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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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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초판 복각본 열풍

취향과 복고, 책의 물성을 만나다

by 김봉석 / 2016.02.25


지난 달 출간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복각판은 출간하자마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2월에도 알라딘 종합 1위, 예스24 종합 5위를 차지하며 5만 부가 넘게 팔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 소와다리 출판사는 작년 11월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을 복각하여 4만 부 이상을 판매했다. 소와다리의 세 번째 복각판인 백석의 『사슴』은 예약 판매 첫 날 알라딘에서만 2,000부 이상이 팔렸다. 다른 출판사들에서도 김구의 『백범 일지』 등 오래전 나왔던 책의 초판본을 원형 그대로 살려 재출간하고 있다. 복각판은 내용만이 아니라 과거의 철자법과 표기, 폰트, 디자인 등을 고스란히 재현하여 추억을 되살린다.

청년 층의 취향을 저격한 트렌드- 복고와 한정판

  • 2~30대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독립출판물 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포스터

    2~30대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독립출판물 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포스터 ⓒ언리미티드 에디션

흥미로운 사실은 복각판 시집의 주요 독자가 20대라는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의 시를 즐겨 읽었던 독자가 나이가 들어 복각판을 사는 경우 보다 젊은 독자가 과거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 구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물용으로도 많이 팔린다. 세련된 첨단의 제품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낡거나 고풍스럽게 디자인을 한 제품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초판본 복각은 앤티크 가구나 소품, LP 등 빈티지 유행의 한 경향으로도 볼 수 있다. 복고풍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세련되고 개성적인 스타일로 간주된다. 그런 지점에서 복각판 시집은 낭만적이고 우아한 선택인 셈이다.

김소월과 윤동주 등의 시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유명한 작품이다. 누구나 알고 있으며, 학문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평가가 크게 변할 일이 없는 고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며 웹툰, 웹소설, SNS의 대중적인 시가 인기를 얻는 21세기에 고전을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LP의 새로운 유행과 유사하게 보인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관리하기 힘들고 재생하기 불편한 LP에서 CD로 넘어갔고 다시 인터넷 다운로드로 옮겨 갔지만, 따뜻하고 풍부한 소리를 들려주는 LP의 물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복각판 시집도 마찬가지다. 진짜 초판을 구하는 수집가가 아니라면 복각판만으로도 위안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덤으로 거장의 시를 다시 읽고 느끼는 여유로운 체험도 만끽할 수 있고.

  •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현장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현장 ⓒ언리미티드 에디션

복각판 시집의 인기는 현재 2~30대의 문화적 취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해 11월 일민 미술관에서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성황리에 끝났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독립잡지와 출판물 등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행사다. 너무 개성이 강하거나 소수 취향이어서 메이저 출판사가 만들지 않는 작품이나 콘텐츠를 개인이나 작은 회사가 제작하여 독자를 직접 찾아 나서는 행사가 바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홍대 카페나 조그만 공간을 빌려 시작했던 이 행사는 7년 만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2~30대 젊은이들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아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한정판이나 독립 출판물을 사서 고이 간직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좋아하는, 나만이 소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다.

주류를 거부하는 다양한 소수 취향의 등장

올해의 트렌드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꼽히는 것은 ‘취향’이다. 취향은 개인적인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획일적인 감성과 선호를 자신의 취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4~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마니아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꾸준하게 파고드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아마추어 작가가 만화 동인지를 만들어 파는 행사나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디저트를 선보이는 ‘과자전’, 레고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전시 등이 작년에 성공을 거두었다. 주류문화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강력하다 해서 소수, 비주류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류가 편협하고 지루하기에 사람들이 소수 취향에 빠져드는 반작용도 생겨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지금의 3~40대는 더 이상 집과 가정에 집착하지 않는다. 애초에 집을 사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진 경제 사정도 있고, 각자 꿈꾸는 행복의 가치도 다양해졌다. 가족과 집에 저당 잡히기보다는 현재 나의 삶을 살아가자는 태도. 그렇다고 그들이 거창한 비전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사치를 누리면서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겁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거대한 집단의 나사나 장식품이기를 원하지 않고 온전한 개인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럴 때 취향이 하나의 기준이 된다. 과거에도 물론 취향은 있었다. 하지만 취향이 존재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쓴다, 가 더욱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돈을 써야 재생산이 가능하고 비로소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니까. 그동안 한국에는 마니아의 숫자가 꽤 있음에도 제대로 돈을 쓰지 않아 몰락한 비주류 문화가 너무 많았다.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복각판 시집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맞닿아 있는 지점도 많다. 시리즈 중 가장 멀리 과거로 간 <응답하라 1988>의 주요 시청자는 반드시 그 시대를 경험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20대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즐겁고 흥미롭게 과거의 풍경을 바라본다. 영화 『건축학 개론』과도 비슷하다. 40대에 접어든 남자가 첫사랑을 만난다. 그 시절이 얼마나 설레고 순수했는지를 돌아본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어쩔 수 없이 추억은 재구성되고 덧씌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교하게 만들어진 과거의 풍경은 회색의 현재를 압도한다. 유려한 추억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기억도 다시 만들어진다. 지금에 맞게 과거를 재편하여 추억으로 만드는 보수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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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엄청난 인기몰이 중인 복각판 시집의 모습 ⓒ소와다리

그럼에도 복각판 시집의 유행은 긍정적인 면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과거의 책을 되살리면서 현재의 젊은 독자들에게 책의 물성을 강하게 인식시킨다는 점이 있다. 모바일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가장 대중적인 독서가 된 지금, 종이에 인쇄된 책이 어떤 질감이고, 어떤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종이책은 지금의 LP와 같은 위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쉽고 편하게 책을 보고 싶다면 전자책으로 보는 것이 제일 좋고, 분명한 의도나 애정을 가지고 책을 마주하고 싶다면 종이책을 사는 것이다. 사서 책꽂이에 꽂아 두고, 문득 생각날 때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고 잠깐 읽어보는 것. 책과 마주하는 순간 그 자체를 즐기는 것. 텍스트만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놓인 시공 자체를 즐기는 것. 그런 작은 사치는 앞으로도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취향 복고 윤동주 한정판 트랜드
필자 김봉석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씨네 21』과 『한겨레』에서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 편집장을 했고 지금은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이다.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등을 썼고 공저로는 『탐정사전』, 『좀비사전』,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장르소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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