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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결점이 사람의 결함인가?

몸 관리라는 구속

오찬호

2019-02-27


내가 부족해서 아픈 걸까?


발목 안쪽 복사뼈 아래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통풍 같았다. 신발을 신고 벗기도 아파하는 내게, 평소 몸 관리 철저한 친구 A는 위로는 못 해줄망정 빈정거렸다. “평소에 몸 관리 좀 하지 그랬어. 너 고기 좀 많이 먹더라.”


서러움을 참으며 내과를 갔다. 요산 수치가 약간 높았지만, 초음파에서 통풍 판정을 내릴만한 결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도 많으니 함부로 자가 진단하면서 이상한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왜 아픈지는 몰라도 통풍은 아니라기에 기분은 좋았다. 빈정거렸던 친구에게 결과를 말하니, A는 함부로 말해서 미안하다고 해도 모자랄 지경에 다시 비아냥거린다. “요산 수치가 높다는 건 몸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거니 안심하지 마. 절제 없이 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게 전조증상일지 누가 알아?” 이후로도 통증은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그때마다 A는 성가시게 굴었다. “너 요즘 음식 조절하고 있어? 아까도 아무거나 막 먹던데.”


부모도 자녀에게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 시대에 저리 당당한 오지랖이라니. 1년 후, 내가 정확한 병명으로 진단받고서야 친구의 설레발은 멈췄다. 부주상골 증후군. 발목과 엄지발가락을 이어주는 주상골 옆에 필요 없는 뼈가 웃자라면서 발생하는 통증을 말한다. 열에 하나는 ‘왜 그런지는 전혀 모르고’ 이런 뼈를 몸에 지니는데, 그중 일부는 발이 피로할 때 통증을 느낀다. 성장기 때 발견하면 몇 가지 교정방법이 있지만 효과는 미비하다. 뼈를 잘라버리고 붙이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니 대부분 소염제로 버티면서 산다. 갑자기 의학 정보를 주저리 나열하는 건 내가 A를 붙들고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실제 통풍인들 내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일 이유도 없지만, 나는 아픈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녀석에게 이 병이 개인의 생활습관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장황하게 반복했다. 아뿔싸!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 나온다. 상대는 확고했다. “살만 빼봐. 대부분의 질병은 사라져.”


내가 부족해서 아픈 걸까?


놀랄 일이 벌어졌다. 수개월 후, A가 통풍에 걸렸다. 그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고기도 별로 안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자신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비흡연자라고 폐암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채식주의자도 대장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통풍도 노폐물을 배출하는 신장기능을 포함해서 원인은 다양하니 자책 말고 의사 처방대로 약을 꾸준하게 먹으라고 했다. 자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위로하는 내 모습에 친구가 좀 달라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A는 매일 약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통풍은 자기 관리의 실패라는 증명서이자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강박의 크기만큼, A는 마치 역사에 남을 통풍 극복 사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정보를 모았고 그대로 실천했다. 식단은 엄격하게 관리되었고 노폐물 배출에 탁월하다는 정체 모를 비싼 물을 하루에 3리터씩 마셨다. 한편으로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자연치유 정보에 집착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몸 관리 전문가였던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몇 번 요산 수치가 줄기도 했지만 결국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통풍은 재발되었다.



건강, 개인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생활습관과 질병이 관련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소 어떤 관심과 실천을 했느냐에 따라 개인의 건강은 달라질 것이다. 아니, 확률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관성을 절대적인 원인으로 해석하여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설령 상관성이 꽤 크더라도 그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몸의 결점을 ‘사람의 결함’으로 이해하는 시선에 주눅 드는 개인의 모습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비극 아니겠는가. 한국처럼, 살찌면 자기 관리가 부족해 보여 취업도 어렵다는 곳에서 당당하게 ‘나 몸 아파요!’라고 말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나태한 자를 혐오해도 된다는 발판을 제공하는 꼴에 불과하다.


사람의 몸이란 반드시 좋은 투입이 있다고 보란 듯이 결과가 산출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반대로 좋지 않다는 것을 가까이했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건강하기 위한 경향성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해당 범주가 아닌 사람을 멋대로 평가하는 이유가 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예를 들어 키 작은 아이의 부모가 주변에 고충을 토로하면 무슨 말부터 듣겠는가. 이미 웬만한 노력은 다하고, 단지 위로받고자 던진 말에 반응은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밥은 제대로 먹여요? 우리 애들 먹는 거 보면 깜짝 놀라 자빠질 거예요.” 충분히 먹인다고 하면 매뉴얼에 따라 다음 질문이 등장한다. 영양제는 먹이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심문이 계속된다. 유전자가 그런 걸 왜 걱정하냐고 빈말이라도 해 주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세상의 온갖 편견에 상처를 받을 만큼 받은 키 작은 아이의 부모들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혹시나 해서 키 성장을 도와준다는 비싼 영양제를 구입한다. 허위광고인 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징표를 구입했다고나 해야 할까.


건강, 개인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

 

한 아이에게 아토피가 발생했다. 주변에서는 자기 아이는 마늘장아찌도 먹기 때문에 아토피에 절대 안 걸린다는 이상한 소리부터 한다. 그리고 엄마가 임신 중 혹시나 이상한 걸 먹었는지를, 모유 수유는 얼마나 했는지, 그때 식습관은 어땠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리고 아이가 ‘한 번이라도’ 콜라를 마셨던 순간을 기가 막히게 기억해낸다. 파편적인 조각 몇 개만으로 사람들은 한 가정의 전체 구성원의 생활습관을 단정하고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1뜻의 아토피의 원인을 명쾌하게 진단한다. 논리가 간단한 만큼 당사자의 상처는 명료하다.


끝없이 몸의 결함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미는 담론이 부유하는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은 괴롭다. 하긴, 암 환자들이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병문안 온 지인들이 ‘어쩌다가 암에 걸렸대?’라는 표정을 지으며 위로인지 추궁인지를 할 때라고 하지 않은가.


1 아토피(atopy)란 용어는 그리스어가 어원으로 ‘비정상적인 반응’, ‘기묘한’, ‘뜻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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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찬호
오찬호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가능하다고 믿고 나쁜 고정관념을 깨는 글쓰기를 주로 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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