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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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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트리나 폴러스『hope for the flowers』의 나비에게

by 황선미 / 2021.05.24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은? 세월을 견디고 오래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성공보다 실패를, 대답보다는 질문을, 상식보다는 상식 밖을, 중심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놀랍고 기이한 것은 그 쓰라린 실패담, 난처한 질문, 보잘것없는 주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깊이 파고들어 종내는 강력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코너에서는 국내외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서툴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삶,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작가들의 소개로 만나본다.



나의 허기를 알아챘을까. 그 좁은 달방에 갔고, 언니가 끓여준 라면을 쪼그려 앉아 먹게 됐다. 그때 냄비 받침 신세였던 게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그런 신세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우글쭈글해진 데다 책장을 넘기니 마른 뼈 부러지듯 쩍 소리가 났던 책. 삶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전개할 수도 있구나. 너무나도 간결하게 삶의 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어.



간절히 기다렸으나 시들고 만 작약꽃



시든 작약꽃과 활짝 핀 작약꽃

시든 작약꽃과 활짝 핀 작약꽃



아침마다 들여다보던 꽃봉오리 상태가 수상했다.


아직 겨울이던 2월 초, 잎사귀 사이에 꽃봉오리가 맺힌 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지 모른다. 그늘에서 양분도 없이 겨우 자란 모지리 고구마 같던 알뿌리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화분에 심었던 건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너무 아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화사한 꽃을 좀 보고 싶었다. 곤죽처럼 어지러운 마음에 환하게 꽃등을 들이고 싶었다. 그나마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꽃 시장에 가 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향기처럼 화사해 보여도 한 이틀만 지나면 밑동이 싹둑 잘린 슬픔을 고린내로 풍기는 꽃이란 그게 뭐라도 가짜 위로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탓이었다.


우연히 식물 사이트에 접속하게 됐고, 거기서 하필 눈에 띄었던 게 작약이었다. 양손으로 떠받쳐야 할 것 같은 화사한 꽃. 물론 알뿌리를 팔고자 얼굴마담처럼 붙인 사진이었으나 그런 꽃을 볼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으로 덜컥 주문을 했다. 얼굴마담 뒤에 모양 빠지는 정체가 있는 줄 알았으면서도 소포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화려한 작약 꽃송이를 상상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니 꽃이란 얼마나 희한한 것인지.


화분과 흙을 사고 예쁜 삽까지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마음이 달착지근해지는 기쁨을 느꼈다. 값에 비해 부실해 보이는 알뿌리를 받았으나, 비록 모지리 고구마처럼 뒤틀린 실물이었으나 ‘나 살아 있어’ 하듯 구근 한쪽에 싹이 올라와 있어서 애틋하게 다루었다. 아마 꽃봉오리는 그때의 첫 싹이 올린 희망이었을 텐데.


탱글탱글하던 꽃봉오리가 이상하다. 나날이 윤기가 사라져 간다. 식물이 살 희망이란 꽃일 텐데. 이 집의 어떤 기운이 작약의 희망을 옥죄기라도 하는 걸까. 혹시 나의 최근 불운이 과도하게 여기로 부려진 탓일까.


너무 일찍 올라온 꽃봉오리가 걱정스럽기는 했다. 이렇게 찬 공기에 어떻게 견디려고 서두르니, 싶었다. 아무리 실내라도 식물에는 다 제때라는 게 있을 텐데.


식물이라도 죽어가는 걸 보는 노릇은 속이 쓰라리다. 밑동 잘린 꽃도 아니고 내 손으로 키워 싹을 올리고 이만큼이나 키워 만난 작약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가위를 대기도 싫었다. 이게 지켜봐야 할 몫이라면 감당하지 뭐, 싶다가도 나쁜 예감처럼 또 무슨 일이 생기려고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죽는 불상사가 생기나 불안했다.



늘 좌절하던 대학 시절 만났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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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필자 사진



작가 생활 26년 차. 별의별 일을 다 겪었어도 이번만큼의 좌절은 없었다. 도망칠 데도, 남이 도와줄 수도 없는 오롯이 내 몫의 짐. 작품으로 인한 작가 생활이란 으레 그런 것인 줄 알고 있다. 나더러 도망칠 데라곤 없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선생님 뭐하셔?’


툭 들어온 문자. 웃음이 툭 났다. 


대학 동기지만 나이가 더 많아 언니라고 불렀던 사람. 재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존칭과 반말을 어중간하게 섞어가며 지내는 중이다.


내게는 『꽃들에게 희망을』과 오버랩 된 사람. 동화라는 장르를 처음 알게 된 첫 책의 지점에 있는 사람.


분명히 그렇다. 열세 살 때 시골 학교의 협소한 도서실에서 처음 동화책을 만났고, 그걸로 동화책을 본 게 끝이었다. 중학교에 가지 못했으니 다른 책과의 만남도 더는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만난 책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고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마냥 버겁기만 했다.


대학 시절 내내 나는 늘 배가 고팠고, 외로웠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날마다 좌절하는 심정이었다. 스물 몇 살에 늙은이처럼 핏기가 없었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 옆에 앉아준 사람이 언니였다. 간호조무사라는 번듯한 일까지 있는 사람이 늦은 나이에 신입생이 된 게 나로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누가 나한테 일을 줘서 사회인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저 배고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버거운 옷을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 창작 시간에 교수님의 칭찬을 받아도 나는 내가 쓴 소설이 바탕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가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애벌레’, 자취방 라면 받침 책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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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 희망을』 책 표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책)



나의 허기를 알아챘을까. 언니가 자기 자취방에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 좁은 달방에 갔고, 언니가 끓여준 라면을 쪼그려 앉아 먹게 됐다. 그때 냄비 받침 신세였던 게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그런 신세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우글쭈글해진 데다 책장을 넘기니 마른 뼈 부러지듯 쩍 소리가 났던 책.


세상에 이런 책도 있었구나. 삶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전개할 수도 있구나. 너무나도 간결하게 삶의 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어.


나와 내 친구들이 소설이랍시고 써대는 것들이 순간 너무나 우습고 같잖게 여겨졌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의 과정은 생물 시간에 배우는 상식이고 탱자나무에서 가끔 볼 수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거였다.


사유하는 애벌레라니. 모든 애벌레가 나비가 되지도 않는다. 찬란한 날개를 갖는 일은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일어나는 마법이었다.


나는 그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환상을 양껏 채우고 그 달방을 나왔다. 언니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이 헤어져 나는 내 길을 걸어왔다. 나비가 인도하는 길이었다.



꿈 못 잊고 다시 나타난 주름진 애벌레



그렇게 33년.


먼지바람이 불던 저녁 시간, 독자 몇 명과 카페에서 공식적인 일정을 가져야 하는 날이었다. 이런 시간에 행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묘하게 불안하고 누구를 만나든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초심이 건드려지던 그런 날이었다.


시작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한쪽으로 가는데 보라색 조화를 든 초로의 여성이 다가왔다. 행사에 온 사람이구나 싶어 쳐다보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초심을 끌어낸 참이라 먼저 친절하게 행사에 왔느냐고 말을 걸었다.


“황선미 작가 만나려고 왔는데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에 덜컥 심장이 걸려 버렸다. 그 언니였다. 나를 달방에 데려가 라면을 끓여주고 내 인생의 책을 만나게 해준 사람. 그녀가 육십이 되어 나를 찾아왔다. 사람 몸에서 가장 늦게 늙는 게 목소리라더니.


이혼과 재혼으로 마음고생은 좀 했으나 제법 돈도 벌고 보험왕까지 돼보았다며 웃는 언니의 얼굴에 주름이 졌다. 간호조무사로 어엿하게 일하면서도 글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과를 찾았던 것처럼 환갑을 앞두고 보니 또 글이 쓰고 싶어서 잠이 안 오기에 찾아왔단다. 자기 좀 도와달라고.


나이 육십이 돼도 이루지 못한 꿈에 가슴이 아프면 여전히 애벌레인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들고 온 게 보라색 조화라니, 이렇게 극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그날 내게 온 그 모양으로 내 서재에 박제가 되어 있는 보라색 조화는 내게로 날아와 내 문학의 상징이 되어버린 바로 그 나비와 같다. 주름진 애벌레로 나를 찾아온 환갑의 언니가 신기하고 눈물겨웠다.


 

나비야, 힘겹던 시절 내게 날아와 줘 고마워



나비

나비야, 힘겹던 시절 내게 날아와 줘 고마워



삶은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그날 언니는 냄비 받침이었던 책이 내게 준 영향에 대해서 생각이나 했을까. 나머지 인생을 위해 속을 털어놓는 언니한테서 내가 순진하게 막연히 자신에 대해 사유하던 애벌레를 떠올렸음을 알았을까.


애벌레의 사유를 기억하는 나비야. 그 힘겨운 시절에 내게 날아와 주어 참 고맙다. 애초에 너는 날아가고자 했던 곳이 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너는 나를 거쳐서 당연히 네가 가야 할 곳으로 날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떨까. 나는 기억하고, 기억은 내 것인데.


그날 나는 내 환상을 양껏 먹은 줄만 알았는데 짜고 매운 라면으로 두둑이 배도 채웠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런 인연은 밥이 되고 영혼도 되는 법이다.


나의 작약 꽃봉오리가 까맣게 죽어간다. 그리고 곁가지에 새순이 자리를 잡았다. 꽃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닌 모양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꽃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어둠이라야 더 잘 보이는 그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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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황선미
동화작가
1995년, 농민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 창작 동화집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샘마을 몽당깨비』, 『엑시트』, 『건방진 장루이와 68일』 시리즈 등 70여 권 출간. 세종 아동문학상, 강소천 문학상 수상. 2014 런던 도서전 주빈국 대표 작가 선정, 2016 서울도서전 ‘올해의 주목할 작가’ 선정. 2012 안데르센 상 한국 대표 선정.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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