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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다른 형태의 공부

사람들은 일과 휴식을 구분하는 것처럼 놀이를 생각하면 공부를 떠올리곤 한다. 특히 우리나

장근영

2017-09-05

놀이, 다른 형태의 공부

 

사람들은 일과 휴식을 구분하는 것처럼 놀이를 생각하면 공부를 떠올리곤 한다. 특히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떤 학부모들은 놀이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나 허용해줄 수 있는 활동이고, 그 다음부터는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 시간을 빼앗기만 하는 성가신 욕구 정도로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부와 놀이를 일과 휴식의 아동 버전으로 간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전혀 옳지 않은 생각이다. 놀이는 공부와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

▲ 심리학자 장 피아제(1896~1980)는 인간 지능이 단순해 보이는 행동의 반복을 통해 도식을 형성함으로써 성장한다고 보았다.

 

성장의 열쇠, 놀이

 

스위스의 인지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인간 지능의 핵심적인 구조를 ‘도식’, 불어로는 ‘스키마(Schema)’라고 불렀다. 인간의 뇌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해석의 틀, 즉 도식을 통해 분석하고 재구성해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행동을 조정해나간다. 물론 경험이 늘어날수록 도식도 계속 변화한다. 이것이 인간 지능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게 생각하고 유능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는 이 도식의 형성과 성장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 도식의 형성은 피아제가 ‘순환반응’이라고 불렀던, 단순한 행동의 반복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아기가 물건을 집었다가 던지고 다시 집었다가 던지는 행동을 반복할 때, 뇌 속에서는 ‘잡았다가 놓는다’는 도식이 만들어지고 단단하게 다져진다. 아기가 엄마와 까꿍놀이를 끝없이 반복하는 동안, 역시 아기의 뇌 속에서는 무언가에 가려졌던 얼굴이 다시 드러난다는 도식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일상의 곳곳에서 만들어진 소소한 도식들이 모이면 좀 더 복합적인 순환반응이 시작된다. 아이의 뇌 속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아기가 무의미하고 단순한 행동을 무한정 반복하며 까르르 웃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아이의 놀이는 결국 세상에 대한 틀을 형성하고 공고히 하며 다시 재구성하는 지적 발달 증상인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놀고 싶어하는 건 육체적 배고픔을 식욕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경험과 성장에 대한 배고픔을 놀이 욕구로 표현하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교 사회학과의 밀드레드 파튼(M.Parten) 교수는 일찍이 1929년에 사회적 놀이가 그 아이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간파했다. 지금도 거의 모든 아동발달 교과서에 인용되는 그의 사회적 놀이 발달 단계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처음에는 남의 놀이를 관찰하고, 그 다음에는 혼자서 놀고, 그리고는 서로 놀잇감을 공유하되 따로 놀고, 그러다가 같은 놀이를 공유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역할을 분담해가며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역할분담과 협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생활의 핵심이다. 바로 그것을 놀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책표지 : 조지 허버트 미드와 그의 책 『정신 자아 사회』 번역본 및 원서

▲ 조지 허버트 미드와 그의 책 『정신 자아 사회』 번역본 및 원서

 

사회적 상징의 학습과 공유

 

사회심리학자인 조지 허버트 미드(G.H. Mead)는 놀이에 관해 더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 다른 동물과 질적으로 다른 점은 ‘자의식’이라고 봤다. 자의식이란 결국 남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독자 여러분도 아시리라. 미드에 따르면 타인의 관점을 내면화하는 과정은 ‘상징’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상징은 어떤 공동체 구성원들이 의미를 공유하는 수단이다. 언어나 시각적 기호만 상징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교환하는 표정이나 어조, 몸짓도 그 안에 의미가 담겨있다면 모두 상징이다. 그리고 이 상징은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은 지능이 떨어진다기보다 이러한 상징체계를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새로운 집단이나 조직에 들어가 겪는 적응문제의 많은 부분은 그 동네에서 공유되는 사소한 상징들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축구를 하고 있는 소년

▲ 축구를 하고 있는 소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상징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법을 배울까? 바로 놀이를 통해서다. 놀이는 그 자체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정교한 상징교환 활동이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를 생각해보자. 축구를 잘 하려면 단지 공을 정확히 잘 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 동료가 언제 나에게 공을 패스할지, 그리고 내 주변서 달려가는 동료들 중에 누구에게 공을 보내줘야 할지를 제때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 동료들의 행동을 통해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축구라는 활동은 통일된 규칙 내에서 이루어진다. 선수들의 행동에서 그 의도와 그에 따라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게 모두 축구 규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넓은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모든 움직임은 일종의 대화다. 축구를 잘 한다는 건 이 대화를 잘한다는 뜻이다. 공을 차고 달리고 막는 기술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다른 놀이들도 마찬가지다. 놀이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의미를 공유하는 상징이고, 놀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 상징이 작동하는 원리를 배우게 된다.

 

축구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상징 학습에 따른 놀이의 확장

 

물론 상징 사용법에 능숙해지려면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놀이의 발달단계는 결국 상징 사용능력의 성숙단계다. 처음에는 상징 사용능력의 범위가 내가 잘 알고 있는 한두 명에 국한된다. 그래서 놀이친구의 범위도 두세 명 정도를 넘지 못한다. 그러다가 점차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상징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놀이의 범위가 넓어진다. 상징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위에서 말한 축구나 야구 같은 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 게임에는 언제나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부여되는 기능이 있으며, 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능력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사용하게 된다. 당연히 이 게임에 참여하려면 그들의 행동을 주어진 규칙과 역할과 현재 상황에 맞춰 예측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은 상징체계의 숙달과정이자 일반적인 타인의 관점을 내면화하는 훈련이다. 타인의 관점이 자의식의 기반임을 되새겨보면, 우리는 놀이를 통해 인간성의 핵심인 자의식을 성장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놀이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 내가 내린 결론은 틀렸다. 놀이는 다른 형태의 공부가 아니다. 공부가 특별한 형태의 놀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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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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