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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만히 읽는 당신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람들이다

by 장순명 / 2019.04.10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들여다보다


얼마 전, 3·1절 100주년 행사를 보았다. 갑작스럽게 '대한민국 대학생이라면 기본 역사 상식은 있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일제강점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검색창에 일제강점기를 쓰려했는데, 실수로 '일제감'이라고 써버렸고 아차 하는 순간, 검색어 자동완성에 의해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나는 처음 보는 단어에 호기심이 생겨 클릭했다.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들여다보다, 일제감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일제강점기 -일제 Illustration ⓒ Amy Shin


2018년 10월 1일,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가 등록문화재 제730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일제가 특별히 감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우리나라의 인물들을 일제강점기에 기록해놓은 카드였다. 3·1 운동 직후인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대상 인물들이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4,858명에 관한 총 6,264매의 카드만이 남아있다. 3·1 운동에 참여해서 기록된 인물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소장하고 있고,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카드들에는 인물의 신상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사진, 이름, 별명, 생년월일, 거주지와 본적, 직업 등이 해당 인물의 죄명, 수감 장소 등과 함께 기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죄명은 치안유지법, 보안법, 국가총동원법 등이다. 즉, 자신들의 체제에 반대하고, 사회안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죄를 씌웠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죄였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한민족을 위한 항일운동, 독립운동이었다.



그분들은 '우리'였다


어떤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희생했을까 궁금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관순, 안창호와 같은 위인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확인해보기 위해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리스트가 쫙 펼쳐졌다. 위인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이었다. 한 명씩 무작위로 눌러보았다. 한 분, 한 분 열릴 때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분들은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지금이라도 집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마주칠법한 익숙한 모습이었다. 연령대, 주소는 다양했다. 중·고등학생부터 연세 지긋하신 노인까지, 경기도부터 시작해서 함경도, 충청도, 강원도 등 전국 방방곡곡에 거주했다. 평민으로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지금의 초등학교 교사인 훈도(訓導), 노동(勞動), 목사(牧師), 쇠로 물건을 만드는 철공(鐵工) 등 그 직업도 정말 다양했다. 그리고 현대에도 존재하는 직업들이었다. 지금 우리 근처에 회사원, 자영업자, 공무원 등이 많듯이 이 분들에겐 농민, 노동, 철공 등이 그런 직업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사진 속 눈빛이었다. 대부분의 인물카드에는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감옥에서 촬영된 사진들이 첨부되어있다. 모두가 죄수복을 입고, 이름과 수인(囚人) 번호가 몸에 부착된 모습이었다. 일제에게 죄인이라는 취급을 받고 사진기 앞에 앉게 되었지만, 그분들의 눈빛은 참으로 당당했다.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사진기를 응시했다. 몇몇 분들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마음이 눈빛으로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려왔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사진기 앞에 앉았을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氏名 年月日生  Illustration ⓒ Amy Shin



대한민국의 평범하면서 위대한 사람들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들이 모여 애국심이 깊었던 그때에나 가능했을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개인주의가 강한 지금의 사회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너도나도 다 도망가지 않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나 또한 확신이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와 같이 나라를 위해 희생할 사람이 지금 시대에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만이 대의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평범하면서 위대한 사람들 Illustration ⓒ Amy Shin


하지만 이제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2016년 10월~2017년 3월까지 총 누적인원 약 1,5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바로 그것이다. 전국에서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목소리를 내던 촛불집회를 우리는 참여하기도, 지켜보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참여한 가족이 있었다. 커플들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퇴근하자마자 참여한 직장인들이 있었다. 평범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처음 촛불집회를 접한 것은 군 복무 시절이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난 3·1 운동을 떠올렸다. 1919년 3월 1일에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던 것처럼 촛불을 들고 조용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다 함께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보는 그 순간에는 정말 3·1 운동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깊이 집중하지 않았다.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본 후로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3·1 운동 참여자, 카드에 기록된 인물들과 같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흔한 이웃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거리로 나와 다 같이 한 목소리를 냈다. 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이기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제는 다시 나라가 위기에 빠지더라도 국민들이 재차 행동에 나설 것이라 믿는다. 능력이 뛰어나서, 용기가 비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서 그럴 것이다.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본인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만 잘 알고 있으면 된다. 우리 모두가 평범하면서 위대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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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Amy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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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장순명)
현재는 평범한 대학생이자 취준생.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저의 철학을 에세이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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