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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잘 수 있는 건 신의 축복

어두울 때는 잠자리에 들어라

강유정

2018-10-22


왜 ‘잠’자는 숲속의 공주일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Sleeping Beauty)>는 원래 유럽의 전래 동화로,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데, 공주가 16살이 되던 날 물레에 찔려 잠이 들었다는 내용은 그림 형제가 각색한 것이다. 공주가 태어나던 날 요정들이 찾아와 축복을 내렸는데, 초대받지 못한 요정 하나가 심술을 부려 16살이 되기 전에 물레에 찔린다면 100년 동안 잠이 들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결국, 공주는 16살이 되기 전 물레에 찔리고 100년 동안 잠이 든다. 결말은 모두 알다시피 왕자가 찾아와 키스하니 공주가 깨어나고 둘이 결혼하는 해피엔딩이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 1959) ⓒWalt Disney Productions


아동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왜 하필 공주가 물레에 찔리는 나이가 15살에서 16살이 되는 때인지, 그리고 왜 저주가 100년 동안 잠이 드는 것인지, 왕자는 어떻게 키스라는 해결책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전래 동화는 일종의 성교육 이야기이다. 여자 나이 15살은 이차성징을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몸만큼 호기심은 커지지만 사실 몸만 컸다고 해서 우리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주처럼 이 시기에 금기를 어기고 호기심을 따라간다면 100년 동안 잠자게 된다. 정말 재미있는 분석은 이 이후이다.


공주는 잠든 100년 동안 늙지 않는다. 여기서 100년은 일종의 상징이다. 육체의 성장만큼 정신도 따라서 성숙할 수 있을 시간, 그 상징적 시간이 100년인 셈이다. 몸은 훌쩍 컸지만, 아직 어른이 되기엔 정신적 성장이 따라주지 않는 16살에게 100년의 잠이란 육체와 균형을 맞춘 정신적 성장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주는 깨어났을 때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난다.



자신을 치유하는 잠


잠에는 치유의 성분이 있다. 아이들의 키를 자라게 하는 성장호르몬은 밤 10시와 새벽 2시 사이, 깊은 밤에 가장 왕성히 분비된다. 어른에게 잠자는 시간은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을 잘 때 상처가 낫고 아문다. 이는 비단 육체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수면이야말로 다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잠은 훌륭한 치유제가 된다. 왜냐하면, 잠을 자는 동안만큼은 나의 에너지를 나만을 위해 쓰는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때문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나눈 연인이 깊은 잠에 빠져드는 이유도 나르시시즘에서 찾았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나의 에너지를 상대방에게 전폭적으로 쏟아 내는 행위이기에 이후 자아가 가장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그 빈곤해진 자아를 다시 채우기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어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채우고 나서야 다시 사랑하는 이에게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결국,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향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상처 입은 육체와 영혼의 치유제를 잃는 것이다. 수많은 영화와 문학작품에서 잠의 축복만큼이나 불면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면 잠이 사라진다. 악몽과 괴로움이 차지한 수면은 체벌과 다르지 않다.



잠은 축복, 불면은 저주


맥베스: 내 생각에 외치는 것 같았소, ‘못 자리라!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다’고. 천진난만한 잠, 엉클어진 근심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잠, 하루 삶의 멈춤이고 노고를 씻음이며 다친 마음의 진정제, 대자연의 주된 요리. 이 삶의 향연에서 주식이고- 여전히, ‘못 자리라!’. 온 집안이 외쳤소.

(셰익스피어, 《맥베스》 2막 2장)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부가 살인을 저지른 대가로 얻은 형벌은 다름 아닌 형편없는 수면이다. 맥베스는 살인 이후 불면증을 얻고, 맥베스 부인은 몽유병을 앓는다. 처음에 맥베스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위의 대사가 보여주듯 잠이란 하루 삶을 마감하는 일종의 제의적 약속이자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자양분이다.


살인과 왕위 찬탈 같은 패륜을 저지른 맥베스가 받은 형벌이 불면이라는 점은 잠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에게 잠을 빼앗자 영혼의 안식을 잃고, 유령을 보며, 불안과 공포에 떤다. 단지, 잠을 잃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고 만다.


영화 〈머시니스트〉의 주인공 트레버 레즈닉(크리스천 베일)을 괴롭히는 불면증 역시 맥베스 부부의 고통과 닮았다. 잠만 들면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에 시달리는 그는 1년째 제대로 잠들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삶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는데, 알고 보면 그 불면증의 원인에는 그가 저질렀던, 회복하기 힘든 실수의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 <머시니스트>(The Machinist, 2004) ⓒ파라마운트 밴티지,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주)피터팬픽쳐스 (주)팝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것은, 현대사회의 생활 방식 자체가 사실 건강한 수면을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는 잠 도둑들이 널려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 내레이터가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 주변의 잠 도둑들 때문이다. 고카페인의 커피 음료를 하루에 몇 잔씩 마시고 업무상 시차가 엄청 난 출장을 거듭하는 주인공은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잠의 패턴을 놓치게 된다. 그는 잠들지 못하는 동안 이케아 카탈로그를 보며 어떤 가구를 사서 집 안 분위기를 바꿔볼까 고민하면서 또다시 잠을 놓친다. 커피와 너무 많은 정보, 지나치게 잦은 출장으로 잠의 축복을 놓친 그의 모습은 요즘의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모니터의 블루 라이트가 숙면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정보들을 검색하며 잠에 들지 못하는 모습 말이다.



잠은 우주와 같다


잠은 인류에게 우주와도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인터스텔라〉를 만들기 전 영화 〈인셉션〉을 만든 것도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우주가 물리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한계에 관한 지적 탐사였다면(〈인터스텔라〉), 꿈은 인간의 심리적 한계에 관한 탐구이다(〈인셉션〉). 멀리 우주로 여행을 가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을 여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잠이란 아직 인류가 완전히 알지도, 정복하지도 못한 우주와도 같다. 1차 꿈 안의 2차 꿈,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의 꿈으로 연쇄되는 꿈의 세계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완전히 파헤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적 깊이이기도 하다.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인셉션> (Inception, 2010)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라는 호세 카를로스 카네이로의 책 제목처럼 잠이야말로 신의 축복이자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한 남자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잠이 들지 않으려 애쓰고(영화 〈뷰티 인사이드〉), 가위눌림에 시달리는 신경쇠약자는 수마(睡魔)를 피하기 위해 잠이 들지 않으려 애쓴다(영화 〈마라〉). 사랑에 갓 빠진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느라 잠을 쫓고, 실연의 상처는 가장 먼저 잠을 앗아간다. 잠, 영혼과 육체의 안식이자 자양분. 그렇기에 지금도 많은 예술가가 인생의 심연과 우주의 신비를 탐조하듯 그렇게 잠의 세계를 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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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유정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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