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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옷] 세상의 모든 ‘푸른’ 옷

홍석우

2016-04-28

세상의 모든 ‘푸른’ 옷


블루 blue, 즉 파랑을 뜻하는 단어만큼 다양한 심상을 담은 색이 있을까? 그저 하나의 단어였던 색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해왔다. 점점 더 문화적 형상으로 색을 바라보게 된 직업적 관찰도 한몫했을 것이다.

 

제임스 딘의 모습

▲ 제임스 딘의 모습 ⓒWarner Bros.

 

파란색 하면 떠오르는 불멸의 청춘은 제임스 딘(James Dean)이다. 그는 1954년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5』,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 『자이언트(Giant), 1956』까지 총 세 작품에 출연하고 자신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몰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그려낸 우울하면서도 섬세한 청춘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얀 티셔츠와 리젠트 헤어, 가죽점퍼와 청바지 차림은 시대를 넘어 '반항하는 청춘'의 상징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푸른 청바지는 ‘패션’이 상징하는 파란색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혹자는 제임스 딘을 ‘청바지를 패션으로 끌어 올린 인물’로 칭하는데,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내가 처음 파란색을 패션으로 자각한 것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TV 광고였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갈색으로 그을린 사내가 저 멀리서 걸어온다. 카우보이 모자가 어울리고 말보로 레드를 필 듯한 백인 청년이다. 남자는 적어도 몇 년은 빨지 않은 듯한 거칠고 낡은 청바지를 입었다. “풀리지 않는 신비, 리바이스”라는 성우 목소리와 함께 그는 황량한 사막 국도 한가운데서 어딘가로 향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청바지가 원래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출발한 의복이라든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 붐 세대와 제임스 딘(James Dean)을 필두로 한 ‘반항’의 상징으로 존재했다는 걸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신비한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무의식 중에 청바지의 푸른 이미지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청춘’과 연결되었다.


캘빈 클라인 진을 입은 케이트 모스

▲ 캘빈 클라인 진을 입은 케이트 모스 ⓒCalvin Klein

 

진하고 거친 파란색이 뇌리에 박힌 이후, 다시 패션과 연결된 지점은 1990년대의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모델로 선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광고였다. 청바지가 반전(反戰) 문화와 히피 시대를 주름 잡긴 했지만, 고급 기성복 문화에 편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벽을 허문 것이 바로 미국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었다.

캘빈 클라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미국 패션계의 한 축을 차지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고급 기성복부터 속옷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 패션의 ‘정신’을 만든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졌다. ‘Calvin Klein’ 로고를 넣어 골반을 드러낸 남성용 브리프는 흔한 속옷을 관능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특히 캘빈 클라인 청바지는 리바이스 세대를 상징하는 젊음과는 정 반대 코드를 담았다.

영국 여성 사진가 코린 데이(Corinne Day)가 어린 소녀 케이트 모스(Kate Moss)를 모델로 찍은 캘빈 클라인 청바지(Calvin Klein Jeans) 광고는 일약 1990년대를 상징하는 파란(波瀾)이었다. 신디 크로퍼드(Cindy Crawford)와 클라우디아 시퍼(Claudia Schiffer)가 대표하는 건강하고 풍염한 모델들과 달리, 흑백 사진 청바지 광고 속 케이트 모스는 퀭한 눈빛과 비쩍 마른 몸매,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헤로인 시크(heroin chic)’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기존 파란색이 상징하던 젊음에 퇴폐미를 주입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캘빈 클라인 청바지는 1970년대에 이미 세상에 나왔지만,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캠페인이 워낙 강렬한 탓에 ‘캘빈 클라인’ 하면 1990년대가 떠오르게 되었다(재밌는 사실은, 현재 배우로 성공한 마크 월버그가 당시 케이트 모스의 상대역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케이트 모스는 마약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데뷔 이후 지속한 광고에서 하차했고, 코린 데이 역시 2010년 뇌종양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이후 부활한 케이트 모스는 20세기부터 21세기를 잇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캘빈 클라인이 창조한 퇴폐적인 파란색은 2000년대 프리미엄 청바지(premium jeans)의 부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영국 왕세자비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의 로열 블루 의상

▲ 영국 왕세자비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의 로열 블루 의상 ⓒGettyimages

 

이후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패션이 ‘새로운 검정(new black)’으로 외치는 색을 수없이 봤다. 흰색과 주황색부터 남색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색이 새로운 유행의 정점에 섰노라고 수많은 매체와 패션 디자이너가 외쳤다. 파란색은 그 속에서 조금씩 빛을 발했지만, 제임스 딘 시절이나 케이트 모스 시절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워낙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젊음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던 파란색이 다시 돌아온 것은 역설적으로도 앞선 시대와 180도 다른 ‘로열 블루(royal blue)’였다. 현재 영국 왕세자비이자 애칭 ‘케이트’로 더 유명한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Catherine Elizabeth Middleton)이 바로 파란색을 다시 고고한 영역에 올린 주인공이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고(故)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왕세자의 장남이자,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자 윌리엄 왕세손과 결혼하여 현재 영국 국민의 사랑(과 질투 약간)을 한몸에 받은 캐서린 미들턴은 유독 공식 행사에서 푸른 옷을 즐겨 입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어느 영국 잡지의 분석 결과, 공식 행사에 참여한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비 옷차림의 21%가 로열 블루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영국 왕실에 오랜만에 나타난 평민 출신 왕세자비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우리가 느끼는 착시 현상일 뿐, 로열 블루는 예로부터 영국과 프랑스 왕실을 나타내는 상징색으로 쓰였다. 하늘색의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을 함께 지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이 색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국 여왕을 위한 드레스를 만드는 대회에 참여한 방앗간 주인들에 의해서 발명되었고, 드레스를 만드는 중 이 색을 발명하고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남색의 침착함과 보라색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닌 로열 블루는 ‘왕실의 색’이라는 점을 넘어 왕세자비 개인에게도 뜻깊은 색이다. 윌리엄 왕세손이 약혼과 결혼을 발표하며 캐서린 미들턴에게 선물한 반지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에게 선물한 것과 같았는데, 이는 푸른 빛이 영롱한 사파이어 반지였다. 자애와 침착함, 우아함과 겸손을 상징한다는 데서 사파이어의 푸른 색과 로열 블루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리바이스 진의 광고

▲ 리바이스 진의 광고 ⓒLevi’s

 

이처럼 파란색은 청춘과 반항, 젊음과 퇴폐, 우아함과 고고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담은 색이다. 스펙트럼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이미지를 투영하고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란색을 능가할 단일 색상은 별로 없다. 돌고 도는 패션 이미지만큼, 청초한 푸른 새벽부터 끓어오르는 젊음의 순간까지 다양한 푸름이 우리 주변에 있다. 그 파란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한, 위의 ‘예시’들을 넘어 온전히 당신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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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홍석우
홍석우

『어반라이크(Urbänlike)』 매거진의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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