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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더 좋은 민주주의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이정모

2018-05-31

1996년 2월 10일.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역사상 최고의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에게 첫 판을 이겼다. 하지만 계속된 게임에서 카스파로프가 역전에 성공했다. 3승 2무 1패. 전 세계 언론이 난리가 났다. “이것 봐라, 기계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컴퓨터가 아무리 똑똑해 봐야 사람을 쫓아올 수는 없지.” 그리고는 그게 끝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카스파로프가 딥블루에게 1승 3무 2패로 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사람이 컴퓨터와 체스로 겨뤄서 똑똑하기를 이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컴퓨터라고 해서 그다지 똑똑해지지는 않았다. 인공지능이라는 말도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IBM왓슨

▲ IBM왓슨 ⓒCarolyn Cole LA Times via Getty Images

 

2011년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IBM의 컴퓨터 왓슨(Watson)이 미국의 유명한 퀴즈 쇼 ‘제퍼디!(Jeopardy!)’에 참가했다. 상대방은 퀴즈 쇼 사상 최고의 상금으로 우승했던 브레드 러터(Brad Rutter)와 74주 연속 우승자 켄 제닝스(Ken Jennings). 게임은 단순한 지식을 묻는 게 아니었다. 논리와 지식 그리고 유머가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왓슨의 관건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느냐는 것. 인간의 언어로 된 질문을 들으면서 구문을 분석하고 문맥 속에서 의미를 파악한 후 해답을 도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왓슨의 완벽한 승리. 두 사람이 2만 달러 정도를 획득하는 동안 왓슨은 7만 7천 달러를 획득했다.


이때까지도 인간들은 오만했다. “왓슨은 놀랍고 새로운 일을 해냈지만 여전히 기계일 뿐이다. 진짜 ‘생각’은 기계를 만든 인간에게서 나왔다. 아직 인간은 포기하기엔 이르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과연 생각은 정말로 인간에게서만 나올까?


벽돌깨기에서 알파고까지, 인공지능의 성장


 

 Nature 표지 학습곡선

▲ Nature 표지 학습곡선(Learning Curve) ⓒNature twitter

 

2015년 2월 26일자 <네이처(Nature)> 표지 제목은 학습곡선(Learning Curve). <네이처>는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비디오 게임에서 인간 수준의 능력을 획득했다’라고 평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벽돌깨기 게임이었다. 공이 양옆의 벽과 앞면의 벽돌 그리고 자신이 조종하는 라켓과 충돌할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만 알면 되는 게임이다. 인공지능에게 이 게임을 시켰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한 지 10여 분이 지날 때까지도 인공지능은 게임의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네댓 살짜리 꼬마만도 못했다. 게임에 능숙해지는 데는 무려 두 시간이 걸렸다. 벽돌깨기 게임에는 아주 단순한 전략이 있다. 한쪽에 터널을 뚫어서 공을 벽면 뒤쪽으로 밀어 넣으면 공이 알아서 벽면과 부딪히면서 벽돌을 깬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십여 분도 안 돼서 알아차릴 전략을 인공지능은 네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겨우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무려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하다니….


불과 11개월 후인 2016년 1월 28일자 <네이처> 표지는 알파고(Alphago)가 장식했다. 벽돌깨기에서 알파고까지 단 11개월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논문의 저자가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라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설립자다. 논문이 발표된 날 딥마인드는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6년 3월 13일. 이세돌이 마침내 이겼다. 세 판을 내리 진 다음의 일이었다. 이날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긴 마지막 날이다. 2017년 5월 등장한 알파고 마스터(Alphago Master)는 세계 챔피언 커제(柯洁)를 3:0으로 이겼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알파고는 모두 사람에게서 배운 인공지능이었다. 그런데 2017년 10월에 등장한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는 달랐다. 사람에게서 배우지 않았다.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마스터를 89:11로 이겼고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Alphago Lee)에게는 100:0으로 이겼다. 이제는 우리가 인공지능과 겨루기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당신은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1950년에 펴낸 소설 『아이 로봇(I, Robot)』은 2004년에야 영화화되었다. 주연은 윌 스미스(Will Smith). 인간 형사 윌 스미스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로봇을 심문한다. 잠깐 그들의 대화를 엿보자.

“왜 살인현장에 숨었지?”

“전 겁이 났어요.”

“로봇은 공포를 느끼지 못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지.”

“저는 느껴요.”

(…)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어? 로봇이 캔버스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꿀 수 있냐고!”

“당신은요?”

“음….”

우리는 인공지능을 평가할 때 자신이 아니라 이세돌, 베토벤, 반 고흐처럼 경지에 오른 사람인 최고의 인류와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은 2016년에야 등장했지만 나를 이기는 바둑 프로그램은 20년 전에도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영화 속의 형사 윌 스미스와 같은 태도를 하고 있다.


 

윌스미스 주연 영화 아이,로봇

▲ 윌스미스 주연 영화 아이,로봇(I,Robot,2004) 포스터 ⓒirobotfilm

 

머리를 쓰는 것은 컴퓨터와 견주어 이길 수는 없을지라도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인공지능 미술 프로그램은 전문가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화를 흉내 내어 그린다. 심지어 같은 사진을 주고서 고흐처럼, 렘브란트처럼 그리고 뭉크처럼 그리라고 하면 그려낸다. 고흐는 렘브란트처럼 못 그린다. 렘브란트는 뭉크처럼 못 그린다. 그리고 뭉크는 고흐처럼 못 그린다. 그런데 스스로 학습한 인공지능은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그려 낸다.


이젠 음악에서도 인공지능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 12월 14일 작곡 인공지능 딥바흐(Deep Bach)가 발표한 곡을 프로페셔널 음악가들은 바흐의 곡이라고 믿었다. 이 프로그램이 다양한 작곡가를 학습한다면 간단한 멜로디를 주고서 바흐처럼, 베토벤처럼 또는 모차르트처럼 작곡하라고 하면 그들의 화성에 따라서 곡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왔다


교육, 의학과 재판에서도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조지아 공대의 애쇽 고엘(Ashock Goel) 교수는 인공지능 관련 과목을 온라인으로 개설하면서 질 왓슨(Jill Watson)이라는 백인 여성을 조교로 고용하여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게 하였다. 질 왓슨은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40퍼센트 이상을 처리했다. 학생들은 질 왓슨을 최고의 조교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질 왓슨은 사람이 아니라 왓슨 컴퓨터였다. 이젠 인공지능이 사람만큼 잘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보다 더 잘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다.


왓슨 컴퓨터는 의사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게 IBM이 왓슨을 개발한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7개 대학병원에 도입되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왓슨을 하찮게 여겼다. 왓슨은 인간 의사의 경쟁자가 아니라 단순한 보조수단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것은 의사들의 생각일 뿐이고 환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유방암 환자가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렇다면 재발 방지 치료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인간 의사는 항암제 치료를 권했고 왓슨은 방사선 치료를 권장했다. 인간과 왓슨의 처방이 달랐다. 인간 의사들은 당연히 환자들이 인간의 처방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환자는 왓슨의 방식을 선택했다.


인공지능 판사 시대가 올까? 2016년 10월에 전 세계 ICT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런 토론을 했다. 부질없는 토론이었다. 2017년 5월 1일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인공지능이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형사재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원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재판의 효용성을 위해 암묵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던 미국 법원이 이제 인공지능의 판단을 판결의 타당성 근거로 인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에는 한국의 대형 로펌이 왓슨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이 외국산 인공지능에 의해 크게 잠식되지 않은 까닭은 언어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왓슨은 영어, 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한다. 2016년 5월 9일 IBM은 왓슨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어는 왓슨이 배우는 여덟 번째 언어가 되었다. 한국말 배우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 불과 7개월 후인 2016년 12월 26일 IBM은 왓슨이 한국어 공부를 끝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에이브릴(Aibirl)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보험회사에 진출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 속도에 놀라지만 말고 분노와 좌절 대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더 좋은 민주주의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일자리를 잃고 빈곤층으로 살 것인가? 혹자는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없어지는 일자리보다 그들로 인해 생기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리가 있는가! 하지만 걱정하지는 말자.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소비로 유지된다. 시민들이 소비할 돈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망한다.


노동시간을 줄이든, 아니면 기본소득을 제공하든, 그것도 아니면 절약되는 생산비만큼 세금을 거둬서 공공영역에 사람을 고용하든 우리는 어떻게든 소비하면서 살 수 있는 수단을 제공받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단순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활비는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노동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세상에 공헌하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다툴 생각이 없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인공지능과 인류 사이에 갈등이 생길 일은 없다. 갈등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 사이에 생길 것이다. 인공지능을 소수의 독점자본가 손에 맡기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우리가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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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정모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강연과 저술 그리고 방송을 통해 전문적인 과학자와 시민 사이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과학은 ‘의심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공생 멸종 진화』, 『달력과 권력』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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