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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그곳

장근영

2017-06-07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그곳


마을, 촌락보다는 크고 도시보다는 작은 규모로 수백 명에서 최대 수천 명 정도의 거주민들이 함께 정착해 살아가는 집단 거주지를 뜻하는 단어다. 마을은 대개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전형적으로는 농촌이나 어촌, 산촌 등에 자리잡고 있지만, 도시 근교에도 마을에 해당하는 거주지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남용되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종 특별 자치시는 분명 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도시의 아파트촌들은 모두 ‘마을’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나는 그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마을 중에서도 ‘범지기 마을’에서 산다.

도대체 왜 도시에서 마을을 찾는 걸까? 마을하면 떠오르는 친근한 공동체의 느낌 때문이리라. 마을은 도시보다 작고, 따라서 작은 마을 안 사람들의 관계는 도시의 삭막한 거주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따스하고 친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마을은 인류가 구성한 공동체 중에서 가족이나 촌락 다음으로 오래되었을 것이고 그만큼 원초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이 늘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듯 마을이 반드시 친근하고 따스하지만은 않다. 나와 가깝고 많은 역사를 공유하며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친구일수록 내게는 소중하면서도 위험한 존재가 된다. 마을도 그렇다. 마을은 특히 그 구성원들의 자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사람의 얼굴

 

조지 미드에 따르면, 한 인간의 자아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주관적 자아'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인 '객관적 자아'로 이루어진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에게는 자아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과 욕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스스로 납득하고 주변에도 설명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의미, 도덕적인 가치나 당위 같은 것들을 가져다 붙이지만, 그 근간에는 결국 자아에 대한 의식이 자리한다. 내가 ‘누구’이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생기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지 허버트 미드(G.H.Mead)에 따르면 이 자아는 크게 두 방향에서 만들어진다. 하나는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만들어내는 ‘주관적 자아’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면 이것만으로 나를 말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나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 즉 ‘객관적 자아’가 필요하다.

비교문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객관적인 자아는 마을과 같은 공동체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쌀농사’라는 노동집약적인 생존 방식에 의존하던 아시아 지역의 마을 사람들은 주관적 자아보다는 객관적 자아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주변 이웃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논에 물을 대거나 제때 모내기를 할 수도 없고, 그러면 결국 생존할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체면’도 그런 객관적 자아가 발전된 결과이다. 지금도 농촌 마을에서는 그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을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지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간의 관계는 서로 돕고 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탈자는 가혹하게 처벌하고 배척한다. 그래서 마을의 삶은 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에 마을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모인 도시는 다르다. 도시민들은 모두 각자의 마을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다. 도시에서는 좀 더 실용적인 의미의 자아를 만들어간다. 그 자아는 대개 자신의 능력이나 취향 같은 개인적 특성에 기반한 주관적 자아이다. 도시에서는 개개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각자 주어진 직분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래서 시골의 마을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지 않고 튀지 않게 공동체에 융화되기를 원했던 반면,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점점 개성이란 걸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교류한 덕분에 도시는 창의와 발전의 용광로가 될 수 있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는 도시 사람들이 도로 마을을 찾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의 뒷모습

 

던바는 아무리 발이 넓은 사람이라도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은 150명이라고 보았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R.Dunbar)에 따르면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숫자는 개개인의 사회적 기억용량의 한계에 달려있는데, 이 사회적 기억력의 규모는 사람에 따라 최소 100명에서 최대 230명, 평균적으로는 150명이라고 한다. 이를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부른다. 던바의 수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평생 동안 맺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인간관계의 숫자는 평균적으로 150명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가 수백 명인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 150명 정도의 용량이 적당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부모형제의 과거사까지 모두 꿰고 지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 관계 용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예전에는 1명에 관한 정보를 온전히 채우는 데 사용했던 기억의 슬롯에 여러 명을 욱여넣는다. 그 결과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는 넓고 얕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넓고 얕은 관계는 편리하고, 사생활을 지켜주며, 내 주관적 자아가 자라날 여지를 만들어주지만, 그 속엔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진화하며 맺어온 관계의 핵심이 빠져있다. 남과 나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깊숙이 알고 이해하는 관계가 주는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150명 내외의 사람들만 만나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작은 세상. 그 속에서 남과 나를 구분하지 않고 간섭하고 의존하며 살아가던 그 시절. 마을에 대한 꿈은 그곳을 향한 것이다.


 

Stress / Syndrome / Psychology / Emotion / Mentality / Identity

 

  •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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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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