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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이해로 더불어 존재하기

춤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인문쟁이 엄소연

2017-01-09


400년을 뛰어넘어, 역동적으로 현존하는 고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재해석되며 사랑받는 작품들이 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장르의 경계를 오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며 다양하게 각색되고 있다. 수백 년 전 영국의 문학작품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으며 재창조의 원천이 되는, 살아있는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겠다.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어서, 그의 정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잉글랜드작은 마을 스트랫퍼드 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1564년경 태어났다는 것이 통설로, 어린 시절 라틴어와 수사학 교육을 받으며 고전에 대한 소양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런던으로 나와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전속 극작가가 된다.


이후 그는 희극과 비극, 역사극, 운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현재 전해지는 작품만 해도 희곡 38편, 장시 2편, 소네트 154편에 달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4대 비극’으로 꼽히는 <햄릿Hamlet>, <오셀로 Othello>, <리어 왕 King Lear>, <맥베드 Macbeth>와 ‘5대 희극’으로 불리는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 <십이야 Twelfth Night>, <뜻대로 하세요 As You Like It> 등이 있다.


코델리아의 작별인사(King Lear : Cordelia's Farewell)

▲ <리어왕>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 코델리아의 작별인사(King Lear : Cordelia's Farewell)

에드윈 오스틴 애비(Edwin Austin Abbey), 1898,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셰익스피어는 새로운 표현들을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약 2만 개의 단어 중 신조어가 2천여 개에 달한다. ‘혈육(flesh and blood)’,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등 그가 처음 사용한 표현들은 이후, 여러 작품에서 차용되며 지금은 익숙한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당시 공문서나 학술서에는 영어가 아닌 라틴어가 쓰이고 있었는데, 셰익스피어는 창조적이고 폭넓은 어휘 활용으로 현대 영어의 발전과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셰익스피어 이후로,  영어는 그 폭과 깊이를 발전시키며 세계적인 언어로 성장하게 된다.


풍부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시적 상상력을 아름답고도 현실적으로 그려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문학과 연극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며 수없이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영화는 물론 음악과 미술, 무용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Romeo And Juliet><Romeo+Juliet>

▲ 프랑코 제페렐리 연출, 레너드 위팅, 올리비아 핫세 주연 <Romeo And Juliet> (1968, 영국) / 바즈 루어만 연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 주연 <Romeo+Juliet> (1996, 미국)


2016년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 곳곳에서 학술연구와 예술활동이 다채롭게 이루어졌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소설로 다시 쓰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가 하면,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과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셰익스피어가 한국에 소개된 지는 백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문학 연구는 물론이고 창극으로도 각색되는 등 활발히 재해석되고 있다. 올해는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학술 및 문화행사가 열리는 한편, 연극과 오페라, 뮤지컬, 발레 등 수십여 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소극장 혜화당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셰익스피어를 뒤집多>

▲ 소극장 혜화당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셰익스피어를 뒤집多>


춤으로 문학 읽기 - 더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나아가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들은 희곡이 대부분으로, 연출뿐 아니라 ‘대사’ 역시 중요한 요소다. 특히 그는 새로운 어휘와 독창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대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갈등을 풀어냈기 때문에, 언어는 작품을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대사 없이 구현해내려면, 이를 대체할 강력한 전달수단이 필요하다.


오페라나 뮤지컬에서는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노래가사나 대사를 통해서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반면 무용작품에서는 어떤 ‘말’도 없이, 연출과 음악,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서만 표현해내야 한다. 모든 표현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춤’에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춤으로 옮겨온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을 꼽을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드라마 발레의 걸작으로서도 매우 사랑받는 작품이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을 비롯해 표현력이 뛰어난 무용수들이 줄리엣으로 춤춘 바 있다. 사랑에 빠진 설렘과 행복에서, 이별로 인한 마음 찢어지는 고통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들이 대사 없이도 춤을 통해 생생히 그려진다. 주인공들은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지만, 그 애절한 마음이 손끝, 발끝에까지 담겨 섬세하게 표현된다. 사랑의 기쁨과 아픔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감정이기에, 어디에서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백미로 꼽히는 발코니 파드되(pas de deux, 2인무)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이 창문 아래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고도의 테크닉과 감정표현을 보여준다. ⓒ유니버설 발레단


맹세에서 죽음까지, 사랑의 극단적인 모습들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을 충실히 살린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 1965) 버전, 현대적 감각으로 연출된 장 크리스토퍼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 2006) 버전 등 다양한 버전으로 재해석되었다. 국내·외의 주요 발레단에서 널리 공연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버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화려한 의상과 무대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어우러지며 장대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국립발레단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여,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이 국내 양대 발레단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이렇게 대규모 단체에서 공연되는 대표작 외에도, 다양한 민간 예술단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발레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 말부터 11월까지, 6개 민간 발레단체의 연합인 발레 STP(Sharing Talent Program) 협동조합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셰익스피어 인 발레(Shakespeare in Ballet)’를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의 2016 세종시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여름 밤의 꿈>, <맥베드>,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이 갈라 및 전막공연으로 올려졌다. 대규모 단체에서 큰 극장에 올리는 공연에서처럼 화려한 무대장치는 없지만, 창의적인 재해석으로 원작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서미숙이 안무한 서발레단의 <크레이지 햄릿 Crazy Hamlet>은 안무와 음악은 물론 의상과 분장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크레이지 햄릿>에 등장하는 망령들은 펑크족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파격적인 의상으로 등장한다.


서발레단 <햄릿>

▲ 서발레단 <햄릿> ⓒ세종문화회관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삼촌, 그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를 보며 괴로워하고, 망령들에 둘러싸여 복수를 고민하며 고뇌한다.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의 웅장한 선율과 헤비메탈 사운드가 교차되는 강렬한 음악이 광기 어린 움직임과 어우러지며, 내면의 격렬한 갈등이 처절하게 표현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욕망 · 야심 · 망설임 등 원초적이고도 보편적인 정서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독창적이고 파격적으로 재현된 고뇌의 움직임을 보면서, 현대에도 존재하는 복수와 용서의 문제, 갈등과 모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인정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맥베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원국이 안무한 이원국발레단의 <맥베드>에서는 욕망과 고뇌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이 강렬하고도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대형 작품에서처럼 수십 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군무는 없지만, 주요 인물의 캐릭터가 매우 분명히 나타난다. 특히 야심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맥베드 부인은 화려하고 기품 있으면서도 욕망이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대사는 한마디도 없지만,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며 부르르 떠는 모습, 죄책감과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며 주저앉는 걸음, 그리고 권력을 손에 넣고 기쁨 속에서 추는 춤까지, 인간의 야심과 탐욕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권력을 향한 광기어린 욕망, 그리고 처절한 파국을 보면서,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원국발레단 <맥베드>

▲ 이원국발레단 <맥베드> ⓒ세종문화회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면, 희극은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들이 등장하는 환상의 숲과 인간세계가 어우러지면서 사랑과 질투 등 인간의 감정들이 어떻게 오가는지를 재미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제임스 전이 안무한 서울발레시어터의 <한여름 밤의 꿈>은 원작에서 나타난 환상적인 세계를 아름답게 살려내는 한편, 코믹한 움직임들을 활용하여 다양한 감정들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먼 사랑과 이를 외면하는 냉담함, 질투와 오해가 얽혀 상처받으며 방황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애정과 질투, 실망과 혼란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이 어긋나거나 이어지는 모습이 유쾌한 움직임 속에 펼쳐지고,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감정의 충돌과 혼란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하지만 기분 좋게 고민해보게 한다.


서울발레시어터 ≪한여름밤의 꿈≫

▲ 서울발레시어터 <한여름밤의 꿈> ⓒ세종문화회관


대사가 없다보니, 무용 작품은 막연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춤으로 구현되는 신체언어는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써 내려간다. 보는 이들은 얼굴 근육부터 손끝·발끝에 이르기까지, 무대의 모든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게 된다. 자연히 더 깊이, 더 주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기존의 언어로 접할 때보다 작품 속의 감정을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더 이해하고, 더 공감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그래서, 춤으로 구현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그 안의 기쁨과 슬픔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된다. 문학작품 안에서 만큼이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삶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것인지도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글로 읽거나 말로 들을 때보다 인간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데에서, 춤으로 셰익스피어를 보는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겠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셰익스피어는 - 더불어 존재하기 위하여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4백여 년 전 멀리 영국에서 쓰였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도 작품 속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서로 만나고 엇갈리는 가운데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죽도록 괴로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야망을 좇다가 파국에 이르기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 괴로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이런 삶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에 위로를 얻는 한편, 타인의 감정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4백 년 전에도 지금도, 인간은 수없이 부딪히며 서로를 다치게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서는 아무도 살 수 없기에, 이해하며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공존을 위한 노력은 보편적이고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작품에 담았던,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인간성의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의 평론가 벤 존슨(Benjamin Jonson, 1572~1637)이 셰익스피어를 “한 세대를 위한 작가가 아닌 온 세대를 위한 작가”라고 한 이유를 여기에서 알 수 있겠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셰익스피어가 갖는 의미는 결국,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함께 존재하기 위한 노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앞가림도 힘든 세상이라지만, 자기감정만을 중시하며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과연 바른 삶의 방향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문장을 찬찬히 읽듯이, 무대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바라보듯이, 타인의 감정도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며 이해하고자 노력해보면 어떨까. 모두에게 조금은 덜 힘든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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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소연
인문쟁이 엄소연

[인문쟁이 1,2기]


엄소연은 경기 고양시에 살고,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한다. 춤과 음악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있으며, 이를 무대에서 사람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서든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더 많은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한다. like_ball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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