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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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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설화, 스토리텔링의 원형

"이야기(story)의 본질은 이야기하기(storytelling)에 있다"

by 조현설 / 2019.11.04


신화 트로이의 목마 이미지


우리는 날마다 이야기로 산다. 이야기는 의식주와 더불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네 번째 요소다. 이야기가 없으면 소통이 없고 소통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 인간은 의식주가 아니라 의식주화(衣食住話)로 산다고 말해야 한다.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대략 7만 년 전부터 일어난 인지혁명이 사피엔스를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인지혁명 안에 사피엔스의 언어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협력할 수 있었고, 협력이 사피엔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도 우리들 사피엔스는 종일 동료들과 수다(chatting)를 떤다. 이 수다는 오늘날 마을 단위에서 인터넷을 통해 전지구적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다 떠는 행위를 우리는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이때 이야기란 말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것도, 특정 사건을 설명하는 것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일정한 줄거리를 가진 말이나 글이면 다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없었던 일 혹은 있을 법한 일을 마치 사실처럼 재미있게 꾸며서 하는 말이나 글도 이야기라고 부른다. 옛날이야기라고 할 때 바로 그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우리는 설화(說話)라는 한자어로 바꿔 쓰기도 한다.  


숲속의 곰


옛이야기, 설화는 허구적 이야기의 어머니다. 이 어머니의 어머니 자리에 인지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신화가 있다. 곰은 무서운 동물이야. 곰이 얼굴을 핥으면 뼈만 남아, 조심해! 이런 사실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곰은 우리 형제야, 조상이야, 그러니 형제처럼 할머니·할아버지처럼 대해야 해, 이런 비사실적인 이야기도 있다. 왜 그렇지? 누가 이렇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바로 신화다. 옛날 어떤 청년이 숲속에 들어갔다가 곰한테 붙잡혀 함께 살았어. 아이가 태어난 뒤 청년은 곰이 사냥을 나간 틈을 타 도망쳤지. 암곰이 알고 따라왔지만 강을 건너 버렸어. 곰은 안고 있던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청년한테 던졌어. 그 반쪽 아이가 바로 우리 조상이야. 그러니 곰은 우리 형제야! 인류가 획득한 허구화 능력이 신화를 만들었고, 신화 덕분에 인류는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 되고, 거대 집단을 만들 수 있었다. 신화는 인간을 넘어서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초월은 지난한 일이다. 날고 싶어 날개 달린 인간을 상상하고, 알에서 태어난 시조에 대한 신화를 만들었지만 인류가 도구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데는 7만년이 걸렸다. 영생하고파 불사약에 대한 신화를 만들었지만 불사는 아직 종교의 영역에 있다. 그래서 인류는 비극을 창안했다. 비극은 인간 존재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아기장수는 결코 하늘을 날거나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 권력의 횡포가 두려운 가족에 의해 아기장수는 미리 제거된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금지를 위반하지 않을 수 없는 며느리는 망부석이 되었고,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다. 달래고개에서 누이에 대한 성욕에 괴로워하던 남동생은 자신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처벌한다. 죽어서도 초월할 수 없는 원귀들은 원한을 하소연하기 위해 이승의 어둠 속에 출몰한다. 전설은 한계를 넘고자 했으나 한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실패하면서도 매일 현실과 싸워야 하는 전설적 인간이다. 


현실과 싸우는 전설적 인간. 인간의 운명


인류는 육체에 갇혀 있지만 인지혁명이 일군 상상력 덕분에 육체를 넘어선다.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간다. 노총각 나무꾼은 노루를 살려준 덕에 노루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하여 선녀를 아내로 삼는다. 나중에는 두레박을 타고 승천하고, 천마를 타고 지상으로 귀환하기도 한다. 사슴이 말을 하고 날개 달린 말이 하강하는 사건은 신화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신화가 집단적 믿음의 영토를 떠나면 신성성도 떠난다. 신비의 안개가 걷히면 상상력의 놀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재미만 남는다. 


그래서 민담은 신화와 종이 한 장 차이다. 민담의 상상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장화신은 고양이는 어려움에 처한 막내를 위해 왕을 속여 공주를 얻어 주고, 구박 받던 며느리는 방귀 한 방으로 시아버지를 날려버려 아이들의 억눌린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의붓동생 콩쥐가 살해한 팥쥐를 젓갈로 만들어 맘씨 고약한 계모에게 먹게 함으로써 우리의 복수심을 자극하고 해소시키기도 한다. 민담적 인간은 재미를 아는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이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는 잊어버릴까봐 주머니에 적어 넣어두곤 했다. 넣어놓기만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꽁꽁 갇혀 있던 이야기들은 아이를 해코지하려고 한다. 마침내 아이가 자라 신행에 나선 날, 이야기들은 새신랑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다. 우물물·딸기·돌배로 변신해 새신랑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들의 모의를 엿들은 똘똘한 하인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야기 주머니’란 제목의 민담인데 이보다 이야기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는 없다. 이야기를 주머니에 담아만 두면, 곧 남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이야기가 사기(邪氣)가 되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야기(story)의 본질은 이야기하기(storytelling)에 있다는 말씀이다. 


이야기를 즐기는 호모사피엔스


우리는 이야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고, 여전히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이야기 번성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맞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무수한 이야기들이 시공의 경계를 넘어 인터넷 공간에 흘러넘친다. 설화를 원형으로 삼아 소설·연극·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웹툰·음악극·게임 등의 장르들이 서로 넘나들면서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것을 이미지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다.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면 인류는 석기시대의 최소노동시간으로 복귀할 것이다. 인류는 더 유희적이 될 수밖에 없고 더 많은 이야기를 소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속담은 언어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바야흐로 이야기가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는 한 스토리텔링의 빙하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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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
조현설
구비문학자, 시인.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교수,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베이징 대학교 비교문학비교문화연구소 방문학자, 미국 노터대임대학교, 워싱턴대학교 교환교수로 가르치고 연구했다. 한국구비문학회 회장,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동방문학비교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알타이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3), 『문신의 역사』(2003), 『고전문학과 여성주의적 시각』(2003), 『한국 서사문학과 불교적 시각』(2005), 『우리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 신화연구』(2013), 『고전 속에 누가 숨었는고 하니』(2019)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2003)이 있다. 나손학술상(1998)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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