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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文紋 : 뭉뚱그려진 광장의 힘

백다흠

2016-10-25

뭉뚱그려진 광장의 힘


내 삶에서 광장을 경험했던 건 주로 정치적 경험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사춘기를 변두리 소도시에 보낸 나는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면 역 광장에 운집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선거) 광장을 만났다. 딱히 역 광장의 쓰임을 모르고 있다가 그 장소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이고 차례차례 누군가 국가와 민족에 대해 성토하는 선거 유세 공간으로 변모하는 게 신기했던 거로 기억된다.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는 서울광장을 만났는데, 그건 2002년 한일월드컵의 거리응원이었다. 나는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서울광장으로 흘러들었고 휩쓸렸다. 언론은 서울광장에 모인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에 흥분하며 대한민국의 저력을 설파했다. 더불어 나 또한 ‘알 수 없는 힘’에 도취해 그 시절을 통과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 직접 피부로 닿았던 광장의 힘을 알았던 계기가 된 것 같다. 그것은 매우 강렬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그 서울광장의 ‘알 수 없는 힘’이 나중에 가서 ‘민족 주체성’이라든가 ‘사회적 통합 인식’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 기억이 집단 기억으로, 또 그것이 사회문화적 기억으로 동일시하게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별개의 의미론이자 인문학적 해석이었지만, 나는 뭉뚱그려 광장의 ‘힘’을 서울광장으로 대체하곤 했다. 그 이후 서울광장은 역사적 정치적 노선의 장이라 할 만큼 대중들의 너른 방이 되었다. 수시로 모여들었고 머물렀으며 때가 되면 흩어졌다. 그리고 또 한 번 나는 앞서 말한 서울광장으로 집합된 광장의 어떤 힘을 느꼈는데, 그건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路祭)에서였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창비, 2011

 

김미월의 소설 「프라자 호텔」(『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창비, 2011)을 떠올렸던 건 이 짧은 단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스치듯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느 부부가 여름휴가를 호텔에서 보내기로 한다. 아내는 몇 해 전부터 도심 호텔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를 원했다. 남편은 아내의 그런 요구가 탐탁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휴가랍시고 멀리 휴양지로 떠나는 것보다 도심 호텔에 머물며 한없이 게을러지는 것이 그에게는 ‘덜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도장깨기 하듯 해마다 서울의 호텔들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해 여름휴가지는 프라자 호텔이었고 남편은 늘 그랬듯 체크인을 했다. 그들은 이 낯선 방에 적응하기 위해 집에서 가져온 집기와 화장품들을 널어놓았다. 부산한 아내와 달리 남편은 달리 할 일이 없었고 넓은 침대에 대 자로 뻗어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다 너무 고요한 낌새를 느껴 잠에서 깼는데, 아내가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잠에 덜 깬 남편이 아내에게 묻는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노무현.”
“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내는 덕수궁 대한문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무현 생각하고 있었어, 저기 분향소가 있었잖아.”
―김미월, 「프라자 호텔」 229쪽

 

서울광장을 내려다보며 아내는 동시에 노무현을 보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아내가 본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의 죽음으로 모인 그 수많은 인파, 그 조문행렬 속 흰 국화를 들고 있는 자신을 상기한 것이었다. 아내는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다섯 시간쯤이라고 했나. 슬픔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쯤 꽃을 영정사진에 내려놓았다. 아내는 서울광장에서 노무현을, 노무현의 죽음 속에서 자신을, 슬픔의 고단함을 연이어 떠올렸다. 그래서 아내는 프라자 호텔로 오고 싶어 한 것일까. 그때의 그 일을 떠올리고 싶어서? 소설은 프라자 호텔에서 서울광장, 그리고 노무현에서 좀 다른 지점으로 독자를 이동시킨다. 아내의 서울광장에서 남편의 서울광장으로 말이다.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 온 남편은 아내 윤서를 만났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서울광장, 명동, 을지로 일대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에서 그 둘의 이야기는 발전한다. 시위 대열에서 밀리고 밀려 어렵게 빠져나온 그 둘은 서울광장 주변을 걷는다. 유독 윤서는 이 서울광장, 그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라자 호텔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윤서는 문득, 프라자 호텔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에 왜 가고 싶냐고 묻자 윤서는 좀 엉뚱하게도 20년 만에 고국 땅에 온 입양아가 서울 도심을 아래에 두고 그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는 심정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 입양아 눈에 비친 낯선 서울의 풍경을 오래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남자는 그런 아내의 말에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프라자 호텔을 몰래 예약했고 그것이 곧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윤서는 크리스마스에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남편은 홀로 프라자 호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는 호텔 방에서 아내가 하고 싶다던 서울광장을 비롯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차고 맑고 아름다운 서울 야경을. 하지만 입양아의 그 감정을, 아내가 전해주었던 ‘알 수 없는 힘’을 느낄 수는 없었다. 다만 초라하고 비어 있는 자신만은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오래전 아내에게 바람을 맞았고 또 프라자 호텔에서의 기억이 남몰래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현재로 돌아와 라이터와 아이스커피를 사러 호텔 밖에 나갔던 남편은 서울광장 주변을 걷다가 그 많은 이야기들, 사람들, 윤서였던 아내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밤, 홀로 프라자 호텔에 있었던 날 또한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는 믿을까. 그때의 일을 기억이나 할까. 내가 바로 그때의 나라는 걸, 우리가 바로 그때의 우리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호텔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어느 노인이 들고 있는 현수막을 보게 된다. “용산 참사 해결하라!”

 

아내가 바라보고 있는 서울광장과 남편이 내재해온 서울광장은 그 결이 좀 다르다. 둘은 한 공간에서의 기억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인식은 전혀 다른 지점을 만들어낸다. 아내가 일차적으로 서울광장의 역사성을 체험하려 했다면, 남편은 서울광장을 좀 더 면밀하게 내면화된 것으로 반추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둘이 각기 스스로 서울광장을 매개로 존재증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매개점이 서울광장이라는 것. 그래서 남편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서울광장이 누군가에게는 존재증명의 구실을 마련해주고 그걸 증명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이 짧은 소설에서 남편과 아내의 서사가 개인적 기록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서울광장(프라자 호텔)의 역사성과 함께 덧씌워지는 걸 경험하게 된다. 개인 기억이 집단 기억으로, 또 그것이 사회문화적 기억으로 묶이는 어느 순간 같은 걸 말이다. 서울광장의 역사성과 개인서사의 역사성이 맞대어지면서 미묘한 방식으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무렇지 않은 서울광장이 의미가 더해진 공간으로 변모한다. 또 새롭게 지속되는 공간, 여전히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재성을 담보해온 유일한 공간으로서 의미를 공고히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당신에게 서울광장이란. 문학은 이런 면에서 힘을 발휘한다. 익숙한 것이 어느 날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것. 인식의 이동이랄까.

 

광장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 기록하지 못한다. 저장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기억한다. 그때의 서울광장을 기억해내고 어느 날의 그곳에서의 ‘알 수 없는 힘’을 떠올리는 것. 장소는 기억을 환기하는, 추억을 꺼내 복원하는 신기한 기술이 스며 있다. 광장은 대부분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우리에게 불러온다. 우리는 신기하게 불려온 그 과거 역사에서 현재를, 현실을 본다. 광장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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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백다흠
백다흠

격월간 문학잡지『Axt』 편집장. 평상시에는 잡지 일을 한다. 그 일이 하기 싫을 때에는 종종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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