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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소셜클럽 : 지구인과 우주인

2017-02-22

지구인과 우주인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자리 잡을 땅이 어딘지 찾아야만 하지.”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스텔라>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다. 지구는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인류는 속수무책이다. 지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우주를 잊었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 영화 <인터스텔라>

 

인류 역사에서 본격적인 우주 개척 시대는 1961년 소비에트가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배출하면서 시작됐다. 냉전시대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미국과 소련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지구를 반씩 갈라가진 다음엔 우주로 전선을 확대했다. 처음엔 소련이 앞섰다. J.F.케네디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1961년 케네디는 말했다.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 우주 개척 시대의 개막을 알린 선언이었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본격화했다. 케네디는 1963년에 암살당했지만 미국은 케네디의 약속을 지켰다. 실제로 미국은 1969년 7월 20일 오후 10시56분 달을 정복했다. 무려 5억 명이 넘는 인류는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고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이 달표면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걸 지켜봤다. 암스트롱은 말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큰 도약이다.”

 

1969년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우주 개척 시대의 클라이막스였다. 1970년대는 본격적인 우주 다항해 시대가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1970년대 인류는 더 이상 우주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땅만 내려다보면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은 수렁으로 변해버린 베트남 전쟁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970년대 우주 개척 시대를 이끌었던 건 정부나 나사가 아니었다. 할리우드였다. 1960년대 아폴로 계획과 달 착륙에서 영감을 얻은 수많은 공상 과학 영화들이 제작됐고 흥행했다. 그 원조가 <스타트렉>이다. <스타트렉>은 1966년에 처음 TV시리즈로 제작됐다. USS엔터프라이즈라고 하는 우주항공모함의 승무원들이 장기 우주 탐사 항해를 한다는 게 줄거리다. 1960년대 10대 시절을 <스타트렉>와 함께 보낸 미국의 청년층은 1970년대 20대가 되면서 미국의 대중문화를 이끌게 된다. 그렇게 <스타트렉>을 보면서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던 대표적인 세대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였다. 조지 루카스는 1977년 <스타트렉>에 필적하는 SF물을 만들어냈다. <스타워즈>였다. <스타트렉>이 탐험 대상으로서의 우주를 다뤘다면 <스타워즈>는 우주를 동화 속 공간처럼 묘사한 스페이스 오페라였다. <스타워즈>의 우주는 공주와 기사가 광선검으로 결투하는 중세 시대와 닮아있다. 스필버그의 접근법은 절친 사이였던 조지 루카스와는 또 달랐다. 스필버그는 1977년 <미지와의 조우>를 연출했다.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오는 순간을 상상한 영화였다.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기 전에 우주가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상상은 당시 대중들에게 널리 퍼진 개념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UFO를 봤다는 신고가 접수되던 때였다. 스필버그는 그런 대중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지와의 조우>를 만들었다. 1960년대 우주가 인류가 지닌 과학기술의 경연장이었다면 1970년대 우주는 인류가 가진 상상력의 경연장이었다.

 

1980년대는 칼 세이건의 시대였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우주인이라는걸 인식하게 해준 과학자다.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은 바로 여기, 지구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지닌 우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줬다. 칼 세이건의 시대만큼 인류가 우주를 격렬하게 상상했던 시절도 없었다. 현실에선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했고 영화에선 제다이가 은하제국과 우주해방전쟁을 벌였지만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우주가 단순히 천재 물리학자와 우주공학자들만의 영토만이 아니며 동시에 <스타워즈>처럼 중세의 로맨틱한 공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칼 세이건은 우주가 우리가 기원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우주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주였다. 우주에 관한 우리의 시공간 개념을 바꿔놓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주인이었다.

 

칼 세이건

▲ 칼 세이건

 

칼 세이건이라는 대중과학자가 등장하면서 1980년대에도 우주 시대는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미사일방어계획의 이름을 스타워즈 계획이라고 이름 붙였다.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은 4대강이나 자원외교만큼이나 구멍투성이였지만 스타워즈 계획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마자 의회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 시절엔 무엇이든 우주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었다.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핵탄두를 실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요격한다는 계획은 30여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이 사드 배치에 혈안이 돼 있는 이유다. 다만 스타워즈 계획은 미소간 방위비 경쟁을 가열시켰다. 결과적으론 소련 경제를 궤멸시켰고 냉전 체제를 종식시켰다. 우주 계획이 사실 지구 계획이었단 말이다. 우주를 올려다보는 척 했지만 사실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986년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는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에 치명타를 입혔다.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한 최악의 우주 참사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군사적 목적의 스타워즈 계획은 추진했지만 과학기술 목적의 우주 탐사 계획에는 소극적으로 변해버렸다. 인류의 우주 개발 계획은 1940년대 미국과 독일이 군사적 목적으로 로켓 추진체를 경쟁적으로 개발하던 시대로 퇴보하고 말았다. 군사적 목적의 우주 개발 계획만이 유일하게 실용적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단 말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주는 점점 더 인류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됐다. 달 탐사는 더 이상 새로운 구경거리가 못됐다.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올드린은 말했다. “장엄한 폐허로다.” 달은 토끼가 방아 찧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학탐사의 가치가 높은 곳도 아니었다. 그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 행성일 뿐이었다. 소련의 붕괴로 우주는 군사적 효용성도 상실됐다. 소련을 넉다운 시키려고 미국 역시 만만찮은 군비를 지출했고 그로키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그때부터 미국도 우주가 아니라 땅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198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6 : 제다이의 귀환> 재개봉을 끝으로 완결됐다. 1990년대는 우주에 관한 상상력조차 고갈된 시대였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문제는 우주가 아니라 지구란 그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0년 넘게 우주를 망각하고 살았다. 2000년대 내내 인류의 주된 관심사는 테러였고 금융위기였지 단 한 번도 우주였던 적이 없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백팔번뇌에 매여 사느라 인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우리가 자리 잡을 땅이 어디인지 찾아 헤맬 뿐이었다.

 

<인터스텔라>의 가까운 미래는 사실 지금 인류의 모습이란 말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지구를 말려 죽이는 병충해와 가뭄은 수시로 발생하는 금융위기와 테러와 다를 게 없다. 인류는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정작 지구와 인류는 모두 말라 죽어갈 뿐이다. <인터스텔라>의 인류는 인류가 우주에 첫 발을 내딛던 사실조차 망각해버린 상태다. 그들은 우주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다. 2010년대 할리우드는 <인터스텔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새로운 우주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스타워즈>의 속편들이 쏟아지고 있다. <스타트렉>의 영화판도 만들어졌다. <그래비티> 같은 극사실주의 SF영화와 <에어리언>의 속편 같은 스페이스 호러물이 사이 좋게 개봉하고 있다. 1970년대 할리우드의 우주적 상상력이 나사의 과학기술에 의해 견인됐다면 2010년대는 정반대다. 할리우드가 오히려 우주개발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견인하는 측면이 있다. 이 중에서도 <마션>과 <컨택트>는 각각 아폴로11호의 달착륙이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비견될 만하다. <마션>은 마침내 인류의 우주 사정권을 달을 넘어 화성까지로 확대시킨 영화다. 화성은 상상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주 개발의 현실적인 목표가 됐다. 스페이스X를 이끌고 있는 일런 머스크 덕분이다. 이제 인류의 우주 개발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민간 단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는 곧잘 폭발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일런 머스크는 위대한 사업가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그렇지만 <마션>과 일런 머스크가 인류의 우주 개발사에서 일궈놓은 족적은 분명하다. 드니 뵐뇌브 감독의 <컨택트>는 2010년대의 <코스모스>다. <코스모스>가 우리가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이라는걸 깨닫게 해준 과학철학서였다면 <컨택트> 역시 우리의 시공간 개념이 지구에 국한된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우주를 읽어내지만 사실 우주를 보고 듣고 느끼고 읽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란 말이다. <컨택트>의 원작은 테트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온갖 SF소설상을 휩쓸었다. 테트 창과 드니 빌뇌브 감독은 기본적으론 미지와의 조우를 얘기한다. 정작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건 상대가 아니라 미지적 존재를 통해 본 자기 자신이다.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고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어느덧 외계인처럼 사고하기 시작한다. 언어 체계가 바뀌면 사고 체계가 바뀐다.

 

 영화 <컨택트>

▲ 영화 <컨택트>

 

외계인의 사고 체계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주를 바라보는 개념 자체가 바뀐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도 뒤바뀐다.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으로서 사고하게 된단 말이다. <컨택트>는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처럼 외계인을 만난 경이로움이나 외계인에 대한 낭만주의에 기반한 영화가 아니다.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영화다. 하늘과 우주와 별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서 바라볼 때 우주는 어떻게 보일지를 다룬다. 칼 세이건이 설파했듯이 우리는 우주의 작은 존재이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우리의 기준을 버릴 때 비로소 우주를 직시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이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오랫 동안 우주를 잊고 살았다. 덕분에 금융위기와 테러 같은 사건들이 창궐했고 결국 지구는 매말라가기 시작했다. 그저 지구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지구인들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면 2020년대는 인류 역사상 두 번째인 2차 우주 개척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스타트렉>에서 그렸던 우주 대항해 시대를 꿈꿔볼 수도 있다.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우주의 작은 존재라는걸 인식할 때야말로 우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컨택트>의 주인공처럼 우주인으로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지구의 풀리지 않는 온갖 난제들을 해결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는 웜홀과 블랙홀을 오가며 인터스텔라 탐험을 이어가면서도 딸 머피한테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쿠퍼는 말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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