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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 필사] 호미예찬

장석주

2016-01-07

한 페이지 필사
‘꼭꼭’ 마음으로 읽고 ‘꾹꾹’ 손으로 써보는 시간


호미예찬


호미는 남성용 농기구는 아니다. 주로 여자들이 김 맬 때 쓰는 도구이지만 만든 것은 대장장이니까 남자들의 작품일 터이나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감탄을 새롭게 하곤 한다. 호미질은 김을 맬 때 기능적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흙을 느끼게 해준다. 마당이 넓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버려진 굳은 땅을 씨를 뿌릴 수 있도록 개간도 하고, 거짓말처럼 빨리 자라는 잡초들과 매일매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고 싸움질도 하느라 땅 집 생활 6, 7년에 어찌나 호미를 혹사시켰던지 작년에 호미자루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대신 모종삽, 가위 등을 사용해보았지만 호미의 기능에는 댈 것도 아니었다. 다시 어렵게 구한 호미가 스테인리스로 된 호미였다. 기능은 똑같은데도 왠지 녹슬지 않는 쇠빛이 생경해서 정이 안 갔다. 그러다가 예전 호미와 같은 무쇠 호미를 구하게 되었고, 젊은 친구로부터 날이 날카롭고 얇은 잔디 호미까지 선물로 받아 지금은 부러진 호미까지 합해서 도합 네 개의 호미를 가지고 있다. 컴퓨터로 글 쓰기 전에 좋은 만년필을 몇 개 가지고 있을 때처럼이나 대견하다. 박완서, 《호미》 , 열림원, 2007, 48~49쪽.


호미는 단순하고 소박한 노동의 도구다. 손아귀에 딱 맞게 들어오는 호미! 호미의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에 감탄하고, 이것의 도구적 완벽성에 거듭 감탄한다. 호미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몰랐던 일면들이 드러나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놀라움은 도구의 발견되지 않았던 놀라운 일면, 즉 야생적인 근본의 발견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진다. 호미 예찬은 도구 예찬이자 노동 예찬이다. 노동 예찬은 이것이 다름아닌 우리 삶을 새롭게 세우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장석주/시인

 

호미예찬 필사원고1

 

호미예찬 필사원고2

 

호미예찬 필사원고3

 

호미예찬 필사원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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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장석주

(기획자문위원)시인. 인문학 저술가. 『월간 문학』 신인상에 당선해 문단에 나오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여 시와 평론을 겸업한다. 스물 다섯에 편집자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13년 간 직접 출판사를 경영한 바 있다. 1993년 출판사를 접은 뒤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시집 『몽해항로』, 『오랫동안』, 『일요일과 나쁜 날씨』 를 포함해 『마흔의 서재』, 『새벽예찬』, 『일상의 인문학』,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등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최근 필사에 관한 저서인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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