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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

보통 사람의 몸에서 찾은 특별함

최미선

2019-02-01


“No cross, No crown!”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는 이 문구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이 되면서 산 영어사전 첫 페이지에서다. 첫 장에 그런 문구를 담은 건 피나게 노력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터다.


‘고난을 겪어야 영광을 얻는다.’는 진리에 문득 한 여인의 발이 떠올랐다. 온라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발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도드라진 발가락 마디마디마다 옹이처럼 울퉁불퉁 불거진 굳은살은 못 생기다 못해 기이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 요상한 발의 주인은 바로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우뚝 선 강수진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람들은 내가 발레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이라고 하지만 발레를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은 없다.

나는 가녀린 발가락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전쟁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발가락을 있는 대로 옥죄는 토슈즈를 신고 날마다 15시간씩 혹독한 연습을 견뎌냈단다. 그 노력이 낳은 요상한 발을 ‘예술’이라며 그녀의 남편이 찍어준 사진 한 장이 그녀가 왜 정상의 자리에 올랐는지 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녀 자신은 너무나 못생긴 발이라 예쁜 신발을 못 신는다지만 내겐 그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보인다.



위대한 사람들의 발


발바닥에 가득한 굳은살과 시꺼멓게 죽은 발톱을 지닌 박지성의 발도 정말이지 못생겼다. 더구나 그는 평발이다.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로해진다는 발이니 축구선수에겐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 발로 남들보다 더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며 자신의 꿈을 이뤘으니 그 또한 멋진 발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누르고 ‘테니스 황제’라는 로저 페더러와의 준결승 경기 중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정현의 발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물집이 터져 여린 속살이 보일 정도로 깊게 패인 그의 발바닥 상태를 본 코치가 기권을 권유했지만 통증을 참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던 정현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물론 피멍 자국으로 가득했던 ‘피겨 여왕’ 김연아의 발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를 말해주는 그들의 발 앞에서 나의 초라한 노력이 새삼 부끄럽다.


아무리 좋은 여행도 몸 어딘가가 시원찮으면 만사가 귀찮다. 눈이 침침하면 답답하고, 코가 막히면 숨쉬기가 힘들고, 잇몸이 아프면 밥 먹기가 힘들고, 손가락에 잔가시 하나 박혀도 신경 쓰이니 내 몸 구석구석 어느 한군데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걷는 여행을 좋아해 국내든 해외든 주구장창 걷다 보니 내 경우도 발이 제일 고생이다.


그 발로 들어선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은 돈 안 내고 르네상스 예술품을 두루 엿볼 수 있는 최상의 노천박물관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로마 건국 시절 여자가 부족했던 로마 병사들이 인근 부족인 사비나 여인들을 납치했던 모습을 담은 ‘사비나 여인의 강탈’, 피렌체의 해전 승리를 기념한 ‘넵투누스의 분수’와 ‘헤라클레스’ 등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조각상들이 경쟁하듯 눈길을 잡아끄는 곳이다. 광장에 놓인 숱한 조각상들을 보다 보니 살짝 궁금증도 생겼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정말이지 이런 몸짱이었을까? 그런 이탈리아 몸짱들 못지않게 요즘 우리 사회도 몸짱 열풍이다. 사실 몸짱에 얼짱까지 겸비한 이들을 보면 은근 부럽긴 하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들

▲ 역사 속의 인물들은 정말 이렇게 몸짱이었을까?



평범함 속에서 발견한 반짝임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몸을 발견한 건 자전거 해안일주 여행에서다. 45일 동안 우리나라 해안 한 바퀴를 돌면서 가장 고생한 건 역시나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두 발이다. 자전거 ‘쌩초보’였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꿋꿋하게 서해안, 남해안을 돌아 울진 바닷가에서 마주한 여인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바람이 거친 날이었다. 바람이 거친 만큼 파도도 꽤나 거셌다. 그 바람을 헤치고 부지런히 달리는데 저 멀리 바다로 뻗은 방파제 위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방파제 코앞에서 보니 너무나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긴 장대를 휘저으며 파도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미역을 건져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긴 장대가 버거운지 힘겹게 휘저으며 건져보지만 갈고리에 딸려 나오는 미역은 그리 많지 않았고 헛갈고리질도 수차례다. 거친 파도가 몸을 적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간간히 허리를 두드려가며 한줄기라도 더 건져내려 애쓰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했다.


미역 건져내시는 할머니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할머니에게 다가갔지만 아무런 기척을 할 수 없었다. 수고하신다는 어설픈 인사마저 건넬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저 몸을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할머니 또한 아무런 말 없이 온화한 미소로만 답했다. 흐린 날의 세찬 바닷바람으로 인해 할머니의 얼굴과 손은 발그레 얼어있었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할머니, 하필이면 왜 이렇게 바람 부는 날 일을 하세요?”

“이래 바람이 세야 미역이 많데이~”


바람이 거세야 바위에 붙은 미역들이 세찬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와 바다에 둥둥 떠다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다시 장대를 휘젓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 앞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작은 거인과도 같았다. 이제 인사라도 하고 떠나야하는데... 하지만 할머니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기다린 끝에 다시 눈이 마주친 그분께 다시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그 바다를 떠났다.



세월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진정성


꼬막을 잡던 벌교의 아낙네들

 

길을 달리며 생각했다. 근육 없는 몸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이 많아 비대한 몸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일자리가 있음에도 무위도식하는 몸이 정녕 부끄러운 몸이라고... 그와 달리 평생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몸은 여행 중 꽤 많이 보았다. “아, 놀면 뭐해. 손발 움직일 수 있을 때 일 해야지.”라며 소래포구 앞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그물을 손질하시던 할아버지, 추운 겨울,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길쭉한 널을 타고 나가 미끄덩한 갯벌에서 추위를 견뎌내며 꼬막을 잡던 벌교의 아낙네들, 허리가 거의 90도가량 굽은 몸으로 온종일 다시마를 씻어 말리시던 보길도 할머니도 떠오른다.


“저게 다 금바다여~ 여기는 바다가 보물이제.

다시마, 미역, 전복, 톳.. 이것들이 지금껏 우리를 먹여 살린 거제.”


어둑어둑해졌음에도 그 바닷가에서 일손을 놓지 않으시던 보길도 할머니를 조금이나마 돕고자 나선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길이 3~4m나 되는 축축한 다시마는 한줄기만 들어도 무게가 제법이다. 그런 다시마를 한 꾸러미씩 들고 와 해변에 펼친 그물 위에 죽죽 펴서 널다 보니 한 시간도 안 됐건만 팔도, 허리도 뻐근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 힘든 일을 할머니는 평생 해오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다시마를 씻어 말리시던 보길도 할머니

▲ 할머니는 평생 해오셨던 일을 잠깐 도와드렸을 뿐인데 몹시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7남매를 두셨다는 부안의 할아버지도 생각난다. 이른 아침부터 밭일을 나온 할아버지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에구~ 옻이 올라 가려워 죽것어~” 그러면서도 깊게 팬 주름마저 멋져 보일만큼 환한 웃음으로 “내가 말이여~ 이 손으로 서울, 안양, 안산, 수원, 전주, 울산... 자식들을 대한민국에 다 깔아놨지라. 인자 나는 전국 어딜 가도 든든하당게~”라시던...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몸짱이요, 그들의 온화한 미소, 환한 웃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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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미선
최미선

10여 년간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생활을 하는 동안 밤이면 차를 몰로 냅다 강릉으로 달려 커피 한 잔 달랑 마시고 돌아오는 일이 잦아 ‘썰렁한 밤도깨비’라 불렸다. 사주를 보면 늘 빠지지 않는 대목이 역마살. 팔자대로 살아보고자 사직서를 내고 사진작가 남편과 함께 여행하며 책 쓰고 강연하며 살고 있다. <사랑한다면 스페인> <사랑한다면 이탈리아> <사랑한다면 파리> <산티아고 가는 길> <국내여행 버킷리스트 101> 등 20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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