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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진정한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

유토피아의 역설, 20세기 사회주의 실험

박문국

2018-12-17


그들만을 위한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Belle époque)


16세기 영국에서는 양들을 먹일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가난한 농민들을 쫓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라 불리는 당대의 유행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은 비판을 받는다. 동시대를 살았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역시 인클로저 운동을 비판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소설 《유토피아》는 이러한 상황에서 쓰였다.


유토피아’라는 가상의 국가를 그림으로써 모어는 이상 사회의 필요조건으로 사유재산의 부정을 제시한다.



▲ 토머스 모어(Thomas More)와 그의 소설 《유토피아(Utopia,1516)》


사유재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정하고 올바른 재화의 분배는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통치하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중


그 이유인즉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느 한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지 않고는 다른 한 사람에게 그것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인클로저 운동에 대한 모어의 비판적 은유였고 훗날 등장하게 될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예언이기도 했다.


1870~1910년대 사이 유럽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대 유럽은 비스마르크의 외교술에 힘입어 로마 멸망 이후 실로 오랜만에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전쟁의 종식은 기술의 혁신으로 이어져 전화, 무선통신, 자동차와 같은 현대에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사용하는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바로 이전 세대가 프랑스혁명의 혼란기를 거쳤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19세기 중후반의 상황은 지나치게 찬란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라고 불렀다.


그러나 벨 에포크의 찬란함은 어디까지나 유럽 내부만의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유럽의 평화와는 달리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었다. 식민지 확장의 일차적인 원인이 자원 수탈과 안정적인 수출 시장 확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당시 자본주의의 확장이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동시에 유럽 내부의 상황도 밝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부각된 빈부격차와 노동자의 처우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의 찬란함은 어디까지나 상류층의 것이었을 뿐 노동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지속해야만 했다. 



▲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는 1900년대 파리



사회주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 바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다. 그는 노동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가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한 새로운 방법론, 즉 공산주의를 제시했다. 흔히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등장이다.



▲ 공산주의를 제시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마르크스의 사상은 혁신적이었으나 그의 저작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을 뿐,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마르크스의 사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되고 또 응용되었다. 개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는 러시아혁명을 통해 소련이라는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이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게 하려는 최초의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소련에서는 모든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상이었고 일할 의사가 있는 모든 성인들은 집단농장에 소속되어 노동의 가치를 누릴 수 있었다. 레닌 사후 권력을 이어받은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또한 계획경제 정책을 통해 급격한 산업화를 성공시키며 소련이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했다. 스탈린 시절의 산업화는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의 도약이었기에 그 상징성은 더욱 컸다. 



▲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킨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l'ich Lenin)과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냉전을 거치며 소련의 영광은 자취를 감췄다. 소련의 성공을 모방했던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모두 몰락했다. 개중에는 북한과 같이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도 존재한다. 칼 포퍼의 말마따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지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간과한 마르크스


혹자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타당한 주장이기는 하다. 일례로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사관에 따라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시작된다고 봤으나 정작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이 진행된 러시아는 자본주의는커녕 산업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사회였다. 그런데도 억지로 변화를 추구하니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소련 외에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다른 제2세계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즉 20세기에 진행된 사회주의 실험은 어디까지나 레닌주의 및 그 변형이었을 뿐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론적인 마르크스주의도 문제가 있기는 매한가지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도기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 주장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절대권력을 지닌 독재자를 낳게 된다. 물론 그 독재자가 양심적이고 능력이 출중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절대권력을 쥔 자는 무능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욱 악랄한 경우가 많았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격언 또한 유효하다. 당장 대장정 시절 농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마오쩌둥(Máo Zédōng)이 국가주석 자리에 오른 뒤 학살자로 돌변한 사실이 있다. 이미 언급한 스탈린 또한 소련의 산업화를 이룬 공이 있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이 처형당한 사실을 생략할 수는 없다.



▲ 중국 초대 국가주석 마오쩌둥(Máo Zédōng) ⓒGeorg Denda(https://www.panoramio.com/photo/701721)


요컨대 마르크스는 인간이 가진 욕망의 무게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직시했을 때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 실현된 적이 없다는 변명은 의미를 상실한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결국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는 성인의 출현 하에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왕정으로의 회귀와 다를 바가 없다.


앞서 언급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ο τόπος(not place)로, 직역하자면 ‘없는 장소’이다. 이 말처럼 인류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결코 등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지난 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명적 변화를 통한 이상 사회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끊임없이 거북이를 쫓는 아킬레스로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인류는 과거보다 더 나은 역사를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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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문국
박문국

역사저술가. 숭실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의 한국사 특강-이승만과 제1공화국』등이 있다. 통념에 따른 오류나 국수주의에 경도된 역사 대중화를 경계하며, 학계의 합리적인 논의를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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