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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사람들은 모여서 삽니다

최낙언

2016-10-20

사람들은 모여서 삽니다


1990년대 로빈 던바의 연구에 따르면, 신피질의 비율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인간의 사회적 능력, 즉 집단의 크기이며, 인간의 경우 150명 정도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6000년부터 기원후 1700년대까지 마을의 평균 크기를 추산한 결과 구성원이 15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던바의 수’라고 하고, SNS에서 수천 명의 친구를 맺은 사람도 보통 150명 정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이처럼 많은 사람과 모여 살기 위해 뇌를 키운 것이죠. 아니, 살아남기 위해 많이 모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었지요. 그래서 인류는 매머드 같은 대형 동물을 사냥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매머드는 코끼리보다 훨씬 거대하여 남녀 가리지 않고 한 부족 전체가 나서도 어렵고 힘든 사냥이었죠. 그리고 사냥에 성공하면 한 달 정도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축제의 나날을 보냈겠지요. 매머드 사냥의 과정에서 긴장, 초조, 협력 등 집단이 동시에 온통 흥분 도가니에 빠졌을 것이고, 힘겹게 사냥에 성공하고 나면 여러 날 짜릿한 승리의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대부분 시골에 살았고, 시골 마을 중심에는 커다란 공터와 큰 나무 그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놀이와 잔치가 벌어지고는 했습니다. 그곳이 작은 광장이었던 셈이지요. 우리나라는 마을 단위의 광장이나 시골 장이 열리는 장터 수준의 광장이 주류를 이루지만, 유럽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깊은 광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의 경쟁과 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유럽을 대표하는 광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서 정치, 철학, 사상을 공유하고 논쟁했습니다. 기능이 다양해져 여러 문화행사 및 종교의례가 이뤄지는가 하면, 지배 권력을 과시하는 곳이거나 피지배자들이 모여 저항이 시작되는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전 아이들은 TV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었으니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함께 모여서 같이 노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혼자 방에 있고, 혼밥, 혼술이 더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페는 북적이고 굳이 영화관을 찾고 대규모 공연장을 찾는 것을 보면, 여러 사람과 같이하고 싶은 본능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광장이 발달한 유럽도 산업혁명 시기부터 그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교통수단이 발전하자 사람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그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장소로 변한 것이죠.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역전 광장에 있는 시계탑은 중요한 만남의 약속 장소였습니다. 그런 광장의 필요성이 요즘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는 청계천광장을 비롯해 서울광장, 광화문광장 등이 새롭게 꾸며졌고, 이런 광장은 단순히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빈 공간이 아니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장소, 즉 문화 광장의 역할이 강화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도시의 큰 매력일 것입니다.

 

계단 위 오가는 많은 사람들 흑백이미지

 

사람들이 도시는 집값도 비싸고, 공해와 교통체증, 스트레스도 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시를 탈출하지만 실패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던 여러 사람과 같이 누릴 수 있는 문화 환경, 그리고 여러 사람과 같이 있다는 안도감이 생각보다 중요한 탓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꾸역꾸역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모여듭니다. 그러면서도 혼자만의 독립되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지요. 하지만 인간은 독립되고 자유로울 때보다 연결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때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음식도 자신의 생존이라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먹을 때보다 여럿이 더불어 나눌 때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로컬 푸드, 슬로 푸드, 유기농의 가치를 말할 때도 그게 자신의 더 건강에 좋다는 이기적인 목적보다는 인류의 문화를 보존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형태라는 목적도 같이 가지면 더 행복하겠지요. 사실 로컬 푸드, 슬로 푸드, 유기농 식품이 영양분이 더 풍부하거나 건강에 좋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준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람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더불어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몸에 숨겨진 그 본성과 반대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가진 것에 비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과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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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낙언
최낙언

서울대학과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 세 곳을 거쳐 현재는 (주)편한식품정보에서 근무한다. 맛이나 식품에서 잘 풀리지 않는 질문을 자연과학 지식과 연결해서 답을 찾거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 불량 지식을 바로잡고, 음식과 과학 정보를 공유하는 Seehint.com을 운영 중이다. 『감각 착각 환각』(2014) 『맛이란 무엇인가』(2013) 『맛의 원리』(2015)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2016)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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