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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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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현실에서의 힘을 비축하는 진통제

대중예술과 유토피아

by 박병성 / 2018.12.03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과를 마치고 가정에 돌아오면 TV 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중 엔터테인먼트로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 것이다. TV 속 세상은 분명 복잡다단한 이곳과는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기업 회장님들이 편의점 사장님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그분들은 종종 잃어버린 혈육이 있고, 그들은 용케도 착하게 잘 자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지낸다. 그리고 잃어버린 혈육의 지인은 악인이 되어 그(그녀)를 괴롭히다가 모든 것이 들통나고, 모두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멜로 라인을 끼워 넣자면 기업의 중요한 위치에서 일하는 젊고 유능한, 때로는 회장의 직계 가족이 신분 장벽을 뛰어넘고 가난하지만 바르게 자란 잃어버린 혈육을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출생 신분을 모르는 그(그녀)가 본래의 자리를 찾는 데 도움도 준다.


언젠가 본 것 같고, 지금도 이와 비슷한 드라마가 방영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이런 드라마를 꽤 흥미롭게 본다. 이러한 드라마 내용은 상류층 회장 집안이라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세계(현실의 그것은 아니지만)의 간접 경험을 통해 대리만족을 준다. 그러니까 대중예술의 세계는 개인적인 욕망이 실현되는 세계이다.



유토피아를 정서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대중예술


대중문화 학자 리처드 다이어는 대중예술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유토피아와 연결해 설명한다. “대중예술은 토머스 모어와 같이 유토피아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가 주는 느낌을 제공한다. 대중예술은 유토피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실질적 차원이 아니라 정서적 차원에서 가능하다.” 라고 말한다.


대중예술의 세계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지만 일상에서는 충족되지 못하는 세계를 제시한다. 일상에서 점점 더 경험하기 어려운 정의가 살아있을 뿐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또 가족이나 사랑, 공동체 등의 소중함을 잃어가는 휴머니즘적인 가치가 존중받는 세계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사채업자에게 빚을 진 이지안(이지은 분)을 지켜주는 박동훈 부장(이선균 분)이라는 키다리 아저씨 판타지로 이슈가 됐지만, 실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장면은 박동훈 부장이 속해있는 가족, 나아가 마을 공동체의 따뜻한 향수를 자아내는 부분이었다. 가난하고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이 전부이지만 박동훈 부장 삼 형제와 조기축구회 멤버들은 잃어버린 공동체의 훈훈함을 상기시킨다.


드라마 <미생> 역시 마찬가지다. <미생>은 윤태호 작가가 몇 년에 걸쳐 실제 상사맨들을 취재한 기록을 기초로 제작되어 상사맨들의 리얼한 세계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 <미생>은 대중물로서 판타지가 중심을 이룬다. <미생>에도 역시 오 과장을 비롯한 영업 3팀의 가족 같은 회사라는 판타지가 극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미생>은 무뚝뚝하지만 책임을 다하는 아버지 같은 오 과장, 격려해주고 친절하게 도와주는 형 같은 김 대리, 착하고 똑똑한 막냇동생 같은 장그래로 이루어진 가족 같은 팀원을 보여준다. 또 하나의 판타지는 사회적 약자가 승리하는 판타지이다. <미생>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바둑만 두어왔던 인턴사원 장그래가 모든 에피소드의 중심 키를 쥐고 중요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장그래는 관객들이 감정 이입하는 인물로 그가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성장하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 그러나 현실에서 인턴사원이 업무를 주도해 나간다는 것은 일어날 확률이 적은 판타지일 뿐이다.


본문이미지_나의 아저씨, 미생 포스터

▲ 일상에서 잊고 있던 가치를 보여주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미생> ⓒtvN


대중예술은 현실에서의 결핍에 잠시나마 포만감을 준다. 동시에 점점 무너져가는 가치를 환기시키고 또 지향한다. 특히 후자의 측면에서 대중예술의 세계는 유토피아와 맥락이 닿아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그곳


대중예술의 세계는 현실 너머의 다른 세계를 지향한다. 그곳이 이상적인 세계일 때도 있지만 현실 너머에는 이상적인 세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예술의 중요한 특징인 도피성은 현실의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이자 불안정하고 모호한 세계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답답하고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가장 손쉬운 일상 탈출은 대중예술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그곳은 독이 오르면 김치 싸대기를 때리는 막장의 흥미진진한 세계이자 세상을 위협하는 악당들로부터 온갖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세상을 구하는 첩보원들이 활약하는 세계이고 아마존에 숨겨둔 고대 왕국의 보물을 찾아 아나콘다가 우글거리는 밀림을 헤쳐나가는 모험의 세계이다. 대중예술 중에 조폭물, 첩보물, 어드벤처물이 많은 이유는 이러한 장르에서는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본문이미지_킹스맨 포스터

▲ 첩보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러나 이 세계가 흥미진진한 것은 현실이 아닌 탓이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을 맘 편히 즐길 수 있다. 실제로 벼랑 끝을 달려가는 오픈카에서 악당들의 추격을 받으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이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대중예술 속의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예술은 이중의 도피라고 말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도피했다가 다시 위험천만한 세계에서 안전한 현실로 도피한다.


또한 대중예술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실에서부터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세계로의 도피다. 현실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대중물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대중예술의 세계가 온전한(whole) 세계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헤일만은 비극과 멜로드라마(대중예술)를 비교하면서 두 장르의 가장 큰 차이를 세계상에서 찾았다. 비극의 세계는 분열된(divided) 세계인 반면 멜로드라마의 세계는 완전성을 지닌 세계를 추구한다. 이때 멜로드라마의 완전한 세계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이상적인 세계라는 의미가 아니라 혼란스럽지 않은 세계라는 의미이다.


비극의 세계는 모순된 가치가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선택을 요구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는 숙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살인이라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과,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가 팽팽히 맞선다. 햄릿은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숙부를 살해해야 하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행동을 연기한다.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 역시 두 가지 모순된 명령 사이에서 갈등에 놓인 인물이다. 안티고네는 국법으로 처형된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법적 명령과 가족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녀는 결국 윤리적 명령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국민으로서 법적 명령을 어긴 책임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비극 속의 인물은 상충하는 무수한 규율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현실의 우리들처럼 모순된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반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갈등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선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뉜 멜로드라마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악에 맞서 승리하거나 또는 악에 맞서다 패배해서 연민을 자아낸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에게 승리와 패배로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악에 맞서는 행동을 갈등하지 않는다.


본문이미지_햄릿 이미지, 안티고네 그림

▲ 비극 속의 인물은 상충하는 가치와 모순된 상황 속에서 갈등한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HAMLET, 1948),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안티고네,

마리 스파탈리 스틸만(Marie Spartali Stillman, 1844–1927), <안티고네(Antigone)>


비극의 주인공의 갈등 요소는 외부에 있지 않고 선택을 내려야 하는 주인공 내부에 있다. 햄릿의 고민거리는 친부를 살해한 숙부가 아니라 상충하는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이다. 그러나 멜로드라마 주인공의 갈등 요소는 외부에 있는 싸워야 할 적이다. 갈등 요소가 너무나도 분명해서 내적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이처럼 행복이나 고통도 깔끔하게 정돈된 세계가 바로 대중예술의 세계이다. 관객들은 복잡하고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 멜로드라마의 너무나도 명쾌하고 온전한 세계에서 잠시 불안과 근심을 놓아두게 된다.



현실의 결핍과 개인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허상의 세계


토머스 모어는 장소를 의미하는 ‘topos’ 앞에 ‘좋음(eu)’과 ‘부정(ou)’을 뜻하는 두 개의 접두사를 결합해서 유토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유토피아는 좋은 곳이자,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대중예술이 만들어내는 온전한(whole) 세계는 정의를 추구하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좋은 곳이지만 개인의 욕망을 자위하는 곳이라는 측면에서는 마냥 좋은 곳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중예술 세계는 현실의 결핍과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대중예술을 정신적인 아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가상의 세계에서 안위하게 하며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에게 주입시킨다는 측면에서 대중예술을 비판한다. 그러나 유토피아를 정서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대중예술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대중들은 현실과 판타지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현실에서 흥미진진하고 혼란스럽지 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대중예술은 정신적인 아편이라기보다 여전히 불안하고 단조로운 현실로 되돌아가기 전, 힘을 비축하게 하는 정신적 진통제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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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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