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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건축은 벽과의 싸움이다

고딕과 돔이노 시스템

양용기

2017-11-16

 

[11월의 테마]
모험

건축형태의 첫 번째 모험 '고딕'
건축의 형태적 모험은 매 등장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 두 가지를 꼽는다면 단연 고딕과 르코르뷔지에의 돔이노 시스템이다. 또는 각 시대 양식의 이름 중 가장 추악한 이름이 바로 고딕인데, 바로 ‘흉측하다’ ‘혐오스럽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르네상스가 붙인 것이다. 고딕은 중세의 마지막 시기로 기독교 문화가 절정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가장 정체성이 불안했던 시기였다. 기독교가 비잔틴의 동방 정교회와 로마의 서방 정교회로 분리되고 교황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로마제국이 미천하게 여겼던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하자 교황청도 불안에 떨게 되었다. 게다가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점령당하자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십자군을 파견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고 기독교의 위상은 점점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럽이 세 개의 프랑크 왕국으로 나뉘고 심지어 게르만족이 유럽을 평정하자, 교황청은 기독교 시대의 유지를 위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새로운 로마 황제의 왕관을 씌워주며 많은 영토를 바쳤다. 이러한 중세의 종교적 불안이 지속되자 교황청은 급기야 모험적인 결단을 내리는데 그것은 바로 상징적인 심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물이다.
중세 건축물이 다른 의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직형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다른 시대의 건축물은 대부분 수평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된 후 좀 더 강력한 위치를 확보하고자 한 기독교는 다른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고 소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교회 건축물을 중점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중세 영국에서는 교회 건물이 없으면 도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장한 교회 건축물은 종교적인 안정을 위하여 신앙적인 교리를 그 안에 담기 시작한다.

 
  • 교회 건축양식의 변화교회 건축양식의 변화

예를 들어 초기기독교(비잔틴)는 ‘지상의 인간이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는 내용을 내세워 교회 건축물에 수직적인 이미지를 담았고, 로마네스크는 ‘하나님이 지상에 계신다’는 의미를 형태에 적용하면서 지붕을 하늘처럼 둥그렇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잘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앞에서 유럽의 권력 구조가 바뀌면서 교황청은 불안감에 좀 더 강력한 상징적 형태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비잔틴과 로마네스크의 모양을 합쳤고 이에 하늘까지 지상으로 끌고 내려오는 것으로 형태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신과 하늘이 지상에 있는 형태를 나타내기에는 건축물의 천장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교회는 도시 어디서나 교회건축물을 보며 경건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형태를 갖길 원했다. 지상으로 내려오는 하늘을 향해 인간도 가까이 가는 형태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벽의 두께였다. 고딕 이전까지의 건축물들은 벽이 아주 두꺼웠다. 이 두꺼운 벽을 유지하며 높이 올라가는 것이 무리였다. 그래서 고딕 시대의 건축가들은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벽의 두께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엔 얇아진 벽에 불안감을 느껴 측벽을 세워 구조적인 보강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플라잉 버트레스 (벽을 받치는 아치형 구조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조적인 해결책일 뿐 더 높이 올라가는 데 완전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외부의 모든 벽면에 조각을 하여 무게를 줄이는 방법을 시도했다.

 
  •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물.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물.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왼쪽)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오른쪽)

이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이를 통해 중세 파리의 가장 높은 건축물인 노틀담 성당이 등장하고 독일에는 쾰른 성당이 도시의 가장 높은 건축물로 들어서면서 기독교의 자존심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이전의 건축물만 보던 사람들에게 온몸에 문신을 새긴 고딕 양식은 낯선 것이었다. 르네상스, 특히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고딕을 아주 경멸스러운 건축물로 간주하고 고딕을 “흉측하고 혐오스럽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은 1773년 독일의 문호 괴테가 『독일의 건축』이라는 책에서 고딕에 대해 “돌로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평가 하면서 200년간 지속되었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건축형태의 두 번째 모험 '돔이노'
건축형태의 두 번째 모험은 바로 르코르뷔지에의 돔이노 시스템이다. 건축에서 ‘형태’는 벽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 훌륭한 건축가는 벽을 잘 다룬다. 건축가들은 이 벽을 갖고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근대 건축 3대 대가 중 한 사람인 르코르뷔지에가 질문을 던졌다. “벽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하중은 기둥으로 대치해도 되지 않은가?” 몇천 년을 이어 온 벽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건축가들에게 엄청난 모험이었다. 이러한 모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르코르뷔지에는 돔이노 시스템을 선보인 것이다. 이는 어느 양식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지역, 기후 또는 조건에도 적합한 해결책으로, 하중에 묶여 있던 벽을 건축형태에서 자유롭게 하는 충격적인 제안이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명이며 전세계가 사용하는 양식으로 우리는 이를 ‘국제양식’이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주택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 베니스에 위치한 르코르비제 돔이노 하우스 구조물(2014) © Jean-Pierre Dalbéra프랑스 푸아시 지역에 지어진 르코르비제의 돔이노 하우스 ‘사보아 빌라’(Villa Savoye, 1931) / 베니스에 위치한 르코르비제 돔이노 하우스 구조물(2014) © Jean-Pierre Dalbéra

“시야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그곳에 벽이 있다”

스위스 건축가 기디온은 그의 저서 『시간, 공간 그리고 건축』이라는 책의 「일시적 사실과 구성적 사실」이라는 단락에서 모든 예술 행위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시간이 지난 후 양식으로 남는 것과 유행이 되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서술하였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양식으로 남기를 바라며 시도했을 것이다. 그 시도 안에는 늘 ‘벽’이 있었다. 벽의 정의는 시야(생각, 행동, 사고)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건축에서 벽은 인간이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한 모험의 대상이 되어 왔다. 두꺼운 벽에서 돔이노로 그리고 유리벽으로 진화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인간이 벽을 넘어가는 모험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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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양용기
양용기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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