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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장수와 행복한 노년

박재용

2016-11-03

장수와 행복한 노년


인간과 덩치가 비슷한 포유류는 대략 2~5살에 새끼를 낳는다. 영장류의 경우는 조금 더 길어서 약 5~7살 정도에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포유류들은 대략 10살 정도가 평균수명이 되고, 영장류는 20살 정도가 평균수명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돌고래

▲ © Tom Dennis Radetzki

 

인간은 열 대여섯이 되어야 후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손이 다시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키우면 인간의 나이는 대략 30~40살 정도가 된다. 과거에는 아이를 한 명만 낳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니 그때부터 10년 정도 더 자식 양육을 위해 살아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생태계나 진화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 있어도 그만, 죽어버려도 그만인 시기다. 그래서 수렵채집기의 인간들은 수백만 년 동안 40세에서 50세를 전후해서 대부분 죽었다. 원래 이 정도가 인간이 생태계 안에서 부여받은 수명이다. 물론 영아 사망률이 꽤 높았고 질병과 여타 사고로 일찍 죽는 경우도 많으니 평균수명은 그보다 훨씬 낮다.

그럼 인간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동물들이 별다른 사고가 없어도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죽는 것, 즉 수명을 가지는 것은 왜일까?

헌팅턴 무도병이라는 치명적 질병을 유발시키는 유전자가 있다. 그런데 이 병은 40세를 전후해서야 그 증상이 나타나고 그 전에는 전혀 징후가 없다. 그래서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많은 또 다른 유전자는 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페스트균에 대한 저항성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 유전자가 혈액 내 철분을 과다하게 분포시켜 치명적인 병을 유발하게 한다. 이 또한 현재 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다. 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자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쁜꼬마선충이란 1mm 정도 크기의 동물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우연히 돌연변이를 통해 수명을 거의 2배 연장하고 노화를 늦추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이 돌연변이 선충과 일반 선충을 서로 섞어서 살게 했더니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돌연변이 선충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유는 이 돌연변이가 번식을 시작하는 시기가 약간 늦춰졌기 때문이다. 이 약간의 지체가 개체 간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해서 자연스레 도태시켜버린 것이다.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젊은 시절 번식을 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유전자는 나이가 든 뒤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더라도 유전이 되고, 오히려 전체 집단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노화를 지연시키고 수명을 연장하는 유전자라도 번식에 나쁜 영향을 주면 집단 전체에서 사라진다. 진화는 번식을 많이 하고 일찍 죽는 것을 선호하지, 번식도 하지 않고 오래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태계의 한계를 벗어난 후, 즉 농경과 유목을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꾸준히 평균수명을 늘려왔고, 특히 산업혁명 이후 영아사망률의 감소와 위생적인 조건, 백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비약적으로 수명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해방 직후와 지금을 비교하면 약 35살에서 40살가량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즉 우리가 수명을 늘린 것은 생태계와 무관하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풍족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화는 막을 수가 없었다. 수명 연장은 결국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신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인간 수명의 한계 자체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약 110~120세 정도가 한계다. 즉 실제로 오래 사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한계 수명이 늘어나진 않은 것이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110세 이상이 되면 대부분 죽는다. 더구나 80세 정도까지의 삶은 관리를 통해서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100세 정도는 유전적 요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노화와 수명에 대한 연구는 또 하나의 시사점을 보여준다. 평균수명은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 소득이 1만 달러에 달할 때까지는 소득의 증가와 함께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지만 1만 달러를 넘어서면 그때부터 평균수명의 증가세는 완연히 둔화한다. 그리고 그 나라 안에서 소득의 불균형은 평균 연령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통계를 내봤을 때 소득 격차가 작은 주일수록 기대 수명이 높은 경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 중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적은 나라가 일본인데, 기대 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북유럽의 경우도 소득 격차가 적은 편인데 기대 수명은 역시 높다. 반면 포르투갈, 미국, 싱가포르는 소득 격차가 가장 크고 기대 수명 역시 가장 낮다. 또한 복지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기대 수명이 길다.

즉 이제까지 평균수명을 늘리는 것은 소득수준의 증가가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부터 평균수명을 늘리는 것은 많은 부분 사회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늙어서까지 생계를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오래 사는 게 뭐 그리 즐거운 일이겠는가?

우리 인간이 평균수명을 늘리는 동안 그걸 지켜보는 다른 동물들이 묻는 것 같다. “너희 인간이 이처럼 오랜 수명을 누리고, 많은 자손을 낳으며, 거기다 건강한 삶까지 누릴 자격이 있는가? 너희조차 서로 차별하면서.”’ 인간인 우리는 이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점과 선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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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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