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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어떻게 화를 낼 것인가?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박동덕

2022-02-11

오늘, 키워드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마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 우리는 왜 어쩌다 이들의 움직임과 향방에 대해 시시때때로 관심을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게 되는 걸까요? 각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금을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리스도만 믿지 말고 ‘그럴 수도’도 믿어 보자”라며 ‘그럴 수도’라는 마법의 주문을 권한다. 확, 하고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게도 하고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당황스럽게도 하고 얼굴을 화끈거리게도 하는 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럴 수도’를 떠올리면 화가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다. 나 또한 지하철에서 화를 냈던 노인에게 ‘그럴 수도’라는 주문을 적용했더니 내 안의 웅크리고 있던 화의 잔재가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경험을 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행운



지하철 개찰구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지하철 개찰구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소소한 행운을 만나는 때가 가끔 있다. 예를 들면 막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다. 지난여름 어느 날인가 그런 행운을 만났다.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승강장으로 내리자마자 멀찌감치 막 닫히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를 본 것이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수신호를 하며 달렸더니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분명 누군가 닫히는 문을 지체시켜 준 덕분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올라탔고 기존의 승객들은 조금씩 공간을 내어 주었다. 그즈음 나는 평지를 걸을 때는 괜찮은 데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무릎 통증으로 힘들었다. 대합실로 올라가는 짧은 이동 시간에도 나는 뜻밖의 행운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런데 감사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개찰구를 나서는데 누군가 뒤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버럭 화를 냈다. “젊은 친구가 걸어 올라갈 일이지 말이야. 계단이 얼마나 된다고” 언뜻 보니 백발의 한 노인이 노여움을 뿜어 내고 있었다. ‘젊게 봐 주셔서 고맙지만 나도 사정이 있습니다’



지하철 계단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지하철 계단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노인의 분노에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변명이 목을 넘어오진 않았다. 노인은 지상까지 올라가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고 나는 노인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날따라 계단은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고 무릎은 더 시큰거렸다. 노인이 쏟아낸 화는 여운이 길었다. 그 뒤로도 며칠간은 노인의 화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화 낼 틈을 엿보는 사회



화난 사람들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화난 사람들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가히 분노사회다.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 있거나 화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상당수의 범죄도 분노에 기인한다. 돌아보면 주변엔 못마땅한 것투성이다. 그러니 실낱같은 구실도 화를 내는 데는 마땅한 트리거(trigger: 방아쇠)가 된다. 사소한 듯 보여도 화라는 감정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는다. 화는 이성을 앞지른다.



주먹과 깨진유리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주먹과 깨진유리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흔히 쓰는 불같이 화를 낸다는 표현은 화를 내는 기세에 대한 묘사인데 화의 성질 자체가 불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화는 자신을 태우면서 동시에 인간관계를 태워버린다.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판단을 함부로 내리게도 한다. 또 안락한 휴식의 시간마저도 일순간에 망쳐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화낼 구실을 만나더라도 화를 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화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탓이다. 자칫하면 인지부조화나 감정부조화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첨단과학이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지금의 2진법 디지털 전자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원리로 이뤄지는 컴퓨터)를 내놓고 있지만 화를 직면하는 일은 오로지 개인의 역량에 달렸다. 어떻게 보면 화는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화는 무엇인가?



화의 기원? ‘부당한 대우 받았다’는 믿음!



세네카(좌)의 책 〈화에 대하여〉(우) 표지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교보문고)

세네카(좌)의 책 〈화에 대하여〉(우) 표지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교보문고)



스토아철학의 대가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년경~65년)는 화의 근본 원인을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화를 마음의 질병이라고 여긴 세네카는 『화에 대하여』라는 책의 첫머리에서 ‘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화는 다른 감정들에 비해 특별히 더 비천하고 광포한 것으로, 오로지 격렬한 공격성만 가득할 뿐이다. 화는 상대방을 해할 수만 있다면 다른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겨누어진 비수의 칼끝을 향해 덤벼들며, 앙갚음하는 자신마저 나락으로 떨어질지라도 철저한 복수를 감행한다. 화는 하찮은 이유로 격분해서 무엇이 옳고 참된지 알아보지 못한다. (중략) 화난 사람은 속으로는 잔뜩 겁을 먹었으면서 겉으로만 시끄럽게 떠들고 위협할 뿐이다.”


(출처: 『화에 대하여』, 세네카 저, 김경숙 역, 출판사 사이, 2013)


화에 대해 비교적 과격한 정의이지만 화의 다양한 측면들을 꿰뚫는 철학자의 지혜가 돋보인다.



얼마나 해로우면 독이라고 했을까



불교

불교 손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불교에선 화를 삼독(三毒) 중의 하나라고 가르친다. 얼마나 해로우면 독이라고까지 했을까? 삼독은 독약처럼 사람들을 해롭게 하고 번뇌하게 하는 세 가지를 말한다. 탐진치(貪瞋癡)가 그것이다. 탐(貪)은 탐욕, 욕심이고 진(瞋)은 성냄, 분노, 화를 뜻하며 치(癡)는 무명(無明), 어리석음이다. 여기서 핵심은 치, 어리석음이다. 어리석기에 탐욕과 성냄에 발목을 잡혀 독화살을 맞는 것이다. 어리석지 않으면(지혜가 생기면) 탐욕은 건강한 부러움으로 성냄은 용기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감정인 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또 화를 낸다면 어떻게 화를 내야 할까?



‘그리스도’ 말고도 ‘그럴 수도’를 믿어 본다면



유튜브 채널 〈pano의 소소한 깨달음〉 ‘화를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 영상 화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교보문고)

유튜브 채널 〈pano의 소소한 깨달음〉 ‘화를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 영상 화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교보문고)



얼마 전에 오랜 수행 경력을 갖고 계신 언론인 선배가 유튜브 채널(Pano의 소소한 깨달음) 을 개설했다고 해서 방문했더니 마침 흥미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화를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이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영상은 화에 대한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들도 제시했다. 우리가 화를 내면 인체는 분노의 호르몬이라고 하는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독 중에서도 복어와 뱀의 독 다음으로 강력하다. 이 호르몬은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도록 용기와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독성을 몸에 자주 분비하는 건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을 알게 되니 화를 자제해야겠고 화를 내더라도 슬기롭게 다스려야 할 이유가 더 자명해진다. 또 화를 내지 않으려고 억누르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고 그것은 화병으로 이어지기에 화는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감정이다.



이해와 사랑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이해와 사랑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영상은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리스도만 믿지 말고 ‘그럴 수도’도 믿어 보자”라며 ‘그럴 수도’라는 마법의 주문을 권한다. 확, 하고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게도 하고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당황스럽게도 하고 얼굴을 화끈거리게도 하는, 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럴 수도’를 떠올리면 화가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다. 나 또한 지하철에서 화를 냈던 노인에게 ‘그럴 수도’라는 주문을 적용했더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화의 잔재가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경험을 했다. ‘그럴 수도’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구르지예프의 얼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구르지예프의 얼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화’는 다루기 어려운 만큼 도전이고 기회가 되기도 한다. 화라는 감정을 이용해 삶 전체를 바꾼 일화가 있다. 20세기 뛰어난 영적 스승으로 꼽히는 구르지예프(Georgii lvanovich Gurdzhiev, 1877~1949, 러시아의 신비주의 운동가) 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누군가 너를 모욕하거나 너를 오해해서 그와 다투게 되면, 그날 그 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그를 만나거라. 그날 밤 네 생각에 그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날 그를 만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고 정중히 사과하라. 만일 그가 옳지 않다면 그의 말에 신경을 쓸 까닭이 없다”


구르지예프는 평생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켰다. 화를 성찰의 방편으로까지 승화시킨 사례다.


내 경우엔 화가 일어날 때 위빠사나(vipassanā: 불교의 명상법) 수행에서 배운 알아차림으로 화를 다스린다. 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화가 사라진다. 물론 바로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화날 때마다 매번 알아차리는 것도 아니다. 알아차림도 처음엔 크게 한 덩어리로 화가 난다는 감정의 동요 전체를 알아차리게 되지만 수행을 할수록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세부적인 현상들까지도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듯 알아차림이 된다. 분명한 것은 알아차림이 되면 화는 힘을 잃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화에 대한 근본 처방은 아닐 것이다. 수학에 왕도가 없듯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절반의 성공, 하지만 나머지 1%는…



자신과의 화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자신과의 화해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화가 날 때, ‘그럴 수도’라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든지, 구르지예프가 할아버지께 받은 가르침처럼 다음날 화를 내든지,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으로 화를 알아차리든지, 어떤 경우에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거다. 왜냐하면 화가 그 힘을 잃는 것은 물론이요, 분노의 호르몬을 내거나 화난 감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시간을 줄여 주기 때문이다. 절반의 성공이면 나머지에서 1%의 성과를 내면 된다. 그러면 51%가 되고 화에 대해 51대 49로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1%는 자신이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화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화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더 잘 알게 하는 훌륭한 재료다. 자연스레 지혜가 생겨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절반의 성공을 거둔 후에는 어떻게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나머진 화가 난 사람의 몫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롭게 화를 내는 방법을 강구해 보면 어떨까? 만일 답이 없다면, 괜찮다. 화를 내지 않으면 된다. ‘화’라는 버스는 이미 떠났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화에 대하여; 어떻게 화를 낼 것인가?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어제까지의 삶과 작별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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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덕PD 사진
박동덕

다큐멘터PD, 독립프로덕션 비에마로 대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방송프로덕션에 재직했다. KBS수요기획 세계의 공동체-희망의 도시, 오로빌(1997), KBS세계는 지금 터키대지진(1999), KBS현장르포 제3지대, KBS인간극장, KBS수요기획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얼쇼리스의 희망수업(2004), 이것이 미래교육이다(Q채널, 2004), EBS다큐인, EBS희망풍경, EBS다큐프라임 휴식의 기술(2019), 아주 이상한 학교-삼무곡청소년마을(뉴스타파) 등 다수의 교양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이것이 미래교육이다>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과 ‘방송위원회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보리수선원에서 위빠사나를 배웠고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비움과 소통, 2011)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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