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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반영 못하는 딱딱한 성문법, 한글 맞춤법 없애면 어떨까요

- 이달의 질문 -

김진해

2021-10-07

인문 쟁점은?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인문학적 과제들을 각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사색, 허심탄회한 대화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더 깊은 고민을 나누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매월 국내 인문 분야 전문가 두 사람이 우리들이 한번쯤 짚어봐야 할 만한 인문적인 질문(고민)을 던지고 여기에 진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언어 사용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과 결정권을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언어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중앙 집중이 아닌 분권화가 시도되고 있듯이, 말도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그 권한을 넘겨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어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과 관습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적 자율성과 다양성이 용납되어야 ......



국립국어원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 홈페이지 모습

국립국어원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 홈페이지 모습



‘어쭙잖다’가 맞냐 ‘어줍잖다’가 맞냐? ‘만둣국’이 맞냐 ‘만두국’이 맞냐? ‘해님’인가 ‘햇님’인가? ‘오도독뼈’만 표준어이고, ‘오돌뼈’는 비표준어라고? ‘지난주, 지난달, 지난해, 지난여름’은 붙여 쓰면서 ‘이번 주, 이번 달, 이번 해,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는 왜 띄어 써야 하는가?” 등등.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대한 질문이나 논쟁은 대부분 맞춤법에 관한 것입니다. 말을 둘러싼 얘기가 ‘맞냐, 틀리냐’의 문제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죠. 어떤 문장과 표현이 더 정확하고 적절하고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는 매우 부족합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성문화된 한글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을 해왔는데요. 맞춤법이 이미 한국어를 받아 적는 기본 원리로 자리 잡았으니 법조문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성문법은 없애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맞냐, 틀리냐’의 차원을 뛰어넘어 어떻게 쓰는 게 좀 더 독자들에게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울까를 기준으로 글을 쓰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한글맞춤법으로 대표되는 어문 규범에는 철자법 외에 띄어쓰기,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법규들은 언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과 함께, 법규 내부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대부분의 다른 언어들처럼 철자법을 불문율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말을 문자로 적는 철자법이 없는 말은 없지만 그걸 우리처럼 법령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는 드뭅니다. 예컨대, 영어만 봐도 ‘neighbor’라는 단어는 ‘gh’ 소리가 안 나지만 예전부터 그렇게 써왔으니까 그냥 그대로 쓰는 것이지 법조문을 만들어 “‘gh’ 발음이 안 나도 ‘nabor’라고 쓰지 않고 ‘neighbor’로 써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하지 않습니다(영국영어에서는 ‘neighbour’로 쓰고요.) 관습적 불문율인 거죠. 그냥 해당 단어를 관습에 따라 기억하지 일률적인 법률로 정해 놓지 않습니다.


좀 더 근원적으로는 단일한 언어체계가 아닌 잡종적이고 다중적인 언어체계로의 변모가 언어생활의 다양성과 언어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언어 사용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과 결정권을 국가나 엘리트들이 아닌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언어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중앙 집중이 아닌 분권화가 시도되고 있듯이, 말도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그 권한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언어는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과 관습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적 자율성과 다양성이 용납되고 환영받아야 합니다.


성문화된 한글맞춤법의 폐지로 열리게 될 공간은 언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전이 채우거나 저자나 편집자의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어문규범의 관철을 기본 기조로 삼은 국가 사전(〈표준국어대사전〉)이 사전 생태계를 모두 장악한 현실은 매우 퇴행적이고 반문화적인 상황입니다.



[이달의 질문] “현실 반영 못하는 딱딱한 성문법, 한글 맞춤법 없애면 어떨까요” / 질문자 - 김진해(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Q. 변정수 선생님!! 그동안 출판편집자로서 한글맞춤법과 관련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자주 맞닥뜨리셨을 텐데요, 그때 어떤 태도나 원칙을 견지하셨는지요?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언어생활을 위한 언어정책의 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성문화된 한글 맞춤법 규정 중심으로 한국어의 단일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에서 벗어난 다른 질서는 불가능할까요? 새로운 질서가 가능하다고 본다면 거기에 살게 될 우리들은 어떤 문화나 태도를 지니는 게 좋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10월 [이달의 질문] 현실 반영 못하는 딱딱한 성문법, 한글 맞춤법 없애면 어떨까요

- 지난 글: 9월 [이달의 답변] 신라의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대처가 당의 한반도 장악 욕심 좌절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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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20년 넘게 학생들에게 언어, 의미, 글쓰기, 책 만들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고 있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며 학문을 넓혀 가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한겨레> ‘말글살이’에 글을 쓰는 재미와 고통을 맛보며 지낸다. 꾸준히 수련하고 있는 평화의 무술 합기도(Aikido)로 반복의 힘, 상대와의 조화,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 배움의 본질과 자세, 여유와 유머를 알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행복한 명함은 두 마리 길냥이들의 집사, 진돗개 미르의 산책 머슴이다. 펴낸 책으로 말과 글에 관한 에세이집인 󰡔말끝이 당신이다󰡕를 비롯하여, 󰡔연어 연구󰡕, 󰡔대학 글쓰기󰡕(공저), 󰡔성찰과 표현󰡕(공저), 󰡔한국어의 규범성과 다양성󰡕(공저), 󰡔촛불항쟁과 새로운 민주공화국󰡕(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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