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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을 묻다. 공자를 따라 걷다

중국, 곡부에 가다

인문쟁이 이다선

2016-08-26

 

여행의 목적

때로는 의도치 않은 것들이 의도한 것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 이번 여행도 그랬다. 그저 프로모션 시기를 잘 맞춰서 구매한 항공권 때문에, 다가오는 여름에 어디라도 가고 싶었기에 훌쩍 떠난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우연이 인연이 되듯 나는 여행길에서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 설렘과 기대를 가득 안고 떠난 여행길. 나는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내 오랜 동경의 대상 ‘공자’의 발자취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여행의 목적은 의도한 듯 안 한 듯 그 경계를 넘어 ‘공자’라는 인물을 따라 걷는 시간이 되었다.


공자의 마을, ‘곡부(曲阜)’에 가다

칼이라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고 했던가. 이왕 중국에 온 거 세계 4대 성인에 손꼽는 공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이때 나에겐 ‘공자를 만나러 중국에 가야지!’라는 여행 전 목적의식보다 그저 ‘중국에 왔으니까 공자를 만나볼까?’라는 생각이 앞선 상태였다. 그저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자연스레 기차에 올랐고,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로 향했다. 곡부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공자를 떠올렸다. 왠지 그곳에 가면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그의 기운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자는 기원전 5세기경에 태어난 사람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는 시간의 차가 꽤 큰 인물이다. 시간뿐 만인가. 그의 지식과 지혜는 나와는 견주어 볼 필요도 없이 월등히 방대하다. 그래서 가끔은 ‘그가 실존인물이긴 한가?’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에 잠기곤 했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곡부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살아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공묘, 공부 그리고 공림을 보면서 나는 그가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곡부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명 공자마을 ‘곡부’공묘에 들어서기 전 입구

▲ 일명 공자마을 ‘곡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사진은 공묘에 들어서기 전 입구 / 공묘 안에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와 건물의 공존을 볼 수 있다.


공자의 깊은 뜻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공묘’. 이곳은 황제의 묘와 대등한 구조로 지어졌을 만큼 그 크기가 웅장하고 압도적이다. 나는 공묘에서 공자가 중국인들에게 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성인이라는 것을 느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곳의 분위기와 크기가 말을 해줬다. 대성전으로 걸어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공자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해졌다. 수백 년 전 중국을 다스린 황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모두 공자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왔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공자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대성전 안

▲ 공자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 규모가 굉장하다. / 대성전 안에는 ‘공자’의 위패가 봉헌되어 있다.


오악독존(五嶽獨尊), ‘태산’에 가다

곡부를 떠나 공자의 산이 있는 태안으로 향했다. 곡부가 공자의 고향이자 영원한 안식의 공간이라면, 태안은 공자가 사랑한 태산이 있는 곳이다. 태산은 중국에 오악(五嶽)이라 불리는 유명한 산들 중 하나로, 여럿 중에서 가장 중심 되는 산이다. 이로 인해 태산은 ‘오악독존(五嶽獨尊)’이란 별명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태산은 곡부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공자는 종종 태산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태산이었기에, 이번 여행길에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정의 하루는 태산 정상에서 보내며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로 했다.


생생하게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고, 수려한 자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태산구름이 걷히면서 조금씩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산

▲ 생생하게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고, 수려한 자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태산 / 구름이 걷히면서 조금씩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바위 문구 - 觀魯思聖(노나라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공자)

동이 트기에는 이른 새벽 4시, 태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산 정상에 올랐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대지, 그 위에는 구름이 자욱한 하늘이 있었다. 신선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지만, 이 산속에는 분명 신선이 살고 있을 거란 확신에 차는 순간이었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한 줄기의 붉은 햇빛이 나오면서 온 세상을 비췄다. 그 사이 주위는 점점 밝아졌고 나는 비로소 내가 어디에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봤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발밑에는 ‘觀魯思聖(노나라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공자)’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산 정상 많고 많은 일출 장소 중에서, 나는 우연의 일치로 공자와 바라봄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가 노나라를 바라본 곳에 서 있으니 몇 천 년 전 그가 바라본 태산 밑의 세계는 어땠을까. 그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처럼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의 대답은 영영 들을 수 없지만. 나는 그에게 묻고 또 물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데 지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잠긴 순간,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登太山,小天下)”라고 외친 공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내 안으로 울려 퍼졌다.


얻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매번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여행길에 오르곤 했다. 그러나 때로는 무(無)에서 오는 얻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길을 걸어갔을 뿐인데, 공자를 만났고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여행의 시작과 끝에는 공자가 있었다. 그를 따라가는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나는 보려 하지 않아도 볼 수 있었고, 느끼려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이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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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이다선

[인문쟁이 2기]


이다선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고, 집안에 만들어 놓은 서실이 개인의 아지트이자 작업실이다. 현재는 대학에서 철학 공부에 전념하고 있으며 철학을 배우다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되었다.그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감정을 노래한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를 만나보고 싶다. 이 기회를 통해서 책장 밖으로 나온 철학을 맛보고 싶다. 음, 그러니까 우리 주위의 인문정신에 대해서 말이다. ssunda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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