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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진정한 ‘나’를 향한 연주

문학에서 살펴본 한국 이산인들의 정체성 찾기

정은경

2019-06-24

 

더 이상 바깥이 아닌, 일상 속 디아스포라



해맑게 웃으며 한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천사같은 아이들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를 넘어서)와 동사 ‘speiro’(뿌리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보통 대문자 ‘Diaspora’를 써서 ‘팔레스타인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최근 디아스포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유대인의 경험 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국제 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 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1으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용어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민족 이산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가깝게는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경제 유민, 재일 한인, 미주 교포, 탈북자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넘는 이산의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시야를 세계로 넓히면 노예 무역에 희생된 아프리카인, 대서양, 태평양 등지로 반강제적으로 이주당한 아시아인, 냉전 이데올로기와 정치 이념에 희생된 망명자, 전쟁과 기아를 피해 개인 또는 집단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난민과 유민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기 폭력적인 세계사를 명백히 드러내는 민족 이산의 흐름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여전히 현재적 문제로 남아있다. 


더불어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은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화(globalization) 현상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UN에 따르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국제 이주민은 2010년 기준 약 2억 1,700만 명(세계 인구의 3.1%)에 이른다. 이를 국가로 치면, 중국-인도-미국-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2가 된다. 해외 700만 명의 교포, 국내 1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최근의 예멘 난민 문제를 상기해볼 때, 디아스포라는 비단 ‘바깥’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1. 윤인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5p

2. 케반 케니, 최영석 역, 디아스포라 이즈is, 앨피, 2016, 162p 

 

 

한민족 이산인의 발생과 지금



근대 이후 ‘한민족 이산인’의 발생은 일제 강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방 후 한반도의 한국인들은 ‘국민’을 회복하였으나 7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외 동포들은 ‘시민권’을 얻기 위해 다양한 험로를 겪어야 했다. 1945년 종전 직후 일본에 있던 230만 명의 한국인 중 귀국하지 않고 남은 60만 명은 일본이 강제했던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외국인’으로 등록해야했다. 이들은 외국인인 까닭에 오랫동안 지문 날인을 해야 했고, 사회적 차별로 파친코와 야쿠자의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야했으며, 참정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일본 사회에 점차 동화되었지만,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 극우 세력이 만든 또 다른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중국에는 180만 명 정도의 ‘조선족’이 만주 지역의 조선족자치구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중국으로 이주한 시기와 계기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일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거나, 혹은 일본이 건립한 ‘만주국’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동부를 차지한 일본은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이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만주국’(1932)을 건립하고 ‘오족협화’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워 만주의 허허벌판에 식민 조선인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현재 한국에는 60만 명이 넘는 조선족이 재외동포의 자격으로 들어와 살고 있으나 영화나 대중문화에서 ‘범죄자’의 대명사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에는 ‘고려인’이라는 한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17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일본 첩자라는 혐의로 하루아침에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극동에서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옮겨진 것이다. 일본과 중국, 소련에서 험로를 겪어야 했던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유명한 시인 윤동주처럼 교도소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고문당해 죽거나 만주 관동군 747 부대에서 생체 실험의 마루타로 죽거나 혹은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에는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봉오동 전투의 독립군 홍범도 장군도 포함되어 있다. 조명희는 1928년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스탈린 정권에 의해 체포, 1938년 총살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홍범도 장군 또한 37년 강제 이주되어 43년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청소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용어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디아스포라는 비단 한민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져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러나 각각의 이산인이 맞닥뜨린 현실 문제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중앙아시아의 고려인과 일본의 재일 교포가 겪는 현실이 동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디아스포라를 하나의 아젠다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공통된 난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들이 그가 속한 새로운 정착지에서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정체성의 문제이다. 우리 주변의 화교, 이주 노동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디아스포라들이 새로운 정착지에서 그들만의 공동체와 모국어와 자국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문화적 차원 외에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해당 국가에서의 동화, 법적 지위 등등. 흔히 이중 언어 사용자가 일국어 사용자보다 2배의 언어 용량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쪽과 저쪽’에 속한다는 것은 두 개를 다 갖는 것이 아니라 ‘반쪽’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네이티브 스피커』 - 이민 1.5세대의 정체성 

 

 

영원한 이방인 원제 네이티브 스피커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헤밍웨이상 수상작

『영원한 이방인』, 나무와 숲 펴냄

 

이창래의 『네이티브 스피커』(1995, 한국어 번역본 영원한 이방인, 나무와 숲)는 이들 디아스포라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는 이민 1.5세대인 작가의 실존과 아웃사이더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세 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이창래는 원어민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지만, 부모와 그 주변의 공동체로 인해 여전히 정체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탐정소설 플롯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와 유사한 한인 1.5세대 ‘헨리’다. 헨리는 사설기관의 소속되어 일하는데, 이민자라는 그의 정체성은 그의 성격 형성과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주인공에게 특별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특성을 지우는 방식, 즉 무성격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헨리는 “늘 두려워하고 원한을 품고 슬퍼하는 신입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언제나 자기를 발언하지 않는 ‘실체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지나치게 예의바른 동양인으로, 언제나 배경으로서만 존재하기를, 내밀한 감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를 훈련받은 것이다. 

 

배경에 존재하는 내밀한 감정의 침묵 훈련


헨리 박은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청과상을 하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한편 그의 속물성을 한없이 증오한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강력한 의지와 신념의 소유자이지만, 단지 그들의 가족과 돈에 관해서만 그러할 뿐, 그 사적인 공간을 벗어난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제한적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어가 형편없는 어머니는 이웃과 소통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인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어떤 실패의 신호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헨리는 이러한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태도와 습관을 체화한다.  


그의 이러한 무성격에 가까운 특성은 정체성을 위장해야 하는 첩자라는 직업 세계에서 승인받는다. 그가 일하는 ‘글리니 앤 컴퍼니’는 ‘기업, 외국 정부 부처, 반란 세력’들의 비밀을 캐내는 스파이 집단으로 헨리는 이곳에서 적당히 필요한 ‘정체성’을 연기함으로써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보통의 이민자와는 다른 유형의 인물을 만난다. 그것은 그가 새롭게 염탐해야하는 ‘존 강’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한인들의 지지를 받아 뉴욕시장 후보자로 나선다. 헨리는 그를 만나면서 점차 혼란에 빠진다. 존 강은 가족과 돈만을 신봉하는 수세적 이민자들과 달리, 그의 삶의 행로를 혈연에 고착시키지 않고 공동체로 확장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존 강은 헨리의 아버지와 달리 ‘조용히 그리고 적게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발언하고 발산하는 긍정적인 방식을 몸소 보여준다. 또한 그는 퀸스의 한인들을 사랑하지만 그의 목표는 소수 민족의 정치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유권자들이 그가 유색인이나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투표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으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그는 자신을 일부 이익 집단이 아니라, 더 많은 미국인을 대변하는 진정한 미국인이 되고자 한다. 아내에게조차 수수께끼와 무성격으로 일관하던 헨리 박은 존 강이라는 인물을 통해 용기와 깨달음을 얻고 변화해간다. 이 변화는 존 강이 복잡한 정치적 세력에 의해 패배하고 군중에게 야유와 비난을 받을 때 극적으로 드러난다. 존 강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나는 강에게 이르자, 그들에게 주먹질을 한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모든 것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 그러나 내 주먹이 어딘가에 닿을 때마다, 그에 맞서는 다른 주먹이 내 귀, 내 목 내 뒤통수를 강타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내심 그런 주먹들을 환영한다.” 


위 장면은 이제껏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 애썼던, 헨리 박이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 맨 머리를 두드리게 할 수 없다”는 존 강의 말대로, 헨리의 치고받음은 확실히 ‘자아’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강렬한 느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는 이제 안전한 제로의 정체성에서 위험한, 그러나 분명한 자신을 취하고 그것과 더불어 공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결국 이 작품의 원제인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원어민이란 의미 이상을 함축한다. 그것은 아무리 혼종적이고 외래적일지라도 ‘자신의 문화적 특성’에 바탕을 둔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덧없는 환영들』 - 실존의 감각으로 언어 찾기 



덧없는 환영들 제인 정 트렌카카

『덧없는 환영들』, 창비 펴냄

 

제인 정 트렌카의 『덧없는 환영들(2009)도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인 정 트렌카는 1972년 한국에서 출생하여 생후 육 개월 만에 미국 미네소타 주의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으며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며 ‘진실과 화해를 위한 입양인 모임’을 이끌고 있는 작가다.

『덧없는 환영들』은 미국에서 주목받은 첫 번째 작품 『피의 언어』(2003)의 연장선상에서 ‘입양인’이라는 자전적 고뇌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양부모 덕분에 물질적 풍요와 안정적 교육을 받고 성장하지만 ‘입양되고 대용된 삶’ ‘이식의 삶’ ‘전(前)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황한다. 


 미국에서 백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지만, 인종 간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압박한다. 인종 간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의식에는 프란츠 파농이 정신분석으로 밝힌 바 있듯, 뿌리 깊은 열등감과 복수, 열망 등이 작동하고 있음을 화자는 실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시아계 미국인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백인 여자와 자는 것이라든가, 백인 남성과 결혼하려는 아시아계 여성의 열망 같은 것들. 미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비주류 ‘이방인’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환경, 그리고 남편과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으로 인해 주인공은 미네소타의 집을 떠난다. 그리고 한국으로 건너와 친엄마와 가족을 만나면서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러나 조국인 한국은 입양인에게 ‘편안한 집과 고국’을 단번에 돌려주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국인’의 외모로 괴로워야했던 그녀는 한국에서 ‘미국적 정체성’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좌절을 겪는다. 


한국인의 외모로 괴로워야 했던 흔들린 정체성


 ‘엄마’(umma), 오다(oda), 가다(kada)’를 영어 발음 병기와 함께 익혀야하는 그녀에게 안락한 ‘자신’의 자리는 없다. 인왕산과 서대문형무소, 무당, 한(恨)을 교재에서 배운 대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그녀에게 ‘한국인의 육체성’이란 함량 미달인 것이다. 이러한 또 한 번의 배제 속에서도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다양한 입양인과 연대하여 자신의 역사를 찾아간다. 이는 “너의 역사가 너의 정체성이야”라는 연인 도미니끄의 말처럼 주어진 정체성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려는 시도이다. 

‘덧없는 환영’이라는 프로꼬피예프의 피아노곡에서 가져온 이 책의 제목에는, 악보라는 주어진 민족 정체성이나 규범에서 벗어나 실존의 감각으로 자신만의 연주를 해내가고자 하는 제인 정 트렌카의 힘겨운 고투, 그리고 한국전쟁 종전 이후 20여만 명을 넘는 입양인에게 보내는 응원이 담겨있다. 



더 많은 ‘낯선 것’을 향해, 연대와 성찰을 

 

 

마주잡으려는 두 손 끈


‘디아스포라’에 대한 주목은 우선 해외 한민족 동포들의 이산의 경험을 공유하고, ‘민족, 국가, 경계’에 대해 21세기적 지평에서 성찰하고 급변하는 일상의 지반을 다지자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맥락에서 보자면, 이는 단지 가속화되는 세계화와 유목적 삶의 경계 넘기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명실상부 지구촌 시대와 초연결사회가 도래하여 세계가 열리면 열릴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낯선 것’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라는 동일성이 폭력으로, 혹은 더 큰 중심 앞에서 주변부로, 또는 타인이 이웃이 아닌 적으로 변전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SNS 덕분에 더 많은 소통창구와 네트워크를 가지게 되었으나 숱한 익명과 파편 속에서 혐오와 적대가 자라나는 것도 그러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는 이러한 ‘타자성’의 경험에 대해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국내에서 마주치는 이주 노동자, 그리고 외국에서 잠깐이지만 ‘타자’가 되는, 이 변전하는 경계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주의와 다원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다양한 정체성 속에서 우리는 혐오와 적대를 넘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과제가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여정에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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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정은경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비평집으로 『지도의 암실』,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등이 있다. 이미지_ⓒ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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