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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공유할 것과 각자 세계에 남겨둘 것

장근영

2016-10-20

공유할 것과 각자 세계에 남겨둘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혼자 진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우월한 점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여럿이 모였을 때 발휘되는 능력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 자기 속마음을 숨기는 능력, 낯선 자와도 목적이 일치할 때 협력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능력, 협력의 결과를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신뢰를 쌓고 협력을 지속하는 능력, 다른 사람, 동물, 심지어는 물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기초로 더 깊고 오래가는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근력은 약하고, 머리가 커서 쉽게 치명상을 입고, 땀이 많아 물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멸종시켜가며 지표면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인간이 정말로 뛰어난 점은 집단을 구성하되, 개미나 벌들보다 훨씬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개미나 벌의 집단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일사불란하게 목적을 달성하지만, 그것이 본능의 산물이기에 언제나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비슷한 집을 짓고 비슷한 것을 먹으며 산다. 하지만 인간 공동체는 제멋대로인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어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훨씬 유동적이다. 수렵채집만 하는 공동체가 있는 반면, 성을 쌓고 농경생활을 하는 공동체도 있다.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킨 것도 그 제멋대로인 인간들에 의해 발생한 변수들 덕분이다. 문제는 인간들은 이렇게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이해관계조차 달라서 갈등이나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이 제멋대로인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터놓고 공유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광장이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개미떼 일러스트

 

광장이 모든 인간 공동체의 중심에 자리한 건 그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텅 빈 공간이지만, 그곳은 인간 사회의 심장이자 허파라고 할 수 있다. 광장에서는 상거래, 운동경기, 예술공연, 각종 제의, 정치적 토론, 일상적인 파티, 심지어 추방자를 결정하는 법정까지 공동체의 모든 활동이 열렸다. 온몸의 피가 심장과 허파에 모여서 산소를 공급받고 다시 온몸으로 되돌아가듯,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한 후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면서 공동체 의식을 보충받았다. 그러니까 광장 없이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었다.

 

최근 광장의 의미는 점점 잊혀가는 것 같다. 사람들이 광장에 한데 모일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광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종교행사를 위해 모이는 사람들에게는 그 종교 시설이 바로 광장이다. 그곳은 이전의 광장이 수행하던 거의 모든 기능을―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거래를 하고, 공동체의 의미도 공유하고, 사적인 관계들도 형성하고, 스포츠행사나 예술행사도 개최한다―수행한다. 다른 광장은 바로 사이버 공간에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초창기를 대표하던 한 포털사이트의 게시판 이름은 ‘아고라’였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중앙을 차지했던 광장을 일컫는 단어 말이다. 이후 아고라는 수많은 작은 광장들로 쪼개졌다.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게시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SNS 시대가 왔다. SNS는 광장의 본질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원래 광장은 공공의 영역이었다. 어떤 공동체의 광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거기서 한 말이나 행동은 모두 공공연한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효력과 책임이 부여되었다. 광장 바깥에는 나름의 사적인 공간들이 있었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던 봉건사회에서조차 그랬으며,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현대에서도 여전히 이 원칙은 유효했다. 즉 광장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선이 분명하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SNS는 그 경계선을 허물어버렸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혹은 인스타그램의 개인 페이지는 일단 사적인 공간이다. 그곳에 올린 글이나 사진은 내 사적인 생각이나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그곳은 순식간에 광장이 되어버린다. 그들 보라고 쓴 것이 아님에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어 한마디씩 한다. 심지어 거기서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기도 한다.

 

페이스북 좋아요 모형들

 

SNS와 함께 공공의 광장과 사적인 안방을 가르는 경계선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 즉 ‘관심’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어디든 광장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안방이 광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광장의 주인이 된다는 건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권한과 이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게 광장 한복판으로 끌려 나와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진정 공공의 영역이던 것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광장의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도전은 광장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은 단지 공동체의 심장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모든 영역이 융합되고 다원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광장에서 공유할 것과 각자의 세계에 남겨둘 것을 구분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겠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갈수록 더 중요한 과제가 되어갈 것이다.

 

Stress Syndrome Psychology Emotion Mentality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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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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