 운치와 전통의 밑뿌리가 되어준 옥봉(玉峰) 백광훈 등이 해남과 인연이 있는 시인들입니다.

최재희 : 해남에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시인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이 배출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김경윤:현대에 들어오면 정말로 우리나라의 시문학을 해남이 이끌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시인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시인을 들자면 토속적 서정과 정한(情恨)을 노래한 이동주 시인과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했던 박성룡 시인, 그리고 80년대 한국문학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김남주와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고정희 시인들이 모두 이곳 출생이지요.

최재희 : 황지우 시인과 윤금초 시조시인도 빼놓을 수 없죠. 또 제 고향 해남 화산면 출신으로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로 유명한 김준태 시인도 생각이 납니다. 그는 대지(大地)의 시인으로 불리던데, 농담 한마디 하자면, 김준태 시인이 태어난 마을이 바로 대지리입니다.

첫 동네. 혁명의 전사 김남주의 고향 봉학(鳳壑)마을.

  •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김남주 생가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김남주 생가

 

최재희 : 해남의 시인들은 모두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더라면 모든 분들이 그 지역의 대표시인으로 손꼽혔겠습니다만, 해남에서 다복솔 중에서 우뚝한 현대시인 두 사람을 꼽는다면 김남주 시인과 고정희 시인이겠지요?

김경윤:아무래도 살아계신 분들은 아직 작품 활동 중이라서 제가 감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구요, 돌아가신 분들 중에서는 김남주 시인과 고정희 시인을 대표로 꼽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김남주 시인의 고향마을 봉학리와 고정희 시인의 고향마을 송정리가 걸어서 십분 거리의 바로 이웃마을입니다. 부모님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지요.

최재희 : 어떻게 이웃마을에서 완전한 동시대에 이런 우뚝한 시인 두 사람이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마침 두 시인의 생가도 보존되어 있고, 문학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함께 걸으면서 두 시인에 관한 이야기와 동네에 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김경윤:김남주 시인의 「이 가을에 나는」에 보면 압송차에 실려 가면서 시인이 그리워하던 동네 풍경이 나오지요,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과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 가 있는 동네가 나오는데요, 압송 차에서 오라에 묶인 김남주 시인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이 바로 이곳 봉학마을입니다. 봉학리는 봉황 봉(鳳)자에 골짜기(壑)자를 써서 봉황이 날아들어 그 산자락에 깃을 치고 살만 한 동네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말로는 ‘황새울’이라고 부르지요.

  •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김남주 생가마루에 걸터앉아 촬영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김남주 생가마루에 걸터앉아 촬영

최재희 : 마을 이름대로 김남주라는 봉황을 품었던 골짜기네요. 그런데 이 마을에는 ‘속곳배미’라는 재미있는 지명도 있다면서요?

김경윤: 원래 ‘배미’는 논을 뜻합니다. 그래서 ‘속곳배미’는 여자 속옷과 같이 생긴 논이라는 말이지요. 또 재미있는 것은 지금 정자 자리에 예전에는 솟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솟대는 강진군 성전면에 있는 큰 봉우리가 봉학마을에 해를 끼친다고 새서 그 봉우리가 보이지 않게 솟대를 세우고 소나무를 세웠다고 해요.

최재희 :김남주 시인에게 봉학마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김남주 시인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김경윤: 예부터 이곳은 개땅쇠가 삶을 이어갔던 곳입니다. 개땅쇠의 개는 갯벌을 쇠는 민중을 일컫는 말이니 개땅쇠는 갯벌을 농토로 일구어놓은 토박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김남주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농사꾼이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은 「아버지」라는 시에서 “그는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는 무식쟁이였다/ 그는 밭 한뙈기 없는 남의 집 머슴이었다/ 그는 나이 서른에 애꾸는 각시 하나 얻었으되/ 그것은 보리 서너말 얹어 떠맡긴 주인집 딸이었다”라고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김남주에게 가족과 가난에 대한 뼈아픈 기억은 시의 에너지가 저장된 원체험으로 그의 삶과 문학을 지탱한 양심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재희 :예사롭지 않은 가족사네요. 공부도 곧잘 했던 아들 김남주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 또한 남달랐겠지요?

김경윤: 예나 지금이나 농사꾼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남주의 아버지는 원통할 때마다 커가는 아들에게 “너는 커서 ‘사람’이 되어라.” 판검사처럼 큰 사람 아니면 면서기나 군서기라도 되어 자신처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지요. 그러나 김남주는 끝내 아버지가 바라는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보통 꿈꾸는 것처럼 출세를 하고 지배 계층의 대열에 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투쟁의 길을 택하게 되었지요.

최재희 :김남주 시인은 “남민전”사건으로 구속되어 오랜 기간 동안 옥고를 치르며 많은 시들을 쓰게 되었죠.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김남주의 시가 “칠흑 같은 어둡고 깊은 밤중의 잠속에 빠져있는 혼수상태의 문단에 칼을 들이대는 섬뜩함으로 다가온다.”라고 표현을 했더군요. 그런데 김남주 시인의 시는 모두 송곳 같은 시만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김경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김남주 시인과 그의 시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죠.

김경윤: 그는 한 번도 자신만을 위해서 무엇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일하지 않았으며, 돈을 위해서 글을 쓰지도 않았던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수감생활동안 펜과 종이도 주지 않는 엄격한 감옥 안에서 우유곽이나 휴지 위에 시를 썼습니다. 우리 시문학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첨예한 의식과 혁명적 순결성으로 ‘자유와 해방’을 노래했던 시인이지요. 그러나 그의 시가 모두 ‘송곳’ 같은 시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는 “가실을 끝낸 들에서/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아”는 사랑을 노래한 따뜻한 시인 이었습니다.

두 번째 동네. 여성해방을 노래한 시인 고정희의 고향 송정(松汀)마을.

  • 삼산면 송정리 고정희생가 마을

    삼산면 송정리 고정희생가 마을사진

  • 삼산면 송정리 생가에 복원한 고정희시인 서재

    삼산면 송정리 생가에 복원한 고정희시인 서재

 

최재희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 고정희 시인의 생가까지 선생님과 걸어 와보니 정말 한동네처럼 가깝네요. 고정희 시인은 43세의 짧은 생에 동안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실현을 꿈꾸는 희망찬 노래에서부터 민족민중문학에 대한 치열한 모색, 그리고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작업, 사랑에 대한 처연한 서정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를 보이며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갔다고 평가를 받는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경윤: 그렇습니다. 고정희 시인은 비극적 오월(5·18광주민주항쟁)의 봄에서 절망과 더불어 그 절망을 타고 넘을 열망을 뿜어 올리는 한(恨)과 그리움으로 잘못된 역사의 회개와 치유와 화해에 이르는 씻김굿을 통해 민족과 민중의 해방을 노래했던 시인이죠. 또 여성 민중의 삶과 수난을 노래한 ‘여성해방출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된 그의 여성해방운동과 글쓰기는 여성주의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페미니즘 문학의 실천적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고정희 시인 서재에서 대화중인 두사람

    고정희 시인 서재에서

최재희 :김남주 시인과 고정희 시인을 낳은 한 동네 같은 두 동네 또한 해남의 여느 동네가 그렇듯 포근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네로 느껴지는데요, 마지막으로 김경윤 선생님께서는 우리 고장 해남에서 왜 이렇게 일세를 풍미하고도 남을 시인들이 많이 나고 자라는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경윤: 해남은 반도의 땅 끝입니다. 한 마디로 변방이지요.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있는 곳이데요, 소외의식과 개방성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지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시의 꽃이 피듯이, 땅 끝 해남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혹은 문화적 토양이 많은 시인들을 낳았고, 또 많은 시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뿌리 깊으면야 / 믿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 층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 가기로 목숨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깜깜산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해남에서는 “김남주기념사업회(회장 김경윤)”, “고정희기념사업회(회장 최은숙)” 에서 해마다 두 시인을 기리는 행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수묵처럼 번져가는 어스름의 언어들’로 땅끝 해남을 노래하는 ‘땅끝시인 김경윤’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해남에서 나고 자라 현재 해남공업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신발의 행자』외 2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땅끝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으면서 동시에 지역인문학운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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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희
최재희

해남에서 태어난 그 해 아폴로 13호가 달에 갔다. 팟캐스트("옴마 도서관이 말을 해야" http://www.podbbang.com/ch/8488)진행, 인문학강좌, 청소년인문학당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즐겨 쓰는 문구는 "스밈과 번짐 그리고 이음". 봄바람이 시작되는 첫 번째 땅 해남에 스며든 인문학이 해남을 넘어 번지고 번져서 새날을 여는 변화로 이어질 거라는 꿈을 꾸며 산다. 삶의 모토는 “내가 즐겁지 않으면 혁명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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