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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정신의 변화와 K-컬처의 미래

- K컬처로 인문하기 -

이지영

2021-07-26

K컬처로 인문하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요,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전반을 통틀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K컬처 현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난 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만 했던 과거로부터 탈출한 점은 환영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K컬처 현상의 원천이 무엇이고 나아가 K컬처의 어떤 면이 세계의 주목을 끄는지, 앞으로 K컬처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K컬처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의 무궁한 가능성과 열린 미래를 그려보는 장을 마련해봤다.


2020년부터 아카데미를 비롯해 그래미 시상식 역시 인종 다양성을 표방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러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기생충〉과 〈미나리〉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었다 하더라도 오스카 수상은 여전히 다른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왜 아카데미상을 못 받았을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대표적인 K컬처 콘텐츠들(〈기생충〉, 〈미나리〉, 방탄소년단 등)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대표적인 K컬처 콘텐츠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와 영향력이 전 세계를 사로잡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음악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외에도 드라마, 웹툰, 애니메이션, 케이팝 등 한국의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감독과 배우가 상을 받거나, 빌보드 차트에서 방탄소년단이 이룬 성과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카데미와 빌보드는 미국 내에서의 성과만을 지표로 하지만, 그 영향력이 전 세계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대중문화의 핵심지인 미국에서 우리 대중문화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뿌듯함과 동시에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 대중문화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한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낸 데에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들이 작용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인종주의와 관련된 사회 변화를 들 수 있다. 미국 대중문화 산업계의 미국 중심주의, 특히 백인/영어 중심주의는 역사적으로 악명이 높다. 그들이 생각하는 권위와 보수성은 사실 인종주의 내지는 외국인 혐오와 관련이 있다. 현재 한국 대중 예술이 미국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국 문화의 쾌거’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시대 변화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즉 ‘시대정신’의 변화가 없었다면 그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해도 미국 땅에서 인정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기생충〉보다 작품성이 떨어져서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지 못했을까?


봉준호 감독은 골드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1인치의 장벽”을 언급한 바 있다. 보통의 한국인은 자막을 의미하는 ‘1인치의 장벽’에 대해 문제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겠지만, 미국인들 상당수는 자막이 필요한 외국 영화를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많은 유럽인이 2~3개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달리, 미국인의 70% 정도는 영어 이외의 언어를 전혀 모른다. 이는 실질적으로 영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라서 영어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어 중심주의는 백인 중심주의와 결합하여 인종·언어 간 위계를 형성하고, 그 위계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구한 역사 동안 흑인 아티스트들을 무시해 온 그래미 뮤직 어워드와, ‘백인만의 잔치’라는 오명을 가진 아카데미 시상식 등은 미국 내 인종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한 2020년에야 비로소 아카데미는 그 오명을 아주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사회적 압력에 굴복한 아카데미와 그래미



“BLACK LIVES MATTER” : 흑인들에 대한 미국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의 시민들이 지난 2013년부터 만들어 사용 중인 슬로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BLACK LIVES MATTER” : 흑인들에 대한 미국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의 시민들이 지난 2013년부터 만들어 사용 중인 슬로건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미국 내에서 백인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여전히 인종주의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들어 인종주의라는 폭력에 대한 비판 의식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2020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다.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번졌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그토록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사회 전반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부터 아카데미를 비롯해 그래미 시상식 역시 인종 다양성을 표방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이러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기생충〉과 〈미나리〉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오스카 수상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획득하고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방탄소년단 팬덤(fandom)인 아미(ARMY)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크게 기뻐했었다. 미국 아미들이야말로 온갖 인종주의적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고 투쟁하며 방탄소년단을 미국 내에서 슈퍼스타로 만들어낸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인들의 쾌거에 한국인 못지않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탁월성과 보편적 메시지, 바뀐 미디어 환경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환경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환경



아무리 이런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해도, 무엇보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이 탁월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외에도 방탄소년단과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들로부터 제기된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런 한국적인 메시지가 어떻게 외국인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의아해하거나 의심한다. 실제로 한국과 외국의 문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고통을 받는 양상은 사실 나라마다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가 국경이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무한 경쟁, 청년 실업, 빈부격차 등은 전 세계의 도시화된 지역 어디에서든 맞닥뜨리는 문제이다. 또한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나 방탄소년단의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전 세계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은 훌륭한 콘텐츠라도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전달될 수 없다.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고, 이런 연결망을 기반으로 좋은 콘텐츠가 공유되며, 유튜브나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들을 통해 국경에 상관없이 즐기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주류(레거시, legacy) 미디어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되었으며, 뉴미디어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진지 오래다. 뉴미디어의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유사한 것을 추천하지, 언어나 국적을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이렇듯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기반으로 한국의 훌륭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문화 콘텐츠 역시 다양성과 소수성 포용을



문화의 포용성과 다양성

문화의 포용성과 다양성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콘텐츠의 완성도는 당연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앞선 사례들에서 본 것처럼 이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 제기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화된 시대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외국인에게 이국적인 것으로 어필하기 위해 소위 ‘한국적인 것’을 콘텐츠화하려는 시도는 억지스럽다. 대신, 현실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수준 높은 작품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 아티스트들의 놀라운 성취가 자랑스럽더라도 지나친 민족주의적 시선 대신 ‘세계시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때이다. 그들의 성공은 이미 다양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런 현상에는 사회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문화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보다 더 다양성과 소수성을 포용하는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과 다양성이 포용되는 개방적인 문화는 운명 공동체의 측면이 있다. 그래서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도 문화 콘텐츠의 재료가 되는 우리 사회의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가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유지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면, 이는 세상을 좀 더 포용적이고 개방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더 세심하게 성찰해야 한다.



[K컬처로 인문하기] 시대 정신의 변화와 K-컬처의 미래

- 지난 글: [K컬처로 인문하기] “욕망이 뭐 어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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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이지영

철학자
서울대에서 「들뢰즈의 운동-이미지 개념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영화미학으로 두 번째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홍익대, 옥스퍼드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에 재직하고 있다. 들뢰즈의 영화 철학과 더불어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의 온라인 영상, 비디오 설치 영상, 푸티지 영상, 실험적 다큐멘터리 등 영화와 인접 영상 예술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의 변모에 관심을 가지고 미학적 존재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 『BTS 예술혁명』,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공저), 『Deleuze in China』(공저), 『Nobody knows when it was made and why』(공저) 『들뢰즈의 영화철학: 『시네마』를 넘어서』 (근간)가 있고 『푸코』, 『들뢰즈 : 철학과 영화』 등을 번역했으며, 들뢰즈의 영화철학을 중심으로 영화와 인접 영상 예술들에 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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