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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삶과 사회의 기초

호모 커뮤니쿠스, 대화는 인간의 본성이다

표정훈

2019-05-02

얼굴의 진화. 인간은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


“현생 인류(호모사피엔스)는 20가지 이상 감정을 말없이 표정만으로 나타낼 수 있는 종(種)이다. 얼굴 근육의 수축과 이완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데, 얼굴의 형태나 근육이 다른 이전 인류는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폴 오히긴스 영국 요크대 의대 교수와 크리스 스트링어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 교수팀이 인류의 얼굴이 변모한 과정을 두개골 변화를 중심으로 밝혀낸 논문에서 한 말이다. (「Nature Ecology & Evolution」 2019년 4월 9일 자 및 16일 자) 논문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눈 위 뼈가 크게 발달하여 돌출된 얼굴형이지만 현생 인류는 약 10만 년 전부터 그런 특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의사소통과 관련이 깊다. 눈 위 뼈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코를 제외한 얼굴의 마지막 돌출부가 사라졌다. 덕분에 인류는 눈썹마저 표정 짓는 데 쓸 수 있게 됐다. 얼굴 근육 움직임을 섬세하게 조정하여 어떤 표정이든 지어 보임으로써 더욱 정교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얼굴의 진화. 인간은 호모 커뮤니쿠스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애덤 윌킨스는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김수민 옮김, 을유문화사)』에서 인류의 얼굴이 다른 포유류들과 다르게 주둥이가 축소된 얼굴로 변화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주둥이가 얼굴 정면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으면서 훨씬 더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입은 입술 움직임을 통해 더 많은 표정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고, 눈도 돌출된 주둥이 뒤에 놓이지 않게 됨으로써 가까운 곳의 사물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타인의 입 주변 표정 변화를 알아채기 더 쉬워졌다. 털 없는 얼굴도 타인의 표정을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얼굴 진화에 관한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표정을 만들고 타인의 표정을 읽는 것이 사회적 소통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통이 다양하고 복잡해질수록 얼굴은 더 진화했다. 그렇게 진화한 얼굴은 더 복잡한 소통을 수행하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바탕이 됐다. 인간에게 대화와 소통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본성에 가깝지 않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다.

 



공공적(公共的) 대화·소통의 기반은 무엇인가?


철학자 칸트는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일을 ‘취미’라고 불렀고, 취미 능력은 대상의 어떤 특질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나의 ‘쾌’ 혹은 ‘불쾌’의 감정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대상 자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주관적 느낌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주관적 요소, 능력이 주관적 차원을 넘어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을 지닌다고 보았다. 아름다운 것은 ‘나’에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너’와 ‘그들’도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의 감정은 개인적 호불호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무엇이다.


아름다운 것은 나/개인/주관에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모르는 그들이나 그 누군가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미(美)의 경험은 나의 즐거움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이 연결 고리, 즉 개인적·주관적인 것과 집단적·객관적인 것을 잇는 고리를 칸트는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이라 본다. 상식(common sense)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온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주관적 체험 속에서 주관적 차원을 넘어 공통의 상식을 넓혀가면서 보편적·객관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상식’이라는 말은 영어의 ‘코먼 센스(common sense)’의 번역어다. 코먼 센스는 라틴어 ‘센수스 코무니스(sensus communis)’의 번역어이며, 센수스 코무니스는 다시 그리스어 ‘코이네 아이스테시스(koine aisthesis)’의 번역어다. 세 표현 모두 ‘공통감각’이라는 같은 뜻을 품는다. ‘상식’이란 말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공통감각’에 이른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코이네 아이스테시스를 센수스 코무니스로 번역하면서 이 말에 공동체적 감각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상식이란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감각이다. 그러므로 공통감각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판단도 아니고 어디서나 타당한 진리도 아니다.
방송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토론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감각, 시민적 상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민적 상식을 통화(通貨: 한 나라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적, 문화적, 시민적 통화를 공유해야 온전한 소통과 대화가 가능하다. 세대·계층·지역·이념 간 갈등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여전하다면 그것은 시민적 공통감각, 즉 시민적 상식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은 대화적 존재. 삶도 사회도 대화가 뒷받침한다.


‘붕괴 전문가’ 드미트리 오를로프는 『붕괴의 다섯 단계(홍기빈 옮김, 궁리)』에서 금융 붕괴, 상업 붕괴, 정치 붕괴, 사회 붕괴에 이어 붕괴의 마지막 단계로 문화 붕괴를 들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거의 완벽한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외톨이들로 꽉 찬 사회에서는 타인들끼리의 연결이 약해서 신뢰가 필요한 조직이 불가능해진다.”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사회야말로 사실상 완전히 붕괴된 사회라는 것.
사회만 그러할까? 인간의 삶도 대화 없이는 온전하게 이뤄질 수 없다. 미하일 바흐친이 말한다. “의식은 대화적 본성을 지니며, 인간의 삶 자체도 대화적 본성을 지닌다. 인간의 진정한 삶에 유일하게 적절한 언어적 표현 형식은 완결되지 않는 대화다. 삶은 본성상 대화적이다. 산다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묻고 귀 기울이고 대답하고 동의하고 등등이 그것이다.” (『말의 미학』, 김희숙, 박종소 옮김, 길)


   인간은 대화적 존재. 삶도 사회도 대화가 뒷받침한다.


바흐친은 통일성이란 본래 하나의 단일한 것이 아니라, 일치하지 않는 두 개 또는 몇 개의 의식들의 ‘대화적 합의’라고도 말한다. 바흐친의 통찰을 빌리면, 예컨대 사회통합이라는 건 사람들이 하나의 단일한 생각을 하거나 의견이 통일되는 게 아니다. 일치하지 않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의 ‘대화적 합의’, 그러한 합의의 과정 자체가 사회통합이다. 그 과정은 창조적일 수도 있다.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의 명예 교수 시어도어 젤딘이 말한다.
“대화는 저마다의 기억과 습관을 지닌 마음과 마음이 조우하는 과정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는 사실만 주고받지 않습니다. 사실을 변형하고 개조하고 사실에서 다양한 함의를 끌어내며 새로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카드놀이에 비유하자면, 대화는 패를 다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새로 만드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화에 대하여』,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해외 포교로도 유명한 숭산 스님이 한 미국인과 나눈 대화 한 토막.
한 미국인이 숭산 스님에게 물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What is love)?”
“당신은 나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대꾸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게 사랑이다.”


사랑으로서의 대화, 대화로서의 사랑을 일깨우는 대화라 할까. 인간은 대화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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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작가, 출판칼럼니스트.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책·독서·출판에 관한 글을 주로 쓴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강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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