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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모든 여행은 자기 심리로 통한다

장근영

2016-08-24

모든 여행은 자기 심리로 통한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교수는 여행에 대한 현대인의 로망은 허상이라고 말한다. 휴가를 내고 비싼 돈을 들여서 내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면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현대 소비문명이 심어준 신화라는 거다. 그의 말을 따르면, 다양한 경험을 해야 개인의 잠재력이 발현될 수 있다는 믿음도, 평소 친숙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토와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해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자아가 성장한다는 믿음도 현대의 발명이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여행하던 사람들은 모두 실질적인 목적이 있었다. 권력자들은 정복이나 외교를 위해서, 상인들은 거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했다. 오로지 이국적인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은 운송수단이 발달한 이후에나 가능해진 현상이다.

우리는 완전히 모르는 곳으로 여행가지 않는다. 영화나 소설, TV나 여행책자와 같은 매체들을 통해서, 혹은 이미 그곳에 다녀온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 즉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탐험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막연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여행지, 혹은 여행 그 자체에 대해 가지는 기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이 여행지 자체의 속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현재 삶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통해서 깨닫는 것만큼이나, 내가 어떤 여행을 꿈꾸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지금의 여행자들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꿈꾸는 여행지를 말해보라. 당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겠다.” 결국 우리가 여행지에 기대하는 것은 지금 현재 내 삶의 거울상과 비슷하다. 지금 내게 결핍된 것, 혹은 가져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소망이 여행의 기대에 투영되는 셈이다. 단지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격도 드러난다. 외향적인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날 더 많은 낯선 사람들을 기대할 것이고, 내향적인 사람은 그동안 시달리던 온갖 사회적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기대할 것이다.
인도 여행에 대한 로망을 예로 들어보자.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얻어지는 여유와 현명함 등을 떠올린다. 이런 인도의 이미지에 끌리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유함과는 무관하게 현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갖 일에 끌려다니는, 바쁘고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도 여행자들이 접하는 것은 소와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차선과 상관없이 뒤엉킨 도로와 빈민들이 넘쳐나는 길거리, 최소한의 인프라만 갖추어진 주거지,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인적 서비스일지라도 상관없다. 인도에서는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약속을 지키길 요구하지 않는다. 인도의 사회 시스템은 엉망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의무감에서 벗어나서 나를 돌이켜볼 여유가 생긴다. 물론 인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한국에서 훨씬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참견일 뿐이다.


간디 일러스트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얻어지는 여유와 현명함 등을 떠올린다.
프랑스 파리에 대한 로망도 그렇다. 파리는 사랑과 낭만,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문화와 예술이 죽어버린 콘크리트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랑과 낭만이 거세된 삶에 치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파리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정작 그곳에 있는 건 고집 세고 불친절한 점원들과 소매치기들, 그리고 오물로 범벅인 길거리일지라도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있다. 어쨌거나 파리는 유명한 도시이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양하며, 운이 좋다면 그중에서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서울의 명동에서 같은 일이 벌어질 기회가 더 높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물론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서 ‘파리 쇼크 신드롬’이라는 증상을 겪는 불행한 경우도 있다. 파리에 대한 환상적인 기대만을 가지고 있던 일본 여행자들이 종종 그와 같은 충격에 빠진다는데, 어쨌거나 여행에 대한 기대는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증명하는 예일 뿐이다.


낡은 에펠탑 사진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서 ‘파리 쇼크 신드롬’이라는 증상을 겪는 불행한 경우도 있다. 파리에 대한 환상적인 기대만을 가지고 있던 일본 여행자들이 종종 그와 같은 충격에 빠진다. 어쨌거나, 우리는 여행을 간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곧 스쿠버 체험을 위해 태국으로 떠난다. 지금까지 쓴 것을 바탕으로 내가 왜 굳이 태국까지 가서 위험하게 바닷속을 구경하려는지 분석해봤지만, 별로 뾰족한 대답은 얻지 못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맞는지도 모른다. 비록 여행에 대한 욕구가 대중문화가 심어준 환상에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걸 실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를 의미한다. 태어나면서 저절로 주어진 삶이 아닌 내가 자유로이 선택한 지역에서의 삶을 잠시라도 누려보는 건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Stress Syndrome Psychology Emotion Mentality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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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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