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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몇 조각 짙은 회한으로 세월이... ‘꿈은 사라지고’

- 당신은 어떤‘가요’ -

윤대녕

2022-03-02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 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나는 천둥소리를 들은 듯 놀라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자신만의 연주법과 창법으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나는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있었다. 그 깊은 내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독함과 쓸쓸함을 버무린 참으로 애절하고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이후 나는 그 카페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인데 이태껏



영화 〈꿈은 사라지고〉 포스터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영화 〈꿈은 사라지고〉 포스터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가요 〈꿈은 사라지고〉는 1959년 노필 감독에 의해 연출된 최무룡 주연의 영화에 삽입된 노래이다. 또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직접 주제곡을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온 이 노래를 나는 왜 이때껏 애창곡(?)으로 삼고 있는 걸까?


그 전에 잠깐 노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詩)와 만나게 된다. 원시 시대 사람들은 사냥에서 돌아오거나 마을에 축제가 열리면 불가에 모여 앉아 하늘의 별들을 배경 삼아 춤을 추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언어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저마다 우우, 하는 소리를 내는 정도였다. 때문에 예술의 기원에 대해 말할 때 학자들은 ‘춤(무용)’이 최초의 형식이라고들 말한다. 인간이 육체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마침내 동물과 분리됐다는 것이다.


그 후 춤에 소리(가락)가 실리고 또한 거기에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언어)가 섞이면서 비로소 노래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언어는 샤먼(사제)의 전유물이었다. 축제를 주관하는 사제(왕)가 하늘에 염원과 기원을 전하는 언어를 독점했고 이는 곧 권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제의 언어는 시라는 형태로 다시 태어났고, 거기에 가락이 실려 서서히 일반화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노래’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이렇듯 모든 노래는 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알다시피 시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응축된 언어이자 변함없이 염원과 기원을 담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노래들이 시에 가락(리듬)을 붙여 만들어지고 있다. 가령 양희은이 부른 〈세노야〉가 고은의 시이며 송창식의 〈푸르른 날〉이 미당 서정주의 시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그 외에도 무수한 노래들이 시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노래 가사 자체가 그대로 시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영훈 작사 작곡의 〈광화문 연가〉와 〈옛사랑〉의 가사가 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학생 삼촌이 지겹도록 불렀던 그 노래



흥얼흥얼 계속 노래 부르는 사람

흥얼흥얼 계속 노래 부르는 사람



처음으로 돌아가 〈꿈은 사라지고〉란 노래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내가 처음 이 노래를 들은 것은 여섯, 일곱 살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부모가 도시로 분가해 시골 조부모집에서 성장했는데, 가끔 외지에 나가 있는 삼촌이 찾아오곤 했다. 아버지의 바로 아랫동생인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삼촌은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내려와 나를 데리고 새사냥을 나가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그때마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흥얼거리곤 했는데, 그게 무슨 노래인지는 어린 내가 알 리 없었다. 다만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여지없이 쓸쓸하고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 그 노래를 지겹도록 불렀던 삼촌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었지 않나 싶다.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아아,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반복)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아아,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그 후 성장하면서 나는 텔레비전에서 가수들이 나와 가끔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쓸쓸하고 허무했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최무룡 뿐만 아니라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술기운에 난생 처음, 그 후로도 노래방만 가면



노래방과 마이크

노래방과 마이크



또다시 세월이 흘러 1990년에 나는 소설가로 등단했고, 아마 그 무렵이 아닐까 싶은데 서울에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인, 예술가들은 대개 감수성이 예민하고 또 이런저런 재주들이 많다. 당연히 노래를 잘 부르는 작가, 시인들도 많다. 신인 작가 시절 나는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술을 마시곤 했는데, 당시 2차는 대개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그게 유행인 시절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충청도 시골 출신인 나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주 고역이었는데, 결국 차례가 되면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술기운을 빌려 최초로 부른 노래가 바로 〈꿈은 사라지고〉였다. 생각나는 노래가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동석했던 선배들이 나를 바라보며 다들 킬킬거리고 웃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가요나 팝송을 부르고 있는데, 나는 흑백 텔레비전 시대의 60년대 노래, 그것도 신파조의 가요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이후에도 나는 노래방에 가게 되면 고집스럽게 이 노래만 불렀다).


이제 〈꿈은 사라지고〉를 가장 애절하게 불렀던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1994년에 첫 책을 낸 뒤 나는 약속이 있어 인사동에 나갔다가 동행한 사람과 우연히 ‘소설’이라는 카페에 가게 되었다. 으슥한 골목에 위치한 낡은 한옥을 개조해 차린 카페였다. 나무로 만든 대문 위에 한자로 ‘小說’이라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고물고물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이어 누군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이는 카페의 여주인이었다. 첫 곡은 정태춘의 〈서해에서〉란 곡이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그만 마음이 젖어 들고 말았다. 약간의 허스키한 음성에 깊은 울림을 담은 목소리는 그 자체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가 그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카페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었다).



카페 주인 노래에 반하고 마침내 소설에까지


 

이윽고 두 번째 곡으로 그녀가 〈꿈은 사라지고〉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천둥소리를 들은 듯 놀라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자신만의 연주법과 창법으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나는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있었다. 그 깊은 내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독함과 쓸쓸함을 버무린 참으로 애절하고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이후 나는 그 카페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그녀에게 〈꿈은 사라지고〉를 좀 불러달라고 아이처럼 매번 조르곤 했다.


카페 ‘小說’도 사연이 많다. 그 인사동 한옥집에서 어느 날은 백상빌딩 지하로 옮겨갔고 몇 년 후에는 일산 신도시의 주택가 지하로, 마지막에는 계동초등학교 앞 한옥으로 옮겼다가 어느 날 영업을 종료했다. 카페 주인은 그 후 태국으로 떠나 치앙마이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소문으로 전해 들었다.



단편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가 실린 윤대녕 작가의 소설집 『대설주의보』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단편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가 실린 윤대녕 작가의 소설집 『대설주의보』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 무렵에 나는 문예지의 청탁을 받고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라는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다. 유년기의 삼촌으로부터 시작된 그 노래에 대한 나의 끊어 낼 수 없는 애착(집착)은 내가 그렇게 작가로 산 세월과 같이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는 노래방에 갈 일도 없고, 아닌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가 본 것도 어느덧 십여 년 전인 것 같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그야말로 꿈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육십의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이제 희미한 빛의 아름다운 추억 몇 조각과 나머지 대부분은 회한으로 채워지고 말았다. 아. 옛날이여! **



[당신은 어떤‘가요’] 추억 몇 조각 짙은 회한으로 세월이... ‘꿈은 사라지고’

- 지난 글: [당신은 어떤‘가요’]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이 무슨 몹쓸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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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작가 사진
윤대녕

소설가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도자기 박물관』,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달의 지평선』 『눈의 여행자』 『미란』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등이 있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4년), 이상문학상(1996년), 현대문학상(1998년), 이효석문학상(2003년), 김유정문학상(2007년), 김준성문학상(2012년),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 작가상(2019년) 등 수상.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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