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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 불매 불매야

어머님 자신도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신 불매라는 단어는 어쩌면 2000년 전의 세계를 현재와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는지 모른다.

이언희

2019-11-06

6,70년대 골목길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다 큰 아이들까지 한데 어울려 놀던 골목길은 차들도 다니지 않았고 범죄를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위험이라면 비포장 골목길에 불쑥 고개 내민 돌부리에 무르팍을 깨는 것 정도였다.


늘 사이좋은 건 아니어서 어울리다보면 곧잘 토닥거리며 싸우기도 했다. 그때 내가 들은 가장 심한 욕은 ‘바보온달’이었다. 화가 나서 ‘바보야, 바보야’ 하다가 그걸로 성에 안차면 ‘온달아’라는 단어까지 보탰다. 그때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마들은 ‘온달’이라는 말이 ‘바보’를 강조하는 말로 알았다. 그래서 온달이 실존했던 고구려 장군의 이름임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고 바보라는 보통명사에서 온달이라는 고유명사를 떼놓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6,70년대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모두들 잘 알듯이 온달이 처음에는 바보소리를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평강공주를 만나 자신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내고 후에 훌륭한 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고구려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그 과정에서 온달은 많은 전설을 남겼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인터넷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소통의 매체도 부족했고 글도 채 깨우치기 전의 나이였던 우리 온달을 바보로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인식하게 된 건 누구로부터 기인한 걸까? 부모님? 조부모님? 아니면 그보다 훨씬 위? 


결혼 후 나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첫아이가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하며 일어서려고 애를 쓰기 시작하자 어머님은 곧잘 아이 두 손을 잡고 양쪽으로 시소처럼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가락에 맞춰 흥얼거렸다.


“불매 불매 불매야. 이 불매가 뉘 불맨고....”


뒷부분도 있었지만 듣기만 했지 내 입으로 뱉어본 적은 없어서 안타깝게도 지금은 잊어버렸다. 단순한 가사에 단순한 장단이지만 나름 흥겨워 아이는 그 장단에 맞춰 우쭐우쭐 몸을 흔들며 다리 힘을 키웠다. 처음 듣는 단어라 ‘불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어머님은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알라들 델고 놀 때 그카더라.”


시어머님은 말 그대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완전한 문맹자셨다.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듣거나 체험한 것들뿐이었고, 그 지식의 원천도 윗대 어른의 말씀이었다. 글에 의존할 수 없으니 들은 이야기, 집안 제사, 생일 같은 건 전부 머릿속에 담아두고 계셨다. 그러자니 기억력은 비상한 편이었다. 시골 골짜기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 지역에서만 사셨기에 외부의 문화와 섞일 기회도 없어 윗대의 지식이 훼손 없이 고스란히 어머님 머릿속에 저장될 수 있었다.  


내가 불매라는 단어의 뜻을 안 것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그 장단에 우쭐대던 큰아이가 고등학교까지 들어가고 내가 가야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뒤였다. 어느 날 역사책에서 나는 불매라는 단어를 찾아내고 반가움과 희열을 느꼈다. 알고 보니 불매는 ‘풀매’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었다. ‘불매 불매야’는 고달픈 풀매질을 하면서 부르던 가야인들의 노동요였던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불매 불매야'는 옛 가야인들의 노동요였다


가야인들은 쇠를 잘 다루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쇠를 녹이려면 높은 온도의 열이 필요했는데 땔감은 나무나 숯이었다. 흙으로 만든 노 안에 철광석을 넣어 쇠를 분리하는 그 모든 작업에는 사람들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다. 그때 나무나 숯을 활활 타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풀무였다. 풀무는 바람을 일으키게 하는 기구로 풀무꾼들이 커다란 풀무의 양쪽에 서서 시소처럼 번갈아 밟아 노 안으로 산소를 공급해주는 방식이었다. 


일단 제련작업에 들어가면 풀무질은 24시간 쉴 수 없었다. 쇠를 녹이려면 1000도 이상의 온도가 필요했으므로 잠시만 쉬어도 온도가 떨어지고 제련작업을 망치게 되었다. 풀무꾼들은 잠도 번갈아 자면서 풀무질을 멈추는 일 없이 산소를 불어넣어 노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때 풀무꾼들이 풀무를 번갈아 좌우로 밟아 대며 장단을 맞추던 노래가 바로 ‘불매 불매 불매야.......’ 였다.


어머님은 경북 성주에서도 한참 들어간 골짜기에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나 그곳에 묻히셨다. 성주는 가야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어머님 자신도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신 불매라는 단어는 어쩌면 2000년 전의 세계를 현재와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는지 모른다. 


어머님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곧잘 하셨다. 내가 얼른 알아듣지 못하면 화를 내시기도 했다. 당시 나는 나대로 어머니의 심한 사투리가 답답했다. 그런데 불매를 찾는 순간, 문득 어머님의 언어는 우리들의 전설과 신화가 화석이 되어 남은 흔적이 아닌가 싶었다. 뒤늦게 나는 띄엄띄엄 생각나는 어머님의 독특했던 언어들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더 안타까워해야했다. 그건 사투리가 아니었다.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표준말로 등재된 순수 토박이 말이었다. 외래어에 밀려 버린 수많은 우리말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잃어버린 세계의 문화와 삶과 전설이 담겨 있었을까. 

깨달음은 늦었다.


우리가 버린 말에는 잃어버린 세계의 문화와 삶과 전설이 깃들어 있다


어머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나는 어머님이 늘 부르던 불매 불매의 가사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훼손되지 않은 노인들의 기억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전설과 신화 속에는 우리들의 얼이 녹아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어머님이 부르던 ‘불매 불매야’ 라는 가락의 기억만은 아직 남아 있다. 참 다행이다.



○ 일러스트 - 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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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희
이언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이야기 만들기를 종아하는 여행자입니다. 이미지_ⓒ이언희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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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사진 이미지

황**

2021-07-08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사는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대충 "불매 불매 볼매야 우리불매 잘도돈다 이불매가 누구네불맨고 ???마을 황서방네 놋불맬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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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2021-07-08

딱닥딱닥 딱닥딱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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