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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어긋남으로 증명

나의 첫 번째 인문적 프로필

김선아

2016-02-25


개와 복싱을 좋아하던 친구가 갑자기 시집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사랑에 관한 몇 권을 읊어준 적이 있다.
오만했지. 걔가 뭘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감히.

사람들은 멋대가리 없이 가난했다.
젊어도 젊지 않거나, 무시무시하게 아팠다.
소박한 음악을 듣고 싶어서 찾은 무대엔 그런 사람들 밖에 없었다.
이러다 어머니가 지긋지긋해 하시는 것들을 함께 지긋지긋해 하게 될지도 몰랐다.

  •  가능한 어긋남으로 증명
  • ⓒ김선아

위기감은 식량이었다.
나는 가끔 말들이 위(胃)에서 자란다고 느꼈다.
피가 되는 것들이 말도 되었다.

우리가 더 재밌고 용감했으면 했다.
너무 재밌고 용감해서 우리 자신을 비웃을 수 있었으면 했고
내가 하는 것들, 가끔은 우리가 함께한 것들마저
비웃고 또 비웃다가, 숨쉬는 일에도 쉽게 지쳐 쓰러질 수 있었으면 했다.
적어 놓은 것들, 그려 놓은 것들을 비웃고,
비웃음마저 비웃고, 그것이 하나도 나쁘지 않고
그러다 비극도 잊고 사랑도 잊고, 그랬으면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멋대가리 없이 가난하거나,
젊어도 젊지 않거나 무시무시하게 아프거나
음악은 굉장하거나 어머니는 지긋지긋해 하시거나
먹을 것은 쉽게 상하고 모두 각자의 집에 기거한다.

2차 대전 때 무너진 도시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급하게 쌓아올린 건물들 사이에 나의 집이 있었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곳이 타국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  가능한 어긋남으로 증명
  • ⓒ김선아

이름을 말하면 나와 안 어울린대서
가짜 이름을 만들어 말하고 다녔다.
가장 덜 음흉한 방식으로 명함도 팠다.
나는 이것을 개명이라 부르지 않지만,
그들은 나를 이것으로 부를 것이다.

 

  • 시집
  • 사랑
  • 식량
  • 용감
  • 가난
  • 위기감
  • 함께
  • 이것
필자 김선아
김선아

1992년생. 사진을 찍고 시를 쓰며 고슴도치를 키운다. http://reason-for-noreason.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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